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극장장..."한국과 우리는 하나고, 그 중심은 한국" 니 류보비 아브구스토브나 예술감독

▲ (사진=니 류보비 아브구스토브나 감독 제공) © 팝콘뉴스


(팝콘뉴스=김보연 기자) * [talk! talk! 튀는 인생] 코너는 평범(平凡)함과 비범(非凡)함이 공존하고, 톡톡 튀는 개성으로 자신만의 길을 추구해 온 이들과의 쉼과 같은 대화를 의미한다.

고려극장, 애환을 나누는 곳

한국-카자흐스탄 수교 30주년을 맞아, 카자흐스탄 국립아카데미고려극장(이하 고려극장) 초대 공연으로 '보드빌: THE SEAGULL'이 펼쳐진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니 류보비 아브구스토브나(이하 니 류보비) 예술감독을 만났다. 1952년생, 70세의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니 감독은 활기가 넘치는 이면에 강단의 기운이 품어져 나왔다.

"우리는 카자흐스탄 고려사람"이라고 말문을 연 그는 "우리는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 땅에 살지 않는다. 강제 이주는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비극이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한국인이란 사실을 잊은 적이 없다"며 "고려극장은 그런 고려사람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고려사람들의 중심지와도 같은 곳"이라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고려인은 1937년 소련에 의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다. 고려극장은 그 이전인 1932년 창설, 90년의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고려사람들의 무수한 아픔과 더불어 왔다고 볼 수 있다.

▲ (사진=니 류보비 아브구스토브나 감독 제공) © 팝콘뉴스


25년 동안 극장장 지내...카자흐스탄 정부 지원, 큰 힘

지난 3월, 고려극장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니 류보비 감독은 취임 전부터 이미 오랜 세월 고려극장과 함께였다.

니 감독은 "대학교에서 언어학, 교육학, 심리학을 전공, 18년간 '슈콜라(초·중·고교)'에서 학생들에게 문학, 언어, 역사를 가르쳤다"며 "이후 1997년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의 추천으로 25년 동안 고려극장 최초 여성 극장장을 지냈다"고 운을 띄웠다.

"당시 고려극장은 극장 건물도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는 그는 "처음 5~6년 동안은 정말 갈 길도 멀었고 많이 힘들었다. 극장이 존폐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었다"라며 "극장에서 아티스트도 찾아다녔다. 그들은 예술혼이 클지라도 힘든 삶이 예견되니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이 바뀐 니 류보비 감독은 "고려극장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우려 했던 아티스트들의 노력과 카자흐스탄 정부의 도움으로 극장 건물도 생기고 점차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며 "아티스트들의 삶이 풍족하진 않지만 카자흐스탄 정부의 월급, 연극 제작, 타국 출장 등의 지원은 고려극장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니 감독은 "모든 카자흐스탄 고려사람들이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게 아니다. 카자흐스탄 고려사람 중 고위 관직자들도 많다"며 "아울러 카자흐스탄엔 주요 성(性)(주즈, 부족)이 3개이며, 130개국의 소수민족이 산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그 중 고려사람들을 4번째 성이라고 말할 정도로 고려사람을 한민족이라고 생각한다"고 흐뭇하게 웃었다.

▲ (사진=니 류보비 아브구스토브나 감독 제공) © 팝콘뉴스


전 세계 유일, 국립아카데미극장 지위 가져

카자흐스탄엔 고려극장, 위구르극장, 독일극장 세 곳의 국립극장이 존재한다. 이 중 고려극장은 국립극장이자 아카데미 지위를 가진 전 세계 유일의 국립아카데미극장이다.

고려극장은 2016년 12월 최고 수준 극장인 국립아카데미극장으로 승격, 2017년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알마티 중심지에 위치한 역사 가치가 높은 카자흐스탄 건축기념물격인 건물이 고려극장의 건물이 되는 쾌거를 이뤘다. 이는 노대바람을 이겨낸 고려사람들의 삶을 예술화한 고려극장 관계자들의 노력과 고려사람들의 합작품이 아닐까.

