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시니어클럽 노고산떡볶이에서 만난 김순래 씨

▲ 마포시니어클럽 노고산떡볶이에서 만난 김순래 씨(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이준호 기자)* 굿업! 평생현역 코너는 인생의 후반전에서 새로운 일터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중장년을 만나러 갑니다. 굿업은 정말 대단하다는 Good Up과 좋은 직업(業)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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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에게 사업 실패는 일종의 공포다. 누군가는 아파야 청춘이라고 말하지만, 평범한 노년은 실패로 인한 고통을 추억 삼을 여유가 없다. 작은 가게라도 중도에 넘어진다면 재도전은커녕 다시 일어설 힘을 내기도 어려운 것이 이들이다. 때문에 작은 시도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이지만, 현명하게 도전 방법을 찾는 사람도 있다. 마포구 노고산떡볶이에서 만난 김순래(67) 씨가 그랬다.

"작은 가게를 갖는 것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꿈이었죠. 그래서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나름대로 시장조사도 했었어요. 하지만 실패하면 어떡하나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진 채로 살다가 마포시니어클럽을 만나게 됐죠."

김순래 씨가 마포시니어클럽을 알게 된 것은 문화센터에서 자격증을 취득했던 5년 전쯤의 일이다. 마포시니어클럽은 노인 일자리 마련을 위해 마포구 관내에 주요 시설 4곳에 카페를 운영했는데, 김 씨는 상암 지점에서 4년을 일했다.

"재미있었죠. 모처럼 배운 기술을 써먹을 수도 있고, 카페를 차린다면 어떻게 일을 해야 하고, 내 가게라면 어떤 장단점이 있을지 알 수 있었으니까요. 평생을 주부로 살아온 만큼 적응도 그리 어렵지 않고 일하는 것이 즐거웠었죠. 오래 일하면서 차츰 단골이 많아지는 것도 재미 중 하나였어요. 얼굴만 봐도 뭘 시킬지 어떤 토핑을 좋아하실지 바로 알아챌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이 기쁨은 지난해 끝나버렸다. 코로나19가 문제였다. 전국적인 코로나19 유행과 방역을 위한 대응 조치로 인해 카페가 있던 마포주민편익시설 등 주요 시설이 문을 닫았고, 카페 역시 운영이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 마포시니어클럽 노고산떡볶이에서 만난 김순래 씨(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그러다 좋은 소식을 만났다. 지난 2월 성실했던 김 씨를 눈여겨본 마포시니어클럽 측의 신규 사업 참여 제안이었다. 그렇게 노고산떡볶이를 만났다. 그녀는 '평생현역'을 이어갈 이 기회가 무척이나 반가웠다고 했다.

"떡볶이, 김밥을 파는 분식집도 제가 꿈꿨던 가게의 후보군 중 하나였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큰 자본이나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이니까요. 동네에서 작게 할 수 있는 가게라는 것이 카페나 분식집 같은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일도 배우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이것처럼 좋은 기회는 없죠."

그렇다고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잔뜩 만들어 놓고 퍼주는 형태가 아니라 주문과 동시에 조리를 시작하는 방식이다 보니 '퍼주기'에 익숙한 손님들의 양해를 얻어야 했다. 코로나19 시대에 위생과 고객의 편의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여전히 투덜거리는 손님도 있지만, 맛있다는 입소문도 퍼져 단골도 많이 생겼어요. 주변 중학교 학생들도 많이 찾고, 신촌 근처이다 보니 대학생 손님도 많아요."

▲ 미리 섞어 둔 '비법 가루'와 재료, 물만 넣고 끓일 수 있도록 조리법을 단순화 해 누구나 같은 맛을 낸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곧 고희(古稀)를 앞둔 나이. 김 씨에게 이렇게 일을 이어 나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작은 꿈을 위해 하루하루 경험을 쌓아가는 것도 즐겁지만,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어 좋아요. 함께 일하는 동료, 가게를 찾는 손님과 매일 만나며 이야기도 나누고 정보도 교환하며 살 수 있으니까요. 현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식도 알게 되고요. 방안에만 갇혀 있다면 알 수 없는 일이잖아요. 덕분에 괜한 고집부리지 않고, 양보하고, 배려할 줄 아는 여유도 갖게 됐죠."

신혼생활을 거쳐 1987년 마포구에 이사 온 이후 토박이로 살아온 김 씨는 이웃들에게도 열심히 일하는 즐거움을 설파 중이다. 오랜 기간 동네에서 통장으로 활동한 덕분에 알고 지내는 이웃도 많고, 그녀에게 설득돼 함께 일하는 동료도 적지 않다고.

"내일을 갖는다는 것은 삶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할일이 없으면 지금 일상을 내일 해도 상관없으니 쉽게 미루는 삶이 돼요."

▲ 최근 코로나19로 인기를 얻고 있는 밀키트(간편 조리식품) 상품을 포장하고 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김 씨가 마포시니어클럽의 노고산떡볶이를 통해 분식업과 관련해 다양한 노하우를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담당자들의 노력이 컸다. 중장년 일자리를 제대로 창출하려면 장사가 잘되어야 하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었기 때문. 아무리 공공사업이더라도 아무도 찾지 않는 매장에 직원을 늘릴 수는 없었다. 노고산떡볶이를 담당하는 조원재 사회복지사는 작은 매장이지만 모두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고 말한다.

"중장년 근로자들이 쉽게 근무할 수 있도록 레시피를 단순화하면서도 손님의 입맛에 맞도록 개발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컨설팅도 받고, 유명하다는 떡볶이 매장은 찾아가서 맛을 보고 핵심을 물어보기도 했어요. 조리법뿐만 아니라 음식의 크기와 포장이나 근무자의 동선까지 고민하지 않은 것이 없었죠."

활성화를 위한 노력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일반적인 분식집과 차별화하기 위해 최근 내놓은 밀키트(간편 조리식품)도 서서히 인기를 얻고 있고, 배달앱 등록을 통한 배달판매도 추진 중이다. 이 노력들은 고스란히 근무하는 중장년의 노하우가 된다. 마포시니어클럽은 이를 통해 노고산떡볶이의 근무 인원을 현재 10명에서 16명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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