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영 교수의 책 '서울대 10개 만들기'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김재용 기자)"대학 서열로 인한 학벌주의는 국민들의 가슴 속에 빗나간 우월감과 절망적인 열등감을 재생산하고, 명문 대학의 동문 패거리는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다. 막대한 사교육비를 동원한 점수 따기 경쟁은 계급 재생산의 기제로 작용하며,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은 서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노동자에게 초고 노동을 강요한다. 또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의 서열화로 인해 지역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이 말은 경상대학교의 정진상 교수가 17년 전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입시지옥과 학벌사회를 넘어'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획일적 학벌주의의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서 서울대를 포함한 기존의 국립대학들을 하나의 통합네트워크로 통합하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난 17년 동안 대학 개혁을 위한 이 논의의 실현성은 하나도 진척된 것이 없다. 아이디어와 방향성은 좋으나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전국의 국립대학을 통합해서 충북대학을 서울대1, 전남대학을 서울대2 이런 식으로 하자는 것인데 기존 독점대학들의 반발 때문에 실현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최근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김종영 교수는 국립대통합네트워크 논의의 부족한 점과 단점을 빼고 장점을 더 연구한 후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책을 펴내 전국의 국립대학 10개를 서울대처럼 만들자고 제안한다.

"한국 사회 특유의 지독한 학벌주의 체제는 줄 세우기 교육을 유발한다. 줄 세우기 교육은 인간 지능의 본성에도 반한다. 또한 대학서열체제는 정의롭지도 않고 그렇다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이것은 지극히 반민주적이며 비효율적이다. 줄 세우기 교육은 대학서열체제 때문에 발생하고 이는 소위 명문대학의 권력 독점 때문에 생긴다. 결과적으로 독점의 해소 없이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고 단일한 기회구조의 해체 없이는 진정한 민주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김종영 지음), 172쪽.

SKY대학을 향한 병목현상을 해소해야 교육이 산다

김종영 교수는 한국 사회의 지독한 학벌주의체제는 대학 병목 때문에 발생한다고 단언한다. 한국의 교육 지옥을 해소하려면 병목현상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 경부고속도로밖에 없을 때는 전국의 모든 차들이 명절에 경부고속도로에만 몰렸다. 나중에 중부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가 만들어진 후 명절의 고속도로 병목현상이 조금 완화됐다. 한국의 교육이 지옥이 된 것은 SKY대학을 향한 병목현상 때문이다. SKY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모든 국민의 선망이기에 교육체제와 사회체제가 왜곡된다는 것. 그래서 고속도로를 10개 만들 듯이 전국에 서울대를 10개 만들면 교육 지옥이 완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학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 수험생에게 여유가 생긴다.

광주과학기술원 김희삼 교수의 한·중·일·미 4개국 비교연구에 따르면 한국 학생 중 고등학교를 전쟁터라고 말한 학생이 80.8%에 이르렀다. 중국 학생은 41.0%, 미국 학생은 40.4%, 일본 학생은 13.8%로 한국 학교는 교육 지옥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다.

김종영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교육환경이 지옥이 된 데는 입시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획일적인 대학 서열체제에 있다. 한국의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서울의 상위권 대학들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이다. 학종은 원래 미국의 입학사정관 제도를 모델로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학종의 원류인 미국에서도 입시 제도가 논란에 휩싸이지 않는데 왜 유독 한국만 문제인가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왜 미국에서는 우리와 같은 심각한 교육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가? 미국에도 대학 서열이 있지만 그것은 다원적 서열이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서울대 이상 수준의 대학이 60개 정도 있기에 한국처럼 심각한 대입 독점체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미국의 중상류층 부모도 자녀를 명문대학에 보내고 싶어 하지만 한국인처럼 죽기 살기의 문제가 아니다. 과도한 에너지와 자원을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대학들이 많기에 어느 한 대학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한 곳에 떨어지면 그냥 다른 명문대학에 가면 된다.

"예를 들어 어느 고등학생이 사회학과를 선택한다고 가정해 보자. 미국에서 명성이 높은 사회학과는 꽤 많은 편이다. 아이비리그의 대학들에도 명성이 높은 사회학과 있지만 버클리, 위스콘신, 노스캐롤라이나, 텍사스-오스틴, UCLA, 뉴욕주립대, 애리조나, 오하이오주립대 등 주립대학들에도 매우 우수한 사회학과가 있다. 따라서 한국과 같은 독점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명문대학에 가기 위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는 있지만 학생, 학부모들이 목숨을 걸지 않는다. 재수, 삼수는 미국 입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꼭 그 대학에 들어갈 필요도 없고 재수와 삼수를 한다고 점수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고교학점제를 기본으로 하고 SAT나 ACT를 보조적 수단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SAT 점수를 올린다고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우리와 같은 수능체제가 아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30쪽

한국의 학벌체제는 교육이 아니라 권력 쟁탈전

한국의 학벌체제는 비단 교육의 문제만이 아니다. 경향신문의 조사에 의하면 문재인 정부 출범 초 당시 청와대, 중앙부처, 4대 권력기관에 근무하는 장·차관, 실장, 국장 등 파워엘리트 중 SKY 출신이 61.0%였다. 비슷한 시기 이명박 정부 64.8%, 박근혜 정부 때는 50.5%였다. 소수의 학교가 이렇게 막대한 비중의 파워엘리트 집단을 형성하는 곳은 없다. 한국의 학벌체제를 단순히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문제로 본다면 너무 순진한 해석이거나, 계급 독점을 은폐하려는 의도이다.

한국의 학벌제체는 '문화 헤게모니' 쟁탈전이다. 지위경쟁이론(헤게모니 쟁탈전)에 대한 이해 없이 한국의 대학 서열 체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의 학벌제체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20세 때 한 번 획득한 학벌이 평생 간다. 나이 들어서 새롭게 획득할 수 없다.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은 선진국이 되었는데도 한국인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SKY라는 학벌 권력의 독점체제에서 기인하는 강도 높은 경쟁과 이 경쟁에서 탈락한 패배감 때문이다.

학벌체제 해소해야 진정한 다원민주주의 사회 이뤄

김종성 교수는 학벌체제를 없애기 위해서 서울대를 폐지하자는 논의는 비현실적인 문제로 본다. 그래서 아예 전국의 국립대학을 서울대 수준으로 상향평준화하자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미국대학체제가 세계 최고가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탁월한 연구중심대학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갖고 있고 이들이 전국적으로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대안은 연구중심대학 10개로 구성된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를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이 대학체제는 UC버클리, UCLA, UC샌디에이고, UC샌프란시스코 등 세계적인 명문 주립대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공립이지만 미국의 어느 사립대학보다 명성이 뒤떨어지지 않는다.

김종성 교수는 이미 지난 정권에서도 자신의 제안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지만 기존의 보수적 기득권 교육체제 때문에 결국 흐지부지됐다며 큰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가 교육 지옥에서 해방되어 저마다의 꿈, 기회, 발달을 이룰 수 있는 다원민주주의와 다원기회주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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