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이 남자의 '시간'과 '방향'

지체장애 1급 '책 아저씨' 강남국 작가의 일일, 그리고 365일

박윤미 기자 | 기사입력 2021/05/18 [16:45]

[울타리] 이 남자의 '시간'과 '방향'

지체장애 1급 '책 아저씨' 강남국 작가의 일일, 그리고 365일

박윤미 기자 | 입력 : 2021/05/18 [16:45]

▲ 강남국 작가(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박윤미 기자) * 울타리[fence]: 모든 사람이 가족과 이웃이 되는 이야기들. 

 

대부분의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부모와 가정, 학교 같은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간혹 울타리 없는, 누구보다 울타리가 필요한, 울타리 밖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스스로 울타리를 걷어찬 이들도 있습니다. 코너 [울타리]는 그런 이웃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독자들의 관심이 그들에게 필요한 울타리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설한 코너입니다. 기사를 읽는 동안만큼은 마음의 울타리를 활짝 열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유일하고 참된 교육자는 자신을 스스로 교육한 사람이다."

 

지속하는 것에는 힘이 있다. 방송인 김구라 씨는 한 프로그램에 나와 "미친 짓도 10년을 했더니 (사람들이) 알아주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세월을 겪어 낸 사람은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 시간은 힘을 가지고 있다.

 

지체장애 1급 강남국 씨는 책을 네 권이나 펴낸 작가다. 그가 쓰는 글을 주로 칼럼이나 에세이다. 가장 최근에 펴낸 책 '책 아저씨, 강남국'은 2008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그가 읽고 쓴 글들을 묶은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평범했던 일상을 잃어버렸지만, 다행히 지난 몇 개월 책과 훨씬 가깝게 보낸 시간이었다'는 서문은 이 책의 태동을 짐작게 한다.

 

그가 가진 직업은 작가뿐 아니다. 작가가 본업이기 전 그는 '배운 것, 아니 독학한 것 남 주는 일'을 주로 했다. 영어 과외교사로 활동한 것만 45년, 복지관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친 것은 28년째다.

 

2005년 8월 발족한 '활짝 웃는 독서회'에서는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 모임의 회원은 대부분 장애인이다. 그는 독서회 출범 당시 "장애인들에게 책 읽는 기쁨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독서회 회지 또한 작가 혼자 만든다. 그러니 잡지사(출판사) 대표 겸 편집자 또한 그의 직업인 셈이다. 그 일을 하는 곳이 집일 뿐. 그는 회원들을 독려해 원고를 받고, 추천하고픈 유명 작가의 글 등을 골라 회지에 싣는다. 교정을 보고 A4 용지 양면에 인쇄하면, 회지는 그렇게 스테이플러에 맞물려 한 권 책이 된다. 지난 4월로 188번째 회지가 발행됐다. 단 한 차례의 결호도 없었다. 매주 마지막 주 금요일 모임이 있기 전날까지는 하늘이 두 쪽 나도 회지는 발행된다. 그가 자부심을 품고 16년 6개월 동안 성실하게 해 온 일이다.

 

▲ '활짝 웃는 독서회' 회원들과 강남국 작가(사진=강남국 작가 제공)  © 팝콘뉴스


강남국 작가는 2019년 '한국장애인문인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이 단체는 장애가 있는 문인과 비장애인 문인 간의 교류, 장애인 문인들의 작품 홍보, 장애인 교육과 문단 데뷔 교섭 등을 목적으로 한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그가 이 단체의 회장직을 맡은 것은 자리 욕심 같은 단순한 생각 때문이 아니다. 주변에서도 "또?"라던가 "왜?"라는 질문은 더는 하지 않는다. 그는 지속함으로써 그를, 그의 일을 입증했다. 그렇게 그는 힘을 가졌다.

 

곧 강남국 작가 제안에 따라 서울 강서구에도 강서구장애인문인협회가 만들어진다. 당연히 초대 회장은 그다. 그의 하루는 조금 더 길어질 예정이다.

 

강남국 작가는 수십 년간 매일 아침 7시 20분 기상을 철칙으로 해왔다. 이 시간은 그의 몸이 이부자리와 떨어지는 순간일 뿐. 이보다 먼저 다섯 시에 눈을 떠 두어 시간 책을 읽는다. 새벽이 아침이 되는 그 시공간이야말로 가장 독서하기  좋다고 그는 귀띔했다. 어쩌면 그가 시간의 사치(?)를 누리는 유일한 때일지도 모른다.

 

샤워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하기 전 그에게는 또 다른 의식이 기다리고 있다. 300~600자 내외의 칼럼을 쓰는 일. 그렇게 매일 칼럼니스트와 에세이스트로 본격적인 하루의 장을 열어젖힌다.

 

매주 화, 목요일 오전 10시에는 집 근처 복지관에서 그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만난다. 무료로 진행되는 이 수업은 최근 강 작가에게 뜻밖의 영감을 선물했다. 평균 반백 년을 산 학생들이 십시일반 한 선물 봉투에 쓰인 열 글자 '좋은 가르침, 고맙습니다'이다. 작가인 그의 입에서 "백 글자, 천 글자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진 글.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고백이 흘러나왔다.

 

▲ 강남국 작가의 책 '책 아저씨, 강남국'과 '활짝 웃는 독서회' 188호 회지(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최근 세 번째 대학생이 된 터라 강남국 작가는 중간고사 준비도 하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다소 길어졌을 뿐, 대학 공부 또한 강 작가의 다른 일들과 한 곳을 향하고 있다.

 

대체 어떤 힘이 그를 이렇게 할 일 많은, 해야 할 일 많은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그리고 강남국 작가는 과연 이 많은 일을 기꺼이 즐기고 있을까.

 

그는 "(아무래도) 나는 나를 사랑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 열 글자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그의 인생, 그의 철학, 그의 삶까지도.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워커홀릭'이라고 한다. 그도 어느정도 인정하는 눈치다. 그런 그가 2년 전부터는 일 정리(?)를 하고 있다는 뜻밖의 말을 했다. 그의 일 중 가장 품이 많이 드는 '활짝 웃는 독서회' 회지 또한 200호까지만 채울 생각이라고. 이제 1년 남았다. 단, 이 일을 대신할 누군가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처럼 장애가 있는 이들은 집 밖으로 나올 기회가 많지 않다. 나는 장애인들에게 문학이 주는 기쁨을 알게 해 주고 싶다. 결국, 지금 내가 맡은 여러 일은 '자리'라기 보다는 '통로'인 셈이다. 이 일을 함께해 줄, 또는 대신해 줄 장애인들이 많이 집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강남국 작가의 방은 강 작가의 얼굴이다. 세 개의 면을 꽉 채운 그의 서가에는 사람 강남국의 삶의 증거로 빽빽하다. 대통령 표창장과 장관상 등의 상패는 북엔드(책이 쓰러지지 않도록 버티게 해주는 물건)로 책들과 어울려 있다. 그러니 그가 이곳에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집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