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빈곤 포르노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본뜻을 깨달아 사회적 빈곤 퇴치에 몰두해야

▲ 김건희 여사는 지난 12일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14세 선천성 심장질환 소년의 집을 찾아가 회복을 빌었다.(사진=대통령실 제공) ©팝콘뉴스

(팝콘뉴스=김재용 기자)최근 정치권에서 빈곤 포르노 발언이 연일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운석열 대통령 내외가 동남아 순방 중이던 지난 12일,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는 14세 아동의 집을 방문해 아이를 안고 찍은 사진을 두고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이 "김건희 여사의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 논란이 된다"라고 발언해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장경태 최고위원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등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고민정 최고위원도 과거 대통령 해외순방 때 가난한 아이들을 안고 사진 찍은 모습이 있었기에 야당이 김건희 여사를 두고 빈곤 포르노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있다. 또한 진중권 시사평론가는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김 여사에 대한 과도한 공격 바탕에는 일종의 여성 혐오가 깔려 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동정심을 자아내기 위해 과도하고 과장되게 연출해서 그 사람들의 주체성을 무시하고 일종의 대상화하는 경향이 빈곤 포르노다"라고 말하며 "정치인들이 가난한 사람 찾으면 다 빈곤 포르노인가. 굉장히 부적절한 낱말 사용"이라고 언급했다.

빈곤 포르노,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처지를 구경거리로

빈곤 포르노라는 말이 갑자기 이슈화되면서 다소 흥미 위주로 소비되는 면이 있지만 사실 빈곤 포르노라는 용어는 현대 산업사회의 가장 어두운 면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는 사회적 성찰의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다. 빈곤 포르노는 '가난한 사람들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빈곤 비즈니스'를 의미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처지를 구경거리로 만들어 사람들의 후원을 유도해 돈을 버는 현대 복지복합산업체의 실체를 비판하고자 사용된 용어다.

후원 수익금이 정작 빈곤층의 삶의 개선에는 별로 들어가지 않고 대부분이 복지단체와 기업의 사적 수익금으로 고스란히 남는 실태를 비판하는 것이다. 또한 지금도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사회복지단체와 기업들의 빈곤 어린이 광고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린이들이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가난이 드러나 일방적으로 안타까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심각한 인격권의 침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자기 삶이 비참한 처지로 남들에게 각인되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 일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빈곤 비즈니스

원래 빈곤 비즈니스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먼저 사용됐다고 알려진다. 일본은 30년 이상 장기 침체를 겪으면서 '나라는 부자지만 국민은 가난한 나라'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본에는 연 수입이 200만 엔도 안 되는 저소득 봉급생활자가 1천만 명도 넘지만 장기 침체로 인해 복지정책을 축소하는 등 사회적 안전망은 점점 허술해졌다. 이 틈을 노려 주거 및 생활 지원, 취업 원조 등 공공기관이 담당해야 할 복지 분야에 기업이 진출해서 '노동빈곤층'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이득을 챙긴다. 이윤과 무관해야 할 공공영역 복지 분야가 이윤 추구를 위한 비즈니스화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월세방을 구하기 힘든 빈곤층에게 값싼 방을 제공해 준다며 홍보하는 복지단체가 많다. 하지만 수수료 명목으로 임금의 40%까지도 떼어가는 등 실질적으로 착취의 모습을 보이는 곳이 많다.

이는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도 빈곤 비즈니스에서 예외가 아니다. 2005년 정부보증으로 시행된 학자금 대출이 한때는 기준금리가 7.3%까지 올라 학생들의 피를 빨아먹는 빈곤 비즈니스 사업이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지금은 금리가 1.7%까지 동결돼 있지만 학생들이 빈곤 비즈니스 대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졸업하면 갚아야 할 등록금이 이미 몇천만 원에 달하기에 등록금 자체가 줄어들지 않는 한 금융기관만 배부르게 할 뿐이다.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40%대, 비수급 빈곤층도 300만 명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여러 가지 금융소외자 종합 대책들도 허울 좋은 정책에 불과하다. 저신용자들에게 대출을 해준다고 하지만 실상은 만만치 않은 금리로 빈곤 비즈니스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은 4대 사회보험, 기초생활제도 등의 제도적 틀은 있으나 여전히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국민이 많고, 여전히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는 크다. 소수의 대기업 종사자들은 높은 임금을 받지만 낮은 임금을 받는 중소기업 종사자들의 비율이 높아 빈곤층이 늘어나고 있다.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40%대에 달하고 비수급 빈곤층도 300만 명에 이르는 등 사회적 빈곤은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서비스 산업 선진화란 명목으로 교육, 의료 사회 서비스 등 필수 공공서비스의 대부분이 여전히 시장에 맡겨져 있다. 그나마 보호되던 공공서비스 영역마저 새 정부 들어서 비즈니스적 시각이라는 명분으로 시장에 넘기려는 의도를 비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나 일본처럼 빈곤 비즈니스가 확산한다면 빈곤층은 더욱 고통에 빠질 것이다.

김건희 여사의 사진을 두고 빈곤 포르노 운운하며 정치 싸움을 할 게 아니라 정치권은 빈곤 포르노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본뜻을 깨달아 사회적 빈곤 퇴치에 몰두해야 한다.[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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