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신발이 누군가에게 딱 맞는 특별한 신발이 되기까지

▲ 올림픽신발 이환우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요. '조금 파다가 말고, 조금 파다가 말면 물이 나오겠냐, 이놈아.' 이것도 조금 해보다가 안 된다고 하고, 저것도 조금 해보다가 안 된다고 하느니 지금 하는 것에 더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 말씀을 듣고 신발가게를 이어온 지 어언 40년째. 아직도 '올림픽신발'에는 새까맣게 빛나는 멋진 구두부터 발에 날개를 달아줄 가벼운 운동화, 농사일에도 물 샐 틈 없는 장화, 어떤 위험에도 발을 지켜줄 믿음직스러운 안전화까지 사이좋게 짝을 이뤄 줄지어 있다.

이렇게 빼곡한 신발들 사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가게 주인이 바로 이환우 대표다. 단골이 오나 마실 온 시장 사람들이 오나, 처음 보는 외국인이 와도 소탈하게 인사를 건네는 그는 이곳에서 신발을 팔고, 가족을 건사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사가 안될 때마다 그만둘 생각도 있었지만, 그래도 올림픽신발을 지켜 나갈 수 있는 건 단골들과의 믿음과 주변 상인과의 유대감, 그리고 오랜 세월을 지켜 온 올림픽신발에 대한 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내가 시작한 가게가 부부의 생계가 되다


올림픽신발은 이환우 대표가 아닌 배우자 '민선순'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 첫 시작이 배우자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공무원으로 있는 남편의 월급은 남편 술값으로도 부족했으니 생활비는 늘 쪼들렸다. 그러자 아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근대화슈퍼'라는 큰 슈퍼마켓을 두 개나 하는 동생을 보며 '돈을 벌려면 장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생활비 조금 벌어보려고 한 일이 예상보다도 훨씬 잘됐다. 장사가 너무 바빠 아내는 식사도 못 하고 일을 해야 할 때가 잦았고, 갓 낳은 큰애를 돌보기 벅찼다. 그렇게 한두 해가 지났을까. 결국 김포군청에서 논두렁, 밭두렁을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던 남편은 신발가게로 들어섰다.

"그 뒤에도 워낙 장사가 잘됐어요. 봉고 하나 가득 꽉꽉 차게 신발을 실어다가 풀어놓으면 금방금방 나갔어요. 때마침 교복 자율화가 되면서 국민학생(초등학생) 가방이며 신발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어요. 그때는 가게 문도 안 열고, 셔터를 조금만 열어놨어요. 그 사이로 돈 주면 그냥 가방을 주는 거야. 마음에 드는 가방을 고르는 게 아니라 가방이 있으면 살 때였어요. 그렇게 팔아도 부족해서 또 사 오고, 또 사 오고 그랬지."

IMF 직전까지만 해도 문턱이 닳을 정도로 찾아오는 이들로 '올림픽신발'은 항상 붐볐다. 그런데 IMF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겠다고 생각했던 매출은 코로나19로 인해 더 떨어졌다.

"요즘은 IMF 때보다도 힘들어요. 하루를 그냥 기다리는 거야. 그나마 될 때는 50, 60만 원도 파는데, 안 될 때는 겨우 개시나 하죠. 그래도 예전에는 희망이라도 있었죠. 지금은 비빌 언덕도 없어요."

▲ 장화부터 안전화까지 다양한 신발을 팔고 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정을 주고, 받으며 40년의 인연을 지켜오다


이환우 대표는 그럼에도 올림픽신발을 찾는 한 명, 한 명의 고객이 필요한 신발을 찾아주는 일에 보람을 느끼곤 한다. 신발은 세상을 디딜 때마다 필요한 물건이기에 원하는 신발을 구해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크다.

