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조정이 아닌 고용보장이 골자… 연금, 의료비 지출 상승이 이유


(팝콘뉴스=이준호 기자)* [이준호의 노후낙낙]은 올바른 노후생활을 위한 시니어 문화를 진단합니다. 낙낙은 즐겁다는 樂樂의 의미와 '넉넉하다'는 뜻, 노후를 노크한다는 Knock Knock의 중의적인 표현입니다.

일본은 지난 4월 1일을 기점으로 70세까지의 고용을 보장하려는 '고연령자고용안정법'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은 일본 기업이 희망하는 근로자 전원에게 70세까지의 고용 보장을 위한 노력을 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얼핏 보면 70세까지의 정년을 보장하는 것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렇지는 않다. 70세까지의 '취업확보조치'를 통해 고용안정성을 유지토록 했지만, 실제 법정 정년연령은 기존 60세에서 바뀌지 않았다.

70세까지 계속 일할 수 있지만 계약조건의 변경 즉, 근로조건이 저하되는 것은 고령 노동자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기업의 지나친 부담을 막으려는 조치다. 고용 보장을 위한 방법은 기업 측이 선택할 수 있다. 정년을 폐지하거나 70세까지 정년 연장을 해도 되고,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취해도 된다. 혹은 창업하는 퇴직 근로자와 위탁계약을 맺거나 유관 기업에서 대신 고용해도 된다.

이런 일본 정부의 법 개정 배경에는 쉽게 말하지 못하는 속사정이 깔려있다. 일본의 정부 부채는 2020년 말 기준 970조 엔 규모다. 우리 돈으로 1경 원을 넘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경기부양 대책을 내놓으며 올해 말엔 1000조 엔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일본 정부의 재정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높은 비중의 노인 인구는 여러 부문에서 부담이 된다.

가장 먼저 노령기초연금 등 공적연금 지급에 대한 부담이 있다. 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하면서 수급자 비중이 늘어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표면화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2004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도입했다. 연금 수령자가 늘고 현역 노동인구가 감소하면서 현역 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다. 간단히 말하면 이 제도 도입으로 일본 정부는 연금 지급액의 상승률을 억제했다.

연금의 지급 시기도 늦췄다. 2001년까지는 60세부터 노령기초연금이 지급됐지만, 2013년부터는 65세부터 수령할 수 있다. 그나마 이것도 늦추려는 논의가 있고, 70세까지 고용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일본 정부의 조치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상향 등을 골자로 한 연금개혁 법안이 의결됐다. 오는 2022년 4월부터 시행될 이 법안은 65세부터 가능한 공적연금 수급 나이를 본인이 희망하면 75세까지 늦출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수급 개시 시기를 1개월 늦추는 것에 비례해 연간 수령액을 0.7% 가산토록 했다.

의료비도 문제가 된다. 지난달 11일 일본 내 75세 노인의 의료비 자기부담금 비율을 10%에서 20%로 인상하는 관련법 개정안이 중의원 본회의 통과했다. 연금문제와 비슷한 맥락이다. 현역 세대의 부담을 줄이려는 조치라는 것이 명분이다. 병원을 이용하는 고령자 입장에선 의료비가 두 배로 인상되는 효과를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참의원들도 찬성하면 이 법은 2022년부터 시행된다.

공적 비용의 부족은 노인을 돌볼 인력과 시설의 부족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31일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의 74개 주요 도시 가운데 개호(노인 간호) 시설 확보를 위한 3개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곳이 82%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시설 부족이 표면화되면서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특별요양노인홈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는 이들은 2019년 4월 기준 전국적으로 약 32만 6천 명에 달했다.

이렇듯 일본의 '70세 정년'으로의 변화는 들여다보면 마냥 부러워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우리 역시 사회 구조가 초고령사회로 변화하고 있고, 그 속도는 일본 이상이다. 일본의 단카이 세대는 노동이 불가능한 시점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우리의 베이비 부머들은 아직 경제활동 중인 액티브 시니어다. 이들의 정년은 막 시작됐을 뿐 아직 '노동시장'에 본격적으로 유입되지 않았다.

이에 반해 사회적 보장제도는 일본에 비해 더욱 미흡하다. 노령연금 월평균 급여액은 2019년 기준 52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노인빈곤율도 OECD 국가 평균 14.8%에 비해 크게 높은 43.4%에 달한다. 별다른 대책 없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맞이했다가는 큰 혼란을 맞이할 것이 자명하다.

우리도 정부 차원의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60세 이상 정년을 맞이한 근로자를 재고용하는 경우 지원금을 지급하는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 제도가 지난해부터 시행 중이고, 3기 연구가 진행 중인 정부의 인구정책 TF에서는 2022년 고령자 계속고용제도 도입을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인구절벽은 빠르게 일어나고 있고, 고령 인구의 의료비 증가 등 현실적인 문제들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심사숙고할 시간이 많지 않다. 대책 마련이 필요한 때다. 상황이 심각해진 후에 고령계층에 대한 정부 공적자금 지원을 줄이고 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일본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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