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자, 결혼 없이 별일 없이 산다

(팝콘뉴스=김진경 기자)[편집자 주: 'MZ팬덤을찾아서'는 최근 빠르게 변화하는 콘텐츠의 흐름 속에서 함께 진화하는 팬덤의 양상을 분석한다. 최근에는 비단 연예인이나 방송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군의 소위 '연반인(연예인 반 일반인 반의 줄임말)'을 대상으로 팬덤이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통해 단순히 아이돌을 중심으로 하는 응원 문화가 아닌 콘텐츠의 지형을 톺아보고자 한다.]

독신주의자란 단어는 오래전부터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왔다. 가족을 일부러 만들지 않고 헌신하지 않는, 이기적인 삶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쓰여왔다. 최근에는 결혼은 선택이며 결혼 적령기라는 단어를 거부하는 이들이 비혼주의자라는 새로운 단어로 자신의 독신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결혼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선택의 한 가지일 뿐이지 사회적 의무가 아니라는 뜻이다. 현재 그리고 미래에 당분간은 오랫동안 혼자이고 싶은 사람들, 그들의 인생 그 자체를 롤모델로 삼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비혼주의 그 자체는 삶의 양식일 뿐 남에게 강요할 사상은 아니다. 그러나 혼자이기 때문에 더 자주 외롭고 쓸쓸한 젊은 비혼주의자들에게 앞서 홀로 멋진 삶을 사는 인생 선배들은 훌륭한 등대가 될 수 있다.

▲ (사진=KBS '옥탑방의 문제아들') © 팝콘뉴스


#1 최초의 비혼식 지상파 PD, '문명특급' 재재

비혼주의라는 단어와 관념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지점은 관습이나 유행이 그렇듯이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20·30 여성들 사이에서 먼저 호응을 얻기 시작하며 급부상했다는 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결혼 적령기라는 관념에 가장 큰 압박을 받는 세대와 성별이 20·30 여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압박에 부조리함을 느끼던 중에 서울 소재 명문 여대 출신 PD이자 20·30세대 여성인 재재(이은재)가 '신문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특성을 빌어 비혼식이라는 예식을 소개하며 비혼식 주인공 역을 맡았을 때 특이점이 왔다.

정작 당사자인 이은재 PD는 프로그램 '문명특급'의 오락성과 특성 때문에 비혼식을 한 첫 여성 PD라는 타이틀을 엉겁결에 얻게 되었을 뿐이라고 타 방송에 나와 담담하게 이야기한 바 있다. 하지만 당사자인 재재의 담백한 태도와는 달리 방송 이후 방송국 PD를 둘러싼 팬덤이 형성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비혼주의와 비혼식이란 문화는 굳이 비혼주의자를 주창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개념 정도는 알고 있는 관습이 되었다.

▲ (사진=MBC '라디오스타') © 팝콘뉴스


#2 비혼주의라는 용어의 선구자, 양재진 정신과 의사

비혼주의자라는 용어를 '문명특급' PD가 발명한 게 아니라면 누군가 처음 단어와 어휘를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한 공인이나 인플루언서가 있을 법하다. 그런 사람을 찾아 올라가다 보면 의외의 인물이 나온다. 양재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아직 독신자란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더 나아가 정신적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개념이 대중적이던 시절 결혼이 필수가 아니며 자신은 독신주의가 아니라 비혼자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무려 '동치미'라는 40대 이상 기혼 중년여성이 주축인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그냥 지나치게 많이 배운 지식인 남자의 참신한 허세 정도로 치부되며 사라지는 듯했다. 이후 30대였던 비혼주의자 아니 그냥 비혼남성인 양재진 정신과 의사는 5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다시 한번 자신은 무슨 주의자가 아니고 단지 비혼남성일 뿐이라고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애썼다. 삶의 양식일 뿐 무슨 급진적인 사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 (사진=유튜브 채널 '김알카파의 썩은 인생') © 팝콘뉴스


#3 누가 뭐래도 잘 먹고 잘사는 40대 비혼 여성 유튜버, 김알파카

'김알파카의 썩은 인생'이라는 다소 선정적이고 냉소적인 채널명대로 내용도 거침없다. 비혼주의는 당연히 고소득 전문직만 할 수 있다는 편견을 끊임없이 냉소한다. "40대에 1억도 없으면 한심한 인생인가요", "30대에 인생 조져지는 7가지 테크트리" 등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상식이 얼마나 위험한 편견인지 담담하게 이야기할 뿐인데 구독자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김알파카의 마니악한 매력은 악플도 콘텐츠로 소화하는 것에서 절정을 이룬다. 누군가 악플을 달면 오히려 좋은 방송 소재를 제공해줘서 고맙다는 식으로 새로운 문화비평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소위 결혼 적령기를 지난 여성이나 남성은 당연히 외롭고 지루하고 추레한 하루하루를 보낼 거라는 편견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망상인지, 업로드된 동영상 두어 개만 봐도 뼈저리게 느끼고 배가 찢어지게 웃게 될 것이다.[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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