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시니어클럽 편의점 매니저 조원희 씨

▲ 구로시니어클럽 GS25 선유도역점 매니저 조원희 씨(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이준호 기자)* 굿업! 평생현역 코너는 인생의 후반전에서 새로운 일터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중장년을 만나러 갑니다. 굿업은 정말 대단하다는 Good Up과 좋은 직업(業)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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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일자리라는 단어는 일자리를 연령별 수요에 따라 구분하기 위해 만든 단어이지만, 최근에는 차별적 용어로 사용되는 듯하다. 있으나 마나 한, 사회에 도움 되지 않는 선심성 일자리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실제로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몇몇 야당 의원들은 노인일자리를 '쓰레기 일자리', '정부 허드렛일', '노인 알바' 등으로 표현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인일자리 속 근무자들도 비난 섞인 표현에 동의할까? 노인일자리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편의점 근무자 조원희(68) 씨는 "결코 그렇지 않다,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지하철 9호선 선유도역 개찰구 앞 4평 남짓한 공간의 작은 편의점이 조원희 씨의 새로운 일자리다. 지난달 20일부터 운영된 이 편의점은 구로시니어클럽이 어르신 시장형 일자리 사업을 위해 경영난에 빠진 기존 매장을 인수해 개설했다. 총 14명의 어르신이 매주 3일 4시간씩 근무한다.

현장에서 만난 조원희 씨는 노인일자리의 미덕을 이렇게 표현했다.

"젊은이들과 경쟁하지 않아서 좋아요. 오롯이 노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자리니까요. (노인일자리를 폄하하는)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자리라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사정은 다 다르잖아요. 제겐 항상 일할 수 있고, 적은 수입이라도 유지하는 것이 너무 소중해요. 국가에서 마련해 준 혜택이라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어요."

▲ 조원희 씨는 대부분 손님이 예의 바르고 친절해 고객을 대하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하루 3시간, 일당 3만 원의 일자리 경험이 계기가 됐다. 조 씨는 퇴직 후 당진의 한 초등학교에서 도서관 사서 겸 책 읽어주는 선생님인 '마을 교사'로 일한 적이 있는데, 책을 낭독하는 구술시험과 컴퓨터 능력 등 공개 채용을 거쳐 어렵게 합격을 한 일자리였지만 뒷맛은 좋지 않았다고.

"좋은 일자리였죠. 퇴직 교사에게 그만한 일자리는 없었죠. 아이들과도 함께 있을 수 있고요. 하지만 채용 과정에서 저와 경쟁했던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마냥 편치만은 않았어요. 계속 남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불편함이 있었어요."

▲ 34년간 교직에 몸담은 구로시니어클럽 GS25 선유도역점 매니저 조원희 씨(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조 씨는 2015년 8월 정년 퇴임한 교사 출신. 34년간 학교에서 생활했다. 그녀는 정년 퇴임 후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영어교수법 박사학위도 있었고, 평생을 초등학교에서 생활한 경험을 살려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를 통해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지낼 요량이었다. 아이들에게 영어 등 여러 과목을 가르칠 준비를 했다. 동티모르 봉사자 모집에 합격까지 했지만, 남편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접어야 했다.

"워낙 아이를 좋아했어요. 섬마을 선생님이 되고 싶은 로망도 있었고. 교대에 가고 싶었지만 가족이 반대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조카 운동회에 갔는데,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며 제 심장도 두근거리더라고요. 다시 결심했죠. 꼭 교사가 되겠다고. 마침 모자란 교원을 충원하기 위해 교육부에서 중초교사제도를 시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어요. 제도 시작 전에 교육부에 전화해서 왜 빨리 시작 안 하냐며 닦달할 정도로 열성이었죠(웃음)."

그래서 정년퇴직 후에도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퇴직 직후에는 기간제교사도 했고, 언제 근무시간이 날지 모르는 초등돌봄교실 대체 인력 강사로도 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청년들과 경쟁하게 되면서 아이들과 가까운 일자리는 더 힘들고 어려워졌다.

"그러다 인터넷을 통해 구로시니어클럽의 이 사업을 알게 됐죠. 워낙 흉흉한 뉴스도 많으니까 가족들 걱정도 있었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 긴장도 많이 했죠. 근무 첫날 정산 후에 1천 원이 모자랄 때는 눈앞이 깜깜 해지더라고요. 포기할까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아주 익숙해졌어요."

▲ 조원희 씨는 "판매 단말기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 애썼다"며, "노인들이라고 책임감 없이 몸만 일터로 가진 않는다"고 말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물론 익숙함을 얻기까지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결제 단말기(POS)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 밤새 유튜브 영상에 매달리기도 하고, 돈 세는 것이 서투른 자신을 깨닫고 나서는 지폐를 잔뜩 준비해 집에서 연습했다. 이런 노심에 대해 조 씨는 "책임감 없이 몸만 가지는 않는다"고 표현했다. 덕분에 포인트카드나 1+1 상품 같은 복잡한 판매도 이제는 거뜬하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런 일자리가 있다는 것이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런 소중한 자리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많아요. 월급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안 돼요. 집에서만 지내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지잖아요. 나와서 가게 안을 깨끗이 하고, 손님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주고, 혹시나 지인이라도 있는지 오가는 승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일하는 보람을 느껴요. 이제는 매출이 줄면 초조해져서, 사장 같은 마음으로 일하게 됐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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