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출산 관련 특별법 마련되면 영야 유기 줄어들 것"

(팝콘뉴스=편슬기 기자)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의 한복판, 칼바람을 맞아가며 가파른 경사의 언덕을 한참 오르다 보면 '베이비박스'라고 써 붙여진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기를 도저히 키울 여건이나 환경이 되지 않은 미혼모들이 '영아 유기'라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다.

아무 데나 버려져 목숨을 잃는 영아들의 기사를 잇따라 접하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이종락 목사가 아내 정병옥 씨와 상의해 10여 년 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설치한 공간이다.


버려지는 단 하나의 생명도 없도록…'베이비박스'


▲ 주사랑공동체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내부. 전기장판과 부드러운 수건이 함께 마련돼 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교회(이하 주사랑공동체)에 베이비박스가 운영된 지도 벌써 11년이라는 세월을 훌쩍 넘겼다.

지난 2009년 10월 처음 만들어진 이래 2020년 11월까지 1,813명의 영아들이 베이비박스에 맡겨졌다.

그중 시설로 간 아이들은 800여 명, 새로운 가정을 찾아 입양된 아이들은 130여 명이다. 원 가정으로 돌아간 아이들도 213명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베이비박스가 오히려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종락 목사는 그런 비판에 익숙하다는 듯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이 목사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 현장을 방문한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에 지나지 않는다' 베이비박스의 영아 유기 조장 주장에 대한 그의 입장이다. '베이비박스'에 부정적인 이들은 버려지는 아이들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무조건 유기를 조장하고 불법이라는 일방적인 주장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라며 반박한다.

일부 사람들의 반대는 불편하지 않다. 다만 베이비박스 운영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보다도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이다.

정부로부터의 금전적, 물질적 지원이 전무하기에 아이들이 시설에 입소하거나 새 가정을 만날 때까지 육아와 돌봄에 들어가는 비용은 오롯이 주사랑공동체가 부담한다.

그래도 11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교회에 들어오는 헌금과 주사랑공동체의 사정을 알고 전국에서 보내오는 기부금과 육아용품 덕분이다.

이종락 목사는 "건강한 공동체란 나이와 지위, 경제 능력과 가정 형편을 떠나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다양한 인간 군상이 삶을 영위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다”라며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 주사랑공동체는 관심과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미혼모와 영아들을 품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11월 베이비박스 인근에 버려진 영아가 사망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 숨진 영아를 추모하는 이 목사와 주사랑공동체 관계자들(사진=주사랑공동체). © 팝콘뉴스

11월 2일 밤 10시쯤 한 여성이 베이비박스와 불과 1m 떨어진 곳에 놓인 드럼통 위에 자신이 낳은 아기를 유기했는데, 영하로 떨어진 날씨를 견디지 못해 아기가 결국 목숨을 잃은 것이다.

베이비박스를 담당하는 이대동 목사는 "지난번에 있었던 안타까운 사건으로 이종락 목사님이 많이 힘들어 하셨다" 말문을 열었다.

베이비박스 운영 11년동안 수많은 아이를 구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도왔지만, 한 명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이 목사는 사건 당일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이대동 목사는 전했다.

아이를 유기한 친모는 경찰이 사건을 수사한 지 이틀 뒤인 지난달 4일 붙잡혔고, 영아 유기치사 혐의로 지난달 12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주사랑공동체는 비록 자신의 아이를 버려 숨지게 했지만 친모에 대해서도 따뜻한 손을 내밀었다. "산 사람은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이유때문이다.

주사랑공동체는 어렵게 친모를 만날 수 있었고, 그가 당시 받았던 심적 충격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베이비박스 찾는 여성 72% 미혼, 20대가 절반 넘어


▲ 아이를 데려온 미혼모와의 상담을 위해 마련된 베이비룸 내부 모습(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주사랑공동체가 조사한 베이비박스 방문자 통계를 살펴보면 2020년 11월 기준 미혼 여성이 72.1%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연령 대별로 살펴보면 20대(52%), 30대(28%), 10대(12%) 등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아이를 데려온 미혼부는 1년에 한 손으로 꼽을 정도에 그쳤다.

이종락 목사는 "미혼부가 아이를 데려온 경우는 1년에 고작 4명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말했는데, "미혼모들은 상대방 남성이 임신과 출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연락을 끊거나, 아예 종적을 감춰버려 행방을 모르는 상황 속에서 홀로 아이를 출산한 뒤 막막함에 주사랑공동체를 찾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주사랑공동체는 미혼모들이 보살 필 수 없는 아이를 맡아 돌보는 역할 외에도 이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도 펼치고 있다.

막 출산을 마치고 신체 능력과 인지 능력이 저하된 상황의 미혼모들의 심리 케어를 돕고 올바른 성에 대한 지식을 갖출 수 있도록 4회에 걸친 성교육을 실시한다.

또 거처가 마땅치 않은 미혼모들에겐 그룹홈 형태의 생활지원을 통해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임시 거처도 제공한다.

임시 거처에서 아이와 함께 생활하다 보면 마음을 바꿔 스스로 아이를 돌보겠다는 미혼모도 나온다. 10명 중1명 정도다.

주사랑공동체는 아이를 키우기로 한 미혼모에게는 생필품과 분유, 기저귀, 아이 옷 등으로 구성된 60~70만 원 상당의 베이비키트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양육비 지급' 법제화로 안전장치 마련해야


▲ 미혼모에 대한 사회 인식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사진=팝콘뉴스). ©팝콘뉴스

이종락 목사는 양육을 포기하는 미혼모들이 꾸준하게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남성들에게도 있다고 지적했다. '양육비 지급'에 대한 책임을 친부가 회피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 여성가족부가 2018년 실시한 '한 부모 가족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미혼·이혼 한 부모의 78.8%가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런 문제는 지난 9일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다소 해소될 전망이다.

법 개정으로 인해 앞으로는 양육비 채무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양육비 지급을 이행하지 않는 양육비 채무자는 여성가족부장관이 법무부장관에게 출국 금지를 요청할 수 있고 양육비 채권자의 신청에 의해 여성가족부장관이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명단을 공개할 수 있다.

만약 양육비 채무자 정당한 사유 없이 1년 안에 양육비를 이행하지 않을 시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다.

이종락 목사는 "여자가 임신 사실을 알리면 남자는 연락을 끊거나 잠수를 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양육비 지급이라는 안전장치가 마련된다면 원치 않는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관련 법이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외에도 원치 않는 출산으로 고통받는 미혼모들이 없도록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지난 1일 대표발의한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에 대해서도 이 목사는 제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법안은 사회ㆍ경제적 사유 등으로 갈등을 겪는 임산부와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목적을 두고 있다. 제정안 내용을 살펴보면 임산부가 일정한 상담을 거쳐 자신의 신원을 감춘 채 의료기관에서 출산 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비밀출산 또는 익명출산)'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종락 목사는 "태아의 건강과 생명을 공적 의료체계 안에서 지켜주며 출산 후 생모의 사회 복귀와 아이의 새로운 가정으로의 안착을 공적 체계 안에서 안전하게 보장하는 '보호출산법'을 지지한다며 이 같은 제도가 뒷받침돼야 영아유기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목사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출산과 낙태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주사랑공동체를 찾아주십시오. 출산을 무료로 도와드리며 산모의 모든 정보는 완벽하게 비밀이 보장됩니다"라며 "이곳의 문은 항상 여러분들을 위해 열려 있으며 극단적인 선택 대신 상담과 실질적인 지원을 통해 도움을 드리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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