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가족] "죽고 싶다 말하지 맙시다...병든 것은 우리 아이가 아니니까요"

제6회 장애인부모연대 화요집회

권현정 기자 | 기사입력 2022/09/20 [16:53]

[발달장애인 가족] "죽고 싶다 말하지 맙시다...병든 것은 우리 아이가 아니니까요"

제6회 장애인부모연대 화요집회

권현정 기자 | 입력 : 2022/09/20 [16:53]

▲ 20일 영등포구 이룸센터 농성장에서 진행된 제6회 화요집회에서 이지환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 오산지회 소속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발언하고 있다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드라마 방영 이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여기 오신 부모님들도 연락 많이 받으셨을 거다. 궁금하다고 일일이 전화하지 않아도 이제 화요일마다 여기 오면 누구나 우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어떻게 사는지, 어떤 소망을 갖고 사는지."

 

지난 8월 2일 제1회 화요집회 '발달장애인 지역사회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에서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이사가 밝힌 화요집회 소개말이다. 김종옥 이사는 화요집회가 "나와 우리 아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20일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인근 이룸센터 앞 농성장에서 장애인부모연대 주최 제6회 화요집회가 열렸다. 이날 화요집회에는 부산, 양산, 충북 음성, 인천 연수구 등 전국 각지에 사는 발달장애인 부모와 당사자가 자리를 채웠다.

 

현장에서는 지역에서 서울까지 치료센터를 오가면서, 정원 제한 탓에 학교 입학서부터 "누가 더 힘든 장애를 가졌는지"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에 노출되면서 상처 입었다는 '후배'들의 이야기와 "이것은 아이가 아픈 탓이 아니"라는, "죽고 싶다고 말하지 말고, 진짜 아픈 것은 우리 사회라는 것만 생각하자(김종옥 이사)"는 '선배'의 위로가 오갔다. 일부를 아래 옮긴다.

 


장미라 서울지부 강서지회 지회장, 주유현 씨 어머니


"힘들기만 할 줄 알았는데, 하루하루 기쁜 일이 너무 많았다"

 

장미라 씨의 자녀 주유현 씨는 태어나자마자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면회마다 아이의 병명이 하나씩 늘어갔다. 몇 번의 면회 끝에 담당 의사에게 '다운증후군'이며, "1년을 못 넘길 수 있다"는 진단을 들을 수 있었다. 병원비는 무섭게 불었다. 장 씨 가족은 한 달 열흘 만에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야 했다.

 

장 씨는 "돌까지 사진 한 장 못 찍었다. 처음에는 죽고 싶더라"면서도 "데리고 왔을 때는 '애틋한 게'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고, '엄마' 소리만 해도, 걷기만 해도 행복했다. 힘들기만 할 줄 알았는데 하루하루 기쁜 일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장 씨는 '강한 엄마'가 됐다.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쯤 됐을 때 장 씨는 지나가던 특수학교 버스를 무작정 따라가 번호를 전달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교내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데 책임이 없다는 학교에 서울 부모연대(당시 '함께가는 서울장애인 부모회')와 함께 A4 네 장 분량의 요구서를 제출해 응답을 받아내기도 했다.

 

장 씨는 "지금 아이는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안정적인 것은 아니"라며 "교육권을 위해 싸웠을 때 안 될 거라고 했지만 바뀌었고, (부모연대는) 힘들다고는 하지만 '안 된다'고는 안 한다"라고 응원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원숙 인천지부 연수지회 활동가, 딸 강혜미 씨 어머니


"행복한 생각만 합시다. 내가 행복을 주면 아이도 행복을 준다는 걸 아니까"

 

이원숙 씨의 딸 강혜미 씨는 태어나면서 잠시 호흡이 중지되면서 생긴 뇌 손상으로 지적장애를 얻었다. 멍하게 몇 개월을 보내다 이 씨에게 문득 '두고 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씨는 갓 돌이 된 아이를 품에 안고 치료할 수 있는 기관을 수소문해 찾아다녔다.

 

이 씨는 "그때가 제일 힘들 거로 생각했는데, 아이가 성인이 되고 보니 지금이 더 힘든 것 같다"며 "투쟁은 (나 아닌) 다른 부모들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인천지부 부회장 자리에 앉아있다. 이게 부모인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우리 이야기를 해도) 이야기가 금세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동지들과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서, 활동보조, 방과후, 평생교육센터, 주간활동센터 등 지금 있는 제도를 그래도 누리면서 (살고 있다)"며 "지금은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만큼) 해주지 않는 정부가 밉고 서운하겠지만, 전국에 있는 장애인 가족들과 엄마들이 마음 합해 계속 요구한다면, 행복하게 눈 감는 날이 올 것이다. 행복한 생각만 하자. 행복을 주면 아이도 행복을 준다는 것 알고 있지 않나"라고 위로를 전했다.

 


신수진 경남지부 양산지회 활동가, 아들 조현서 군 어머니


"꾸준한 재활치료가 기본...내가 없으면 어떻게 될지 걱정돼"

 

신수진 씨의 아들 조현서 군은 태어나 15개월 후까지 기거나 서거나 걷지 못했다. 당시 서른 살이던 신 씨는 아이를 품에 안고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병원과 재활병원에 오갔다. 현서 군은 5~6세가 되면서 한두 발짝씩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현재는 지역 특수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다.

 

여기까지 신 씨와 현서 군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 현서 군이 받고 있거나 받았던 치료는 재활치료(물리, 작업, 연하, 언어치료 등)와 특수치료(특수체육, 감각통합, 인지, 놀이치료 등) 등이다. 회당 1~6만 원 비용이 발생하는 치료다. 병원비, 약값을 합하면 매년 3000만 원이 현서의 치료비로 지출된다.

 

경제활동이 절실하지만, 아이는 하교 후 곧장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다. 신 씨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지역기관 등을 알아봤지만 신변처리가 안 돼서 받아줄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부를 하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신 씨는 "아이를 키우는 동안, 아니 아이가 성인이 돼서도 재활치료를 해야 한다. 그만둘 수도, 줄일 수도 없다"며 "지금은 엄마인 내가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내가 없으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라고 말했다.

 


심명숙 충북지부 제천지회 회원, 자녀 홍혜린 씨


"아이를 계속 데리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방법이 있겠다 싶었다"

 

심명숙 씨는 9년 전 암 진단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 남편과 아들이 투병을 시작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24세 딸 홍혜린 씨가 집에 혼자 남았다. 병원과 집을 버스로 오가면서 심 씨는 스물여덟 번의 방사선 치료를 겪어냈다.

 

심 씨가 치료를 마치고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아이의 '비빌 언덕'이었다. 장애인부모연대를 이때 만났다. 이후부터는 시위나 투쟁 현장을 꼬박 찾았다.

 

딸 홍혜린 씨는 현재 요양보호사 보조로 일하고 있다. 홍 씨는 받은 월급으로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가족들에게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선물을 돌렸다. 심 씨는 "오늘 입은 바지도 아이가 사준 것이다. 아들에게는 아직 선물을 받은 적 없는데, 기분이 더 좋다"고 너스레를 하면서 "부모들이 다 같이 이룩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심 씨는 "'아이가 나중에 커서까지 (시설 등이 아니라) 내가 데리고 있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활동하면서 여러 방법이 있겠구나 싶었다"며 "부모가 죽더라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게 24시간 지원체계 확립될 때까지 부지런히 참여하겠다"라고 말했다. [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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