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돕고 싸워온 10년...소액대출 사업, 마을활동 이어온 배경에 믿음직한 '우리' 있어

▲ 동자동사랑방 전경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나무현판 아래로 놓아둔 플라스틱 간이의자가 쉴틈없이 비워졌다가 채워졌다. 건물 안쪽 테이블 위로 '미얀마 시민행동 모금함'이 보였다. 3000원을 넣었으니 장부에 올리라는 말과 2만 원을 납부한 주민에게 던지는 걱정의 말도 오갔다.

누군가의 방청소를 하기 위해 골목을 오르는 몇몇의 주민들을 지나보내고 동자동사랑방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10여 년 자리를 지켜온 동자동 쪽방촌 주민 조직의 이야기를 골목 한 켠 볕드는 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한 지붕 두 가족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동자동에 위치한 쪽방은 대개 한두 평 짜리다. 한 층에 열 세대 안팎이 자리하고 있고, 화장실은 층에 하나가 있거나 건물에 하나 있다.

오래된 건물이라 집 곳곳이 고장이 나는데, 집주인에게 수리 약속을 받아내는 일은 어렵다. 몸이 불편해 혼자 병원에 다니기 어렵거나 의료 수급 대상이어도 의료비 불안으로 병원 방문을 꺼리는 주민들도 있다.

동자동사랑방은 지난 2007년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서로의 어려움에 소매를 걷어부치며 시작됐다.

주민들끼리 힘을 합쳐 서로의 방을 도배했고, 자가수리가 마땅치 않은 주민의 방에 들러 집수리를 도왔다. 아픈 주민이 있으면 병원까지 동행했고, 끼니를 거르는 주민들을 위해 식사도 나눴다. 홀로 사망한 주민의 장례를 함께 하고, 방청소에 나서기도 했다.

2011년에는 주민들의 저축성 함양을 위한 소액대출 사업 시행을 위해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당시 사랑방마을 공제협동조합)'을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설립하기도 했다.

쪽방촌 주민들 중 다수가 신용불량 등으로 은행 거래를 꺼린다는 점을 해소하기 위해, 조합원이 그달 여유만큼의 출자금을 납입하면, 총 자기 출자금 중 70%만 소액 대출할 수 있게끔 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 탈퇴 전까지 최소 30%는 꾸준히 저축되는 셈이다.

지난 2월 기준,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회원 겸 동자동사랑방 주민활동가는 389명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일부 사업이 축소되기는 했지만, 주민활동가들은 여전히 마을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월 기준 병원동행 7회, 수리 1회, 이사 1회, 방청소 3회, 장례 예식 참여 등을 함께했다.

대출사업도 지난 2월 기준 상환율이 91.9%에 달하는 등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월 기준 총 출자금은 약 3억6000만 원으로, 2월 한 달만 2,222만 8100원이 출자금으로 모였다.

김영국 동자동사랑방 주민활동가 겸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회원은 "매달 보통 12만 원 정도 집어넣는다. 다른 사람들도 수급 받고 월급 받아서 여유되면 다달이 집어넣고 있다"며 "소액대출하고, 목돈이 필요하면 탈퇴했다가 15일 후에 재가입하고 그런다. 든든하다"라고 말했다.


"등에서 뜨끈한 게 느껴져요, 진짜 그게 느껴져"


현재는 많은 주민들이 오며가며 말을 붙이고 활동을 꾸미는 동네 '사랑방'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고 사랑방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다만, 조직의 활동을 계속 보면서, 또 조직에 직접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신뢰'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활동은 다 주민활동가분들이 결정한다. 식도락이나 매주 금요일 하는 법률상담의 경우 (조직이)조금 나눠져 있지만, 그 안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다 주민분들"이라며 "단체가 주민들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단 걸 확인하시고, 출자금도 내고, 활동도 참여하시고 한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동자동사랑방 활동가 중 '월급을 받는' 활동가는 박승민 활동가를 포함해 두 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주민활동가들의 몫이다.

2013년 처음 동자동쪽방촌으로 들어왔다는 김정호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이사장은 "아픈 사람 있으면 죽이라도 사다 주고, 돌아가신 분 유족들이 오면 돈도 챙겨드리고 하고 있다"며 "참여하다보니 없는 사람들끼리 힘을 모은다는 게 뿌듯하더라. 등에서 진짜 '뜨끈한' 게 느껴진다"고 활동의 동기를 전했다.

