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 '배움으로 가득 찬 충만한 나날'

▲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전경(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편슬기 기자)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에 담긴 '사계'라는 제목의 곡 가사 중 일부다.

경쾌한 멜로디와 가볍고 통통 튀는 보컬로 언뜻 듣기에 밝은 분위기의 곡 같지만 가사를 천천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1970년 산업화 시대, 어린 나이에 학교 대신 공장으로 출근하며 바쁘게 재봉틀을 돌리던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씁쓸한 곡이다.

오빠 혹은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여공으로 청춘을 희생한 노래 가사 속 주인공들. 뒤늦게나마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힘차게 날개를 펼치고 있는 학업의 현장을 찾았다.


"계집이 무슨 공부냐" 초등학교만 간신히 나와


▲ (좌측부터)정순영 씨와 유주현 씨(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일성여자중고등학교(이하 일성여중고)는 가난한 살림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배움의 때를 놓친 여성들에게 못다 이룬 공부의 꿈을 이루도록 돕는 2년제 학력 인정 학교다.

전액 무료 과정에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중학교(2년), 고등학교(2년)를 거쳐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고등학교 졸업장과 학위를 인정받게 된다.

이곳 일성여중고는 중학교 14학급, 고등학교 12학급으로 구성돼 있으며 총 26개 학급 1029명의 학생들이 공부에 매진 중이다. 학력 인정 학교라고는 하나 만학도들의 충만한 학교생활을 위해 합창, 국악, 문예 동아리 운영과 팝송 대회, 시 낭송 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이날 만난 유주현(62) 씨는 일성여중고 재학 4년 차로 고등학교 학위 수료를 앞둔 고등학생이다.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다하면 채 끝내지 못했던 공부를 마쳐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는 그는 초등학교 졸업을 끝으로 더는 학업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위로 오빠가 있었고, 넉넉지 않은 가정 사정과 함께 주변 동년배 여성들이 모두 중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던 당시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학업을 포기하게 됐다는 것이다.

유주현 씨는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배움에 대한 열망은 커져만 갔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학력이 높은 주변인들과 비교하며 항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초졸'이지 하는 마음에 늘 자신감이 없었고 자꾸 움츠러들게 됐다. 그러던 차에 일성여중고를 알게 되면서 학업의 길로 다시 들어섰다"고 말했다.

재학 2년 차인 정순영(71) 씨의 학업을 향한 열의는 펄펄 끓는 용광로 못지않다. 현재 주중에는 등교를 위해 서울에서 자취하고 주말에는 남편과 사는 충남 보령 본가로 내려간다는 그는 학기 초에는 서울에서 충청도까지 '통학'을 하기도 했었다고.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동향 사람이 일성여중고 재학생인 것을 알게 되면서 정순영 씨의 인생은 180도로 달라졌다.

학교를 알려준 이는 일성여중고 졸업을 3일 앞두고 있던 재학생이었다. 기차 내 짧은 만남은 앞으로의 인생을 뒤바꾼 운명적인 만남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정순영 씨는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과목마다 너무 흥미롭고 머리에 쏙쏙 들어와서 공부가 즐겁다고 말하는 그는 '내가 이걸 어릴 때 배웠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늦게서야 공부를 시작하니 하루하루가 소중해 결석을 할 수가 없다"며 수업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현재 그의 학업을 가장 응원해 주는 이는 남편이다. 학교를 다시 다니겠다는 말에 엄지를 세우며 살림과 바깥일은 자신이 할 테니 그저 공부에만 집중하라며 등을 떠밀어주던 남편은 격려가 학업을 지속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정순영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충남 보령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더 좋은 동네를 만들어가는 통장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시 낭송 대회 열려


▲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시 낭송 대회 현장(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한편 이날은 일성여중고에서 제16회 시 낭송 대회가 열리는 날로 총 26명의 여중, 여고생들이 직접 선정한 시를 낭독하고 홍금자 시인과 고종우 시인의 평가를 통해 장려상, 우수상, 최우수상, 대상을 선정했다.

백발이 성성한 여중생과 평소 신지 않던 구두를 신고 한껏 멋을 낸 여고생들이 윤동주의 서시,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 안도현의 연탄 한 장 등 각자에게 의미 있는 시를 낭송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일성여중고에서는 동아리 문예부 운영과 시 낭송 대회를 통해 학생들이 가진 문학적 소양과 재능을 키워주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시인, 작가 등으로 등단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는 학생들도 있었다.

시 낭송 대회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고종우 시인이 꿈을 이룬 산증인 중 한 명으로 그는 일성여중고를 졸업한 이후 시인으로 등단해 중국 등 국내외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생각만 하고 있었던 '무언가'가 있다면 오늘 작게나마 실천의 한 걸음을 옮겨보자, 바다가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비로소 완성되듯 작은 발걸음이 언젠간 큰 꿈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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