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철학자 페터 비에리의 '삶의 격'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김재용 기자)얼마 전에 어떤 모임에 갔는데 처음 보는 몇몇 사람이 나를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존엄성이 상실된다고 느꼈다. 아는 사람보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나를 친절하게 대하지 않을 때 기분이 더욱 나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대하는 게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존엄성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존엄성을 느끼는 바가 다른 것일까?

우리가 도축장에 갔을 때 기분이 불쾌한 이유는?

일반인이 도축장에 갈 일이야 거의 없을 테지만, 만약에 도축장에 간다고 하면 기분이 나쁠 것이다. 왜일까? 피와 분비물이 쏟아지고 지독한 냄새와 가축의 공포에 찬 울음 때문일까? 물론 그것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도축장은 죽음의 공장이다. 수많은 동물이 끌려와 기계에 의해 목숨이 끊어지고 사람의 음식이 되기 위해 육가공 공장으로 넘어간다. 만약 도축장이 식물을 가공하는 곳이라도 그렇게까지 기분이 불쾌할까?

동물은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사실 말고도, 그들 하나하나가 경험과 고통의 주체다. 동물은 자기 움직임을 감지하고 배고픔과 목마름과 아픔을 느끼며 즐거움과 공포를 경험한다. 동물의 경험이라는 것이 인간의 것보다 단순하기는 하지만 '경험'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동물들이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죽임을 당한다. 도축장에서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단지 죽음 때문만이 아니다. 동물들이 애초부터 여기서 '상품'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그동안 길러지고 관리되어온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이 깊어진다. 이들은 탄생의 순간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한 번도 슈퍼마켓에 진열될 목적 이외의 존재로 존재하지 않는다.

도축장을 생각할 때 우리의 마음이 몹시 불편한 것은 이러한 점 때문이 아닐까? 존재가 그 자체로 수단이 된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 수단으로 취급받는 것을 근본적으로 싫어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존재의 존엄성을 해치는 취급 방법이 존재함을 알게 되고, 그것을 강렬하게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으로 취급되는 것에서 존엄성을 느낀다.

존엄성이란 그 존재 자체가 목적으로 취급받는 것

페터 비에리의 저서 '삶의 격'은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삶이라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 삶에서 우린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살핀다. 페터 비에리는 1944년 스위스 태생으로 독일 마그데부르크 대학 철학사 교수 및 베를린 자유대학 언어철학 교수를 역임한 독일 철학자이다. 대학에서 정년 퇴임한 후 현재는 인간의 정신세계, 철학적 인식의 문제 등 폭넓은 인문학 분야를 아우르며 연구 및 저술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페터 비에리는 이 책에서 단지 존엄성의 개념과 이론을 서술하는 것을 지양한다고 했다. 그런 딱딱한 이론적인 것을 벗어나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것이 진정한 존엄의 개념이라는 것. 저자는 존엄한 삶의 형태를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내가 타인에게 어떤 취급을 받느냐는 것이다. 나는 타인에게서 내 품격이 지켜지도록 대접받을 수도 있고, 타인은 내 품격이 파괴되도록 나를 다룰 수도 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타인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다시 말해 타인의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 절대 손대선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손에 달린 존엄성의 여러 가지 측면을 살펴볼 수 있고 서로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

두 번째 측면은 타인이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 즉 내가 타인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의 측면이다. 그렇다면 본래적인 질문이 생긴다. 타인을 경험하고 타인에게 어떤 행위를 가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내가 나의 품격을 지킬 방법이며 어떻게 할 때 그것을 잃어버리는가? 첫 번째 측면에서의 품격은 그것이 지켜지고 지켜지지 않고에 대한 책임을 타인이 지지만 두 번째 측면에서는 그 책임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된다. 따라서 페터 비에리는 한 인생이 존엄성을 갖춘 인생이 되느냐의 여부는 내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세 번째 측면에서의 접근 역시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그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다. 우리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 자신을 보고 평가하고 대접하는 방식 중에 어떤 것이 나의 존엄성을 세워주는가?', '또 내가 나를 어떻게 취급했을 때 내 존엄성을 내동댕이쳐버린 결과를 낳았는가?' 저자는 이처럼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남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가?' 이 세 가지 물음이 모두 존엄성이라는 개념으로 흘러 들어간다고 말한다. 이 세 가지가 한곳에 모여야 개념을 이루는 밀도가 더욱 조밀해지며 무게감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면은 일상적 경험 안에서 서로 얽혀 있다. 특히 존엄성이 지켜지지 못할 위기 속에서는 더욱 복잡하다. 존엄이라는 것은 이렇게 사회적이고 다층적인 사건이다. 각각의 층들은 여러 겹으로 겹쳐 있어서 따로 분리하기 쉽지 않다는 것.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이미 '사회가 병들면 개인이 병든다'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는 나와 타인과의 긴밀한 관계에서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페터 비에리의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크게 새로운 것은 없다. 그의 주장은 인간 삶에 대한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확인이 목적이다. 경쟁이 극심해지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의 존재는 목적으로 취급당하기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그리고 '돈을 벌어주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페터 비에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안내한다.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삶이라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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