소액대출 사업 역시 '우리 조직'이라는 데서 오는 신뢰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어려운 처지를 서로 잘 알기 때문에 '떼어먹는다'는 개념은 별로 없다. 또, 갚아야지 또다른 어려운 사람들도 또 빌려간다고 생각하시니까 상환율도 높은 편"이라고 사업이 움직이는 이유를 짚었다.

김정호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이사장 역시 "(협동회의)설립목적이 주민들 저축성을 함양하자는 것이다. 술 한 잔 덜 먹고, 삶의 질도 높이자는 것"이라며 "조합원들이 돈 1~2만원이 없어서 탈퇴를 하고 또 있다가 가입을 하는 형편들인데도, 협동회를 찾아온다. '신뢰' 덕분"이라고 말했다.


"우리 마을 일이니까. 좋은 일이니까. 생각할 게 뭐 있나"


동자동사랑방의 또 하나의 특징은 '협동단결'이라고 활동가들은 덧붙였다. "가자고 하면 다같이 가는 분위기"(박승민 활동가)가 있다는 설명이다.

덕분에, 2015년 쪽방세입자 대책회의를 거친 주민 강제 퇴거 반대운동을 벌이거나 최근 동자동 공공재개발을 두고 쪽방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으라는 의견서를 구청에 제출하는 등 '마을 일'에 목소리 모으는 일도 '다함께'할 수 있었다고 활동가들은 말했다.

'마을 일' 바깥에도 꾸준히 힘을 보태고 있다. 홈리스추모제에 참여하고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 촉구 집회에 나서거나 토론회에도 참여하는 등이다.

최근에는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힘을 보태기 위해 사랑방 입구에 모금함을 마련했다. 모금함 마련 하루만에 20만 원이 넘는 금액이 모였다. 적게는 천 원부터 많게는 몇 만원까지 사랑방을 오가는 주민들이 모금에 참여한 덕이다.

김영국 주민활동가는 "(모금함에) 3000원을 내고 오는 길이다. 미얀마 상황이 좋지 않으니 내 형편에 맞게 도와주는 거다. 좋은 일이니까. 별 뜻은 없다"며 "동네 활동도 참여해달라면 하는 거다. 동네 일이니까. 생각할 게 뭐 있나"라고 말했다.

▲ 동자동사랑방 게시판. 주민협동회 소식지와 쪽방신문 등 마을 소식과 연대 소식이 잔뜩 붙어있다 ©팝콘뉴스

한편, 동자동사랑방은 곧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여전히 동자동 안에 자리하겠지만, 곧 동자동 쪽방촌의 공공재개발이 시작되고, 사랑방 역시 재개발 구역에 포함된 까닭이다.

영등포 쪽방촌의 공공재개발에 '주민 커뮤니티 시설'의 포함이 확정된 만큼, 사랑방 역시 동자동 쪽방촌의 커뮤니티 시설로 편입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공공재개발에 대해서 사랑방은 아직 목소리 낼 일이 남았다는 입장이다.

동자동사랑방의 주민활동가들은 지난 2월 18일 '개발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라'는 피켓을 들고 동자동 새꿈어린이공원으로 나섰다.

당시 주민활동가들은 "공공주택 사업은 개발이윤보다 주거권을 우선하고 소유자 중심에서 거주민 중심으로 전환하는 중요 계기가 돼야할 것"이라며 ▲개발 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까지 지원 대상자로 포섭할 것 ▲개발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주민자치조직을 TF에 포함할 것 등을 담은 의견서를 용산구청에 제출했다.

'의견서'로 제출된 공람공고에 대한 구청의 피드백은 아직 없다. 의견서에 대한 공식 답변은 없는 것이 보통이니 만큼, 아마 답변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사랑방의 판단이다.

박승민 활동가는 "주민자치조직이 이렇게 10년 넘게 활동을 이어간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런 만큼, TF에 들어가 직접 주민 얘기 전할 수 있게끔 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라며 "지금은 건물주들의 반대에 우리 목소리를 어떻게 제시해야할지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고, 이주하면 이주하는 대로 문제가 생길 것이다. 상황에 따라 대응을 해갈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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