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고용평등법, 파견법, 장차법 있는데요?" 질문에 '차별금지법'이 답하다

개별법은 '근로기준법 상 노동자'만 보호 대상... '간접차별' 확대 논의도 어려워

권현정 기자 | 기사입력 2021/05/18 [17:44]

[현장] "고용평등법, 파견법, 장차법 있는데요?" 질문에 '차별금지법'이 답하다

개별법은 '근로기준법 상 노동자'만 보호 대상... '간접차별' 확대 논의도 어려워

권현정 기자 | 입력 : 2021/05/18 [17:44]

▲ 18일 조혜인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가 차별금지법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프리랜서 노동자 A씨는 사업주에게 '여자라면 옷을 이렇게 입어야 한다'는 식의 지시를 반복해 들었다. 이에 A씨는 남녀고용평등법상 '성희롱'으로 고발하려 했으나 법이 정하는 구성요건인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취준생 B씨는 암투병생활을 마치고 직장을 구하기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채용 전 건강검진서를 떼어오라는 회사 측의 요구에 따랐다가 탈락했다. 이에 B씨는 사례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신청했고, 인권위는 시정을 권고했지만, 회사 측은 불수용했다.

 

현재 고용시장에는 남녀고용평등법, 파견법,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 기간제법, 연령차별금지법 등이 특정한 사유로 발생하는 차별을 제가끔 저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각각 성별(을 포함한 혼인·가족지위·임신출산), 고용형태, 장애 여부, 나이를 사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다만, 시민사회는 여전히 포괄적 차별금지법(이하 차별금지법)으로 개별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차별이 '단 하나의 사유'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아래 18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기자간담회 내용을 바탕으로 시민사회가 말하는 차별금지법 필요에 대해 정리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아니라면 문제 제기 창구 좁아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성별을 포함한 임신·출산 등의 사유로 채용 또는 근로의 조건을 다르게 하는 등 불리한 조치를 하는 것, 사업주 및 상급자가 근로자에게 성희롱하는 것 등을 금지하는 법이다.

 

근로기준법의 하위 항목인 '직장 내 괴롭힘' 조항 역시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에 대해 제재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사유를 이유로 적대적·모욕적 환경을 조성하는 등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얼핏 비슷한 조항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녀고용평등법 내 성차별·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의 성립 조건은 '근로기준법'의 영향을 받는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간접고용, 특수고용,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는 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차별행위가 '하나'의 법만을 위반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제도적 공백도 있다. 성희롱과 직장 내 괴롭힘이 합쳐진 '성차별적 괴롭힘' 등이다.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사례에서는 ▲회장의 생일 축하 자리에 여성 직원들만을 동원한 사례 ▲'청소는 여자 일', '회사 전화는 여자가 받아야' 등의 발언을 하는 사업주 ▲살을 빼고 오라며 무급휴직을 강요한 사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사례들은 '성희롱' 요건이나 '직장 내 괴롭힘' 요건을 충족할 소지가 있지만, 실제 법 해석 과정에서 충족된다는 결론이 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법조계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는 행위'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의한다. 성희롱을 규정하고 있는 남녀고용평등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성적 언동 등으로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껴야 한다는 조항을 단다.

 

차별금지법의 경우 성희롱의 구성요건에 피해자의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묻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범위를 넘어선 노동자 역시 적용대상으로 포함한다.

 

근로기준법상 차별금지와 '가리키는 지점'이 다른 까닭이다.

 


'차별'에 대해 사회, 조직 책임 물을 수 있어야


 

지난해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등을 이유로 ▲고용 ▲재화·용역 등의 이용 ▲교육 및 직업 훈련 ▲행정서비스에서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 등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차별'로 정하고 있다.

 

'차별을 받은 개인이 상처를 받았는지'가 아니라 '차별행위가 개인이 정당한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지'를 차별의 성립 요건으로 명시한 셈이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에서 '차별'은 개인의 범법을 넘어서, 어떤 조건을 가진 개인이라면 배척하는 '조직'까지 가리킨다. 법 적용 시 '조직 규율 시정'까지 말할 수 있는 셈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조항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경우, 사용자가 행위자에 대한 징계를 내리는 등 조처를 해야 한다.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행한 경우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발생한다.

 

차별금지법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시정 권고 및 시정명령을, 법원은 적극적 조치 명령 및 손해배상 조처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간접차별' 등으로 '문제 제기가 가능한 차별의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도 언급됐다.

 

'간접차별'은 중립적인 기준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특정 사유를 가진 개인에게 불리한 조건을 가리키며, 현재 남녀고용평등법에 제한적으로, 장차법에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지난 2016년 광주지법은 중등 특수교사 임용시험에서 장애인의 능력평가를 위한 보조수단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애인 응시자의 불합격처분을 취소하도록 했다. 

 

장차법 제 4조 1항 2호가 '형식상으로는 불리하지 않지만,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기준을 적용해 장애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를 금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장차법은 2006년 제정, 2007년 시행됐다. 2006년 14.1%였던 장애인 차별 진정 사례는 2007년 22.1%, 2008년 46.4%까지 급증했다.

 

이날 조혜인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실제로 문제 제기를 해서 문제를 고칠 수 있었는지 이전에 사람들이 신뢰하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사회인가가 문제"라며 "문제 제기가 계속돼야 문제를 고쳐나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1.7%는 차별을 받은 후 '무대응'했다고 밝혔다. 이유로는 실효성 부재(40.0%), 보다 심각한 문제 우려(30.8%), 대응방법 미인지(26.7%) 순이었다. 도움요청 대상은 친구 등 지인(71.2%), 가족(42.3%), 노동청 노동위원회(26.9%) 순이었다.

 

한편, 차제연은 오는 25일부터 30일간 국민동의청원 '차별금지법 제정하자 10만 행동'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