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청소년 대상 범죄자 10명 중 1명만 구속
영장심사 시 '피해자 위해' '고려사항' 그쳐
"가이드라인 필요"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지난 7일 40대 남성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중학생을 따라가 납치하려다 검거됐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은 검경이 신청한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지난 15일 성폭력 특례법 위반,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으로 징역을 구형받은 가해자가 선고를 앞두고, 근무하고 있던 피해자를 서울시 역사에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두 차례 가해자를 스토킹으로 신고했고, 첫 번째 신고 후 가해자에 대해 구속영장이 요청됐으나 서울서부지법이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토킹 범죄가 2차 범행의 '전조'라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2차 범행을 막을 첫 단추인 '구속수사'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현행 '구속요건 판단' 기준이 협소한 까닭으로 보고,'구속'의 목적을 '원활한 조사'에서 '피해자 보호'까지 확대하는 방식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들린다.

■ 가해자 2차 가해 위험 높은데...여성·청소년 대상 범죄자10명 중 9명은 '불구속'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하 특가법)상 '보복범죄'는 보복살인 등 3건, 보복상해 등 32건, 보복폭행 등 46건, 보복범죄 등 68건, 보복체포·감금 등 3건, 보복협박 등 141건 등 293건으로 집계됐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는 434건, 올해 8월까지는 281건의 특가법상 '보복범죄'가 발생했다.매년 늘어나는 추세인 셈이다.

동시에 스토킹 범죄 등 여성·청소년 대상 범죄 구속률은 10명 중 1명 수준으로 미미하다.

검찰 범죄통계표를 보면, 2020년 기준 성폭력 위반 범죄자는 총 2만 4076명으로, 이중 6%에 해당하는 1449명 만이 구속됐다. 나머지 94%(2만 2627명)는 불구속 상태로 수사받았다.

같은 해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이하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범죄자 중 93%(3006명), 가정폭력처벌법 위반 범죄자 중 98%(308명)가 불구속 기소됐다.

피해자에게 2차 위해를 가한 범죄인 특가법상 '보복범죄'의 경우에도 구속 비율은 낮다.

김혁 부경대학교 법학과 교수 및 연구진이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에서 발간한'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효적 가해자 조치 법제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20년 특가법상 '보복범죄'에 대한 구속 비율은 25.9% 수준이었다.

■ 증거인멸·도주우려 없으면 '피해자 위해 우려' 검토 안 돼...'가이드라인' 필요해

피해자 위해 우려가 있는 사건이나 그 자체로 2차 범죄인 사건에 대해 대부분 불구속 수사가 이뤄지는 이유로는 부정확한 '구속 사유'에 따른 영장 기각 반복이 꼽힌다.

형사소송법 제70조는 1항에서 ▲주거 부정 ▲증거인멸 우려 ▲도주 우려 등 세 가지를 구속 사유로 정하고, 2항에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를 '고려해야 한다'고 정한다.

법원에서는 2항을 '고려사항'으로 보는 시선이 우세하다.1항에서 정한 세 개 구속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가 있더라도 구속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반면, 김혁 교수 및 연구진의 예의 연구를 보면, '피해자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의 독자적 구속 사유 입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한 경찰은 83.6%로, 시민 대상 조사 결과(88.3%)와 비슷했다.

김혁 교수 연구진은 "제70조 1항과 2항의 의미에 대한 법원, 검찰, 경찰의 취급기준이 제각각"이라며 "그 결과 (특가법상) 보복범죄나 피해자에 대한 우려가 (법원의) 영장심사 시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며, 구속영장 발부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 피해자 보호의 긴급성에도 불구하고 (검경이) 구속영장의 신청 또는 청구를 망설이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피해자 위해 우려를 독자적 구속 사유에 포함하는 형사소송법 개정과 함께 구속 요건을 구체화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장윤미 여성변호사회 변호사는 "스토킹범죄는 강력범죄로 가는 뇌관의 특성을 가진 범죄다. 통상의 구속 요건에 더해, 피해자에게 추가 위해를 가할 위험도 법원이 영장 발부에 있어 고려해야 한다"며 "법제화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영장 전담 재판부에서 내부 지침으로라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16일 법무부는 스토킹 발생 초기부터 피해자 위해 요소를 수사하고, 구금장소 유치, 구속영장 적극 청구 등에 나서는 동시에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폐지하는 법률개정에 나선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최근 스토킹 피해자가 2차 범죄 피해에 노출될 위험성을 '계량화'하는 연구용역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신변 보호를 요청한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 지급 시 적용되는 기준을 현행 '매우높음', 높음', '보통' 등에서 점수로 바꾸면서, 점수 판단 근거, 맞춤한 보호 지원 기준 등 마련에 나선다는 계획이다.[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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