"요즘은 소아마비를 앓은 사람이 별로 없는데, 예전에는 소아마비에 걸린 사람들이 많았어요. 소아마비를 겪은 고객이 우리한테 와서 구두를 사고 싶다는 거야. 그런데 한쪽 발은 크고, 다른 쪽 발은 작았어요. 구두공장에 말했더니 양쪽 사이즈가 다르다면서 안 만들어주겠대. 그래서 '모자라는 부분은 내가 채워주겠다'면서 담배 한 갑 찔러주고 살살 꼬여서 만들게끔 했죠. 나랑 오랫동안 거래하는 공장이니까 잘 알거든. 그렇게 구두를 만들어줬더니 그분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인심 넘치는 덤 덕분에 올림픽신발 단골이 된 이들도 많다. 종갓집이라서 유독 선물세트가 많이 들어온다는 이환우 대표는 그 선물세트를 가게에 가져와 올림픽신발을 찾아온 이들에게 하나씩 건넨다. 비누, 식용유, 샴푸 등 때마다 그 종류도 다르다. 심지어는 이곳을 찾는 외국인 고객에게도 정으로 전해지는 덤은 다르지 않다.

"물건은 많고, 쌓아놔 봤자 어차피 또 들어올 텐데요. 다 팔 수도 없고. 그래도 여기서 고객들에게 주면 좋아하니까 주기 시작했어요. 이건 처음 가게 열었을 때부터 그랬지. 처음 받는 사람들은 이상해 해. 주는 나도 좀 이상한 건 알지."

처음에는 덤을 낯설어하던 이들도 두 번, 세 번 웃음 지으며 찾아오게 하는 건 그 물건 하나 때문이 아니다. 무엇이라도 주고 싶은 그 정을 느끼고 싶어서일 것이다.

▲ 40년을 지켜온 올림픽신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사랑방으로 이어지다


오래전부터 올림픽신발은 양곡시장의 사랑방으로 통했다. 주변 상인들이 자주 마실 와서 이런저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터놓고 말하고, 단골손님도 이는 마찬가지다.

"특별한 얘기를 하러 오는 건 아니에요.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죠. 무슨 얘기든 다 해도 좋은데, 딱 한 가지 안 받아주는 게 있어. 정치 얘기는 일절 못 하게 해. 그건 밤을 새워도 끝나지 않아서 단골이든 시장 사람들이든 못 하게 하지."

정치 얘기 빼고는 무슨 말이든 한다는 이곳은 오랜 토박이들에게는 고향을 대표하는 곳이기도 하다. 학교 다닐 때 올림픽신발에서 운동화를 샀던 그 집 딸내미가 이제는 다 커서 신발을 사러 오고, 또 그 자식 역시도 이곳에서 새 신발을 사는 경우도 태반이다.

"와서 '우리 엄마가 그 집 가서 사라고 해서 왔어요'라고 해서 누구인지 물으면 옛날에 아기 학교 들어간다고 신발 사던 엄마였어. 근데 그 아기가 다 커서 나이가 40이라고 하더라고. 이제는 노인네가 된 그 엄마도 한 번씩 나와서 '아유, 우리 딸 왔었다며?' 하고 물어보고. 그러니 나도 나이가 많이 들었구나 싶어요."

이야기를 듣다가 이환우 대표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도 한다. 조상 대대로 김포에 살던 토박이인 데다, 양곡시장 상인회장을 맡은 그는 지인도, 인맥도 촘촘한 만큼 누군가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일이 있으면 자기 일처럼 알아봐 주곤 한다. 그러니 전화 한 통이면 요즘 농약은 뭐가 좋은지, 누구는 뭐 하면서 살고 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이렇게 정 많고, 사람 좋은 그가 원하는 건 단 한 가지, '이곳이 살기 좋은 곳이 되었으면'하는 바람이다.

"시장이 예전처럼 북적북적하면 당연히 좋지. 그런데 그것보다도 나는 이 동네가 사람이 모여 살기 좋은 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편안하고, 정이 넘치는 동네. 예전에 우리 할머니가 떡을 하면 동네 집집마다 다 돌렸어요. 그때는 다 그랬거든. 그런 게 참 좋았어."

정을 얻기 위해 올림픽신발을 찾는 이들은 원하는 만큼의 정과 신발 한 켤레를 덤으로 얻고 돌아왔다. 신발이 다 닳아서 새로 사야 할 때까지 그 정은 마음속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딛게 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올림픽신발에서 파는 신발은 모두 그런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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