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정리, 고독사 사망자의 뒤처리 직업 아냐"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 공식 티저 이미지(사진=넷플릭스 코리아) © 팝콘뉴스


(팝콘뉴스=이준호 기자)* [이준호의 노후낙낙]은 올바른 노후생활을 위한 시니어 문화를 진단합니다. 낙낙은 즐겁다는 樂樂의 의미와 ‘넉넉하다’는 뜻, 노후를 노크한다는 Knock Knock의 중의적인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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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참 큰일이네요, 인식이 정착될 만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요."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다소 격앙돼 있었다. 전화 속 주인공은 국내 업계에서 1세대, 그중에서도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유품정리사다. 그런 그가 화를 내고 있었다. 그것도 전문분야와는 무관한 '넷플릭스'를 상대로 말이다. 매년 5천억 원 이상 콘텐츠 개발을 위해 국내에 투자하고 있는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이 유품정리와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

오는 14일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한 웹드라마 시리즈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라는 작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청년과 출소한 그의 삼촌, 두 유품정리사가 고인의 못다 말한 이야기를 듣는다'라는 것이 넷플릭스 측이 공개한 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 특정 직종을 다루면 관심과 인기는 오르기 마련이다. 즐거워하는 것이 종사자들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현직 유품정리사가 이 드라마에 대해 걱정한 것은 작품 속 묘사 때문이다. 사전에 공개된 예고편을 살펴보면 작업장소, 즉 고인의 방으로 보이는 공간에서 유품정리사인 주인공이 방호복 차림으로 차분하게 유품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는 모습이 나온다.

문제는 왜 방호복 차림이냐는 것이다. 아직 공개조차 안 된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낸다는 것 자체가 속단일 수 있지만, 그의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유품정리사란 직업이 국내에 소개될 때 이러한 '자극적인 표현'은 언론에 의해 여러 차례 반복되어왔다. 허름한 집에서 독거노인과 같은 소외계층이 집주인 등에 의해 죽은 채로 발견되고, 이 '현장'을 정리하기 위해 해결사처럼 나서는 방호복과 마스크를 입은 전문가의 모습은 이젠 클리셰로 느껴진다. 보기만 해도 현장의 혈흔이나 악취가 떠오를 정도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역할은 유품정리라는 분야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케이블채널 tvN의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이 분야의 전문가가 '특수청소전문가'로 소개된 것도 이 때문이다,

유품정리인은 고독사나 살인으로 사망한 고인의 '뒤처리'를 위한 직업이 아니다. 유품정리는 고령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는 '생전정리'를 돕고, 사망 이후에는 고인의 물건을 어떻게 정리할지 유족과 상의해 처리하는 과정을 말한다. 유품의 처리는 단지 지금의 자리에서 '없애는' 것에 그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가치 판단부터 시작된다. 권리관계 계약서나, 귀중품, 골동품과 같은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예술적, 학술적 가치 혹은 추억이 담긴 물건 등 남길 물건을 판단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이후 이에 따른 상속 등의 법적 절차나 세무 처리까지 돕는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방호복 따위는 필요 없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 공식 티저 이미지(사진=넷플릭스 코리아) © 팝콘뉴스


유품정리는 일본에서 먼저 시작됐다. 일본 사회에서 상식처럼 당연시되는 '종활'과 연관이 있다. 종활(終活, 슈카쓰)은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기 위한 다양한 준비 활동을 뜻하는 일본 사회의 신조어다. 대학 졸업 예정자들의 취직 활동을 취활(就活, 슈카쓰)라고 줄여 부르는 것에 빗댄 것으로 발음까지 같다.

종활은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기 전 다양한 소유물을 생전정리하는 활동이다. 부동산이나 주식, 계좌정보부터, 가구나 집안의 물품 등도 정리의 대상이 된다. 최근 일본에선 자신의 디지털 데이터나 SNS 계정도 생전정리 대상으로 보고 있고, 코로나19로 인해 예기치 않은 죽음이 늘면서 '버킷리스트'의 실행도 종활로 포함하는 추세다.

그러나 국내에선 유품정리가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유품정리사가 사망이 발생한 장소의 특수 청소쯤으로 치부되는 경향도 있는 데다, 우리나라 국민 중 상당수가 병원에서 사망하는 것도 원인 중 하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사망자 중 74.9%가 의료기관에서 생을 마감했고, 자택 사망은 15.3%에 불과했다. 질환 이외의 사망이 10% 내외라는 점을 고려하면 높은 수치다. 결국, 병이 생기면 집안의 물건은 손 쓸 틈도 없이 병원 생활이 이어지다 사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셈이다.

조급해하는 유족의 입장도 연관되어 있다. 고인이 거주하던 부동산을 빨리 처분하고자 하는 몇몇 유족에게 유품은 그저 불필요한 짐일 뿐이다. 실제로 값나가는 물건을 골라내는 '보물찾기'가 끝나면 폐기물업체에 맡겨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문에 유품정리인들은 죽음을 앞둔 고령자가 존엄을 존중받고 인생을 마무리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망 후에도 마찬가지다. 전문가의 손을 거치지 않더라도 고령자나 유족이 직접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유품정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를 이들은 바라고 있다.

유품정리 업계의 인식 변화 노력 과정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당황스럽다. 특히 지긋지긋한 방호복의 등장이 반가울 리가 없다. 물론 드라마는 공개 전이고 유품정리사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이다 보니 방호복은 강박증세를 표현하는 기구일 수도 있다. 걱정하기엔 이르다. 그래도 이 드라마를 기다리는 유품정리사들의 시선은 즐겁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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