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의 책 '적정한 삶'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김재용 기자)"전 세계에서 가장 적게 자고 가장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들은 특히 더 만족을 모른다. 죽어라 돈을 벌고 죽어라 일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놀 때도 마찬가지다. 취미 생활을 즐기다 과로로 쓰러지기까지 하지 않은가. 사이클 동호회에서, 골프장에서, 등산 모임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장비와 기능성 의류를 갖추고 선수 못지않게 열심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도 한몫하겠지만 만족을 모르는 극대화된 삶에 익숙해진 탓도 클 것이다. 적당한 데서 멈출 줄 모르는 한국인의 문화는 기형적인 교육열을 낳기도 했다. 자녀들의 대학 입시도 아이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학교를 당연한 듯 목표로 삼는 것이다." 김경일 지음, '적정한 삶', 7p

강아지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키워 본 사람은 알겠지만 동물은 욕망이 크지 않다. 먹는 것도 적당히 배가 부르면 되고, 산책도 일정한 시간 동안 갔다 오면 더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고정적인 사료 이외에 다양한 음식에 대한 욕망도 없고 문화나 취미에 대한 욕망도 없다. 그냥 개껌만 뜯고 주인의 따뜻한 손길만 있으면 세상 만족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도통 만족을 모르는 존재다. 먹는 것도 포만감 있게 먹어야 하고,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탐한다.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고 권력을 추구한다.

만족을 모르는 본성이 불안을 만든다

그것이 인류의 진화와 문명 발달의 원동력이 되었을 터다. 인류가 진화하는 동안 제대로 만족할 만한 상황이 없었다. 의식은 항상 배고픔을 추구한다. 언제나 배고팠으니 포만감을 느끼는 중추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의 욕망이 끝이 없는 것은 우리의 뇌가 그렇게 진화한 탓이다.

그중에서도 한국인은 유독 만족을 모른다. 김경일 교수는 그래서 한국인은 유독 불안감과 우울감에 많이 시달린다고 한다. 따라서 행복해지려면 만족이라는 것을 잘 다스려야 한다. 앞으로 삶은 길어지고 더욱 다양화될 것이다. 이제 이전과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만족감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긴 인생에서 길 잃은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간 잠들어 있던 감정을 깨워서 가장 적당한 수준으로 연마해야 한다. 만족감을 섬세하게 다듬어서 가장 친근한 심리로 만들어 내야 한다. 김경일 교수는 이 기술이 바로 앞으로의 행복한 삶을 쟁취하는 무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불안과 만족을 잘 다스리는 것이 행복의 길

'적정한 삶'에서는 인간의 불안감을 없애고 만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가령, 우울할 때 부정적인 생각이 지속해서 생길 때는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긍정적인 행동을 하는 게 낫다고 한다. 그것도 아주 사소한 일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일기쓰기, 운동하기, 가계부 쓰기 등. 우울할 때는 무기력이 최악에 도달한 상태이다. 이럴 때 무턱대고 큰일에 덤볐다간 부지불식간에 더 큰 우울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작게 양을 쪼개서 만만하게 만든다. 뇌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강하다. 사소한 행동이 지닌 큰 힘을 믿어 보라는 것이 김경일 교수의 조언이다.

불안을 다스리려면 불안이란 심리의 메커니즘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불안은 언제 발생하고 확장되는가? 바로 불확실하고 모호할 때다. 불확실할수록 불안은 커진다. 반면에 확실하다는 느낌이 들면 불안은 감소한다. 불안을 어떻게 컨트롤하면 좋을까?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마다 글을 썼다. 난중일기에는 임진왜란이 벌어진 7년간 약 2539일의 기록이 담겨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권수만 해도 일곱 권이고, 학계에서는 한 권이 누락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꽤 방대한 양이고, 담담하고 솔직하게 당시의 번민을 기술한 내용은 우리가 거대한 불안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하나의 지침을 준다.

김경일 교수는 마음이 불안할 때 종이를 꺼내 글을 쓰라고 권한다. 말은 글보다 빠르다. 게다가 마음이 급할수록 말은 더 빨라진다. 불안감은 스피드에 편승하는 속성이 있다. 긴장하고 초조해하는 사람을 달랠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천천히 천천히'라고 말하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글은 말에 비해 속도감이 현저히 떨어지는 작업이다. "어떻게 하지?", "나 이제 뭘 해야 하지?" 일기를 쓰다 보면 일파만파 머릿속에서 확장되는 생각이 천천히 제어된다.

뇌는 생각보다 단순,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심리적 고통을 겪을 때 종이와 펜을 꺼내 내가 해야 할 행동을 적는다. 아주 작고 구체적일수록 도움이 된다.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구체적인 시스템이 숫자다. 1번, 2번, 3번, 4번 번호를 붙여보자. 그것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이 제어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심리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뇌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인간의 심리는 다루기 쉽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때 일이 꼬이고 불안감이 증폭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과 조언들은 피상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의 본질인 문제가 변하지 않는 한 불안감은 다시 소환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소한 것, 작은 것을 행동할 때 그것이 하나하나 쌓여서 문제의 본질을 해소할 능력이 생길 수 있기에 이 책의 조언은 귀담아들을 만하다.[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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