이에 그는 "몇 안 됐던 극장 식구들이 지금은 100명에 달한다. 고려극장은 고려 문화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모두가 힘을 모아 한민족 문화 및 전통예술 유지, 발전에 힘써왔다"며 "고려극장 단원들은 연극단, 성악단, 무용단, 그리고 사물놀이팀으로 구성, 한국어를 구사하고 러시아어로 동시통역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려극장이 카자흐스탄에서만 공연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영국, 독일, 터키 등 여러 나라에서 공연을 펼쳐 왔다.

다만, "중요한 건 예술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니 류보비 감독은 "문화는 다르지만, 한국과 우리는 하나고, 그 중심은 한국이다. 우리는 한국 문화와 카자흐스탄 문화를 융합하고 있다"며 "올해 한국과 카자흐스탄 수교 30년을 맞이할 동안 서울국립극장과 자매결연, 고려극장 발의로 실크로드국제연극제 개최, 대한민국 문화재산협회와 양해각서 체결, 그리고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과 협약서를 체결하는 등 한국과 문화적 교류를 활발하게 해왔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니 감독은 이어 "이러한 노력의 성과로 카자흐스탄 명예예술가를 비롯해 카자흐스탄 대통령 감사장,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장, 카자흐스탄 문화예술 발전유공자 표창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라며"많은 분과 고려극장의 따뜻하고 정겨운 식구들에게 감사하다. 또 내게 늘 행복을 주는 자녀, 손자, 손녀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 (사진=니 류보비 아브구스토브나 감독 제공) © 팝콘뉴스


세대교체 이어...아티스트 전문성 'UP' 목표

그의 예술을 향한 열정은 현재진행형이자 무궁무진하다. 니 류보비 감독은 전 세계 유일의 국립아카데미극장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변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장은 세대가 중요하다"는 니 감독은 "난 극장의 2세대다.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에 카자흐스탄 정부와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가 4년 동안의 준비 끝에, 18세 때부터 고려극장에 몸담아 온 옐레나 김이 극장장이 됐다. 훌륭한 인재가 내 후임이 돼 행복하다"며 "하지만 극장장을 교체했어도 내가 하는 일이 특별히 달라진 건 아니다. 세워놓은 기획이 많다. 난 5세대인 옐레나 김 극장장과 같은 일을 하며 기획을 진행 중"이라고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기획에 대해, 그는 "우선, 아티스트들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아티스트들을 타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것이다. 아티스트들이 어디를 가든 수준이 높다는 평을 받길 원한다. 그 길이 고려극장의 수준을 더 높이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선 경제적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고 호소하듯 읊조렸다.

이어 니 류보비 감독은 "클래식 극장인 고려극장에서 현대적인 작품으로 변화도 주려고 한다. 강태식 연출의 '보드빌: THE SEAGULL'이 현대적인 감각을 살린 작품이기도 하다. 고려문화 작품의 명맥을 지키는 클래식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부분을 가미하려고 한다"며 "고려극장 단원뿐만 아니라 한국 배우들과 함께 공연할 준비도 하고 있다. 연령대가 있는 배우들과 먼저 공연을 펼친 후, 젊은 사람들과도 공동 작품을 진행해 볼 계획"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 (사진=니 류보비 아브구스토브나 감독 제공) © 팝콘뉴스


계속 이어 갈 '황금다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삶을 살지 말자',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같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가슴속에 새기며 살아 온 니 감독은 "살아가면서 실수할 순 있다. 하지만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나쁜 행동을 해선 안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바라선 안 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그런 신념으로 70년을 살아오며, 고려사람으로서의 긍지를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수많은 고난과 존폐의 기로를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 온 고려극장은 고려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위로를 선사하는 곳"이라며 "또한 우리 전통과 문화, 언어의 구심적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한국은 우리의 역사적 고향이다. 한국에 올 때마다 고향에 온 것 같다"는 니 류보비 감독은 "고려극장이 90년 동안 고려문화와 한국문화를 유지해왔듯 앞으로도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황금다리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며 "아울러 자신의 역할을 빛나게 소화하고 있는 고려극장 아티스트들이 자랑스럽고 앞으로도 자랑스럽길 소망한다"는 바람으로 끝을 맺었다. *통역 도움: 손수정 무용수 [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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