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다방 여성은 노리개였다

팝콘뉴스 | 입력 : 2007/08/09 [06:37]
(팝콘뉴스=팝콘뉴스)

 

성매매 여성의 고백

 


티켓배달에 성매매 행위까지 해야
 아파도 벌금 내고 쉬어야
마을 사람들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
 다방 전전하다가 집창촌 팔려가기 직전 탈출

 

 

 


집창촌과 산업형성매매 업소 못지않게 티켓다방도 여성인권의 사각지대다. 티켓다방은 주로 농촌지역이나 군사지역 등 오지에서 성업 중이다.

 

티켓을 나가면 시간당 2만원의 비용을 손님이 지급하고 차 배달 나온 여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티켓비용에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비용만 포함됐을 뿐 성매매를 하려면 15만원선에서 별도 비용을 내야 한다.

 

티켓다방들이 성매매로 연결되다보니 유흥업소가 흔하지 않고 젊은 여성을 찾아보기 힘든 시골의 경우 다방은 주민들의 유일한 성적 해방구나 다름없다.

 

결국 성매매가 존재하는 곳에는 반드시 성매매 종사 여성들의 착취와 인권유린이 수반된다는 원칙처럼, 시골 티켓다방도 이런 범죄행위에서 예외는 아니다. 성매매와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시골 다방에서 데이지(가명)란 여성이 겪은 성매매 피해 실화를 소개한다.

그는 카드빚을 갚기 위해 다방에서 일을 했고 악덕업주 때문에 여러 다방을 전전하다가 결국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한다. 그가 몇 년간 겪었던 다방은 남자들이 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성을 사는 추악한 곳이었다. 티켓 다방의 여성 종업원들은 마을 남자들의 성적 노리개였다.   

 

카드 빚 150만원 갚기 위해
다방생활 시작

 

데이지씨는 부모와의 대화 없는 단절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나마 초ㆍ중학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지냈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버지의 일자리가 불안정해 졌고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는 독립해서 살고 싶은 충동이 심했다. 어머니도 데이지씨가 집을 나가는 것에 대해 무관심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친구들과 별다른 직업 없이 같이 살며 카드를 만들어 생활비로 썼다. 결국 150만원이란 빚만 지게 됐고 빚을 갚기 위해 일자리를 찾던 중 친구 소개로 다방에 출근을 하게 된다.

데이지씨가 처음 다방 일을 시작하게 된 곳은 김포시의 ‘J다방’. 이곳에 들어가면서 선불금 160만원을 받아 카드빚을 청산 했다. 하지만 선불금의 압박은 그에게 고통으로 다가왔다. 다방업주는 날씬해야 인기가 좋다면서 통통한 그에게 밥을 주지 않았고 다이어트 약을 조제해 먹을 것을 강요했다. 다방 외에 방석집을 병행하고 있던 업주는 낮에는 차 배달을 시켰고 밤에는 방석집에서 2차를 강요했다.

 

업주의 모욕 속에 빚은 계속 늘어

 

업주는 항상 “돈을 벌러 왔으면 공주처럼 굴지 말고 손님하나 더 잡아서 네 손님 만들어라”고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만약 손님이 없으면 손님을 데려오라면서 거리로 내몰았다. 몸이 아파도 쉴 수 없었다. 아파서 결근하게 되면 벌금을 물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근해 손님을 접대해야 했다. 추운겨울에도 30분씩 되는 거리를 차보따리 대여섯개씩을 들고 배달을 나갔다.

혹 2차 나가기를 거부하면 “네가 무슨 요조숙녀냐, 네가 무슨 양귀비 뒷다리냐, 너보다 더  이쁘고, 잘 난 년들도 자기 손님 만들겠다고 2차 뛰고 난리치는데 넌 뭘 믿고 버티는 거냐”며 모욕을 줬다.

그는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 이를 악물고 일했지만 선불금이 줄지 않고 오히려 각종 벌금에 빚만 더 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몸이 아파 하루를 쉬게 되면 업주에게 15만원의 벌금을 바쳐야 했기 때문에 엉뚱한 명목의 빚은 점점 늘어갔고 업주의 배만 불리는 꼴이 됐다.

 

온갖 변태 행위로 노리개처럼 유린당해

 

데이지씨를 괴롭히기는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손님들에게 그의 어려운 사정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온갖 변태 짓을 몸으로 감당하면서 오로지 돈을 갚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그가 겪은 변태 손님들은 다양했다. 어떤 손님은 화장실에 가두어 놓고 계속 신음소리를 내라고 시키면서 자신은 밖에서 그 신음소리를 들으며 자위를 했다. 심지어는 모텔이나 여관으로 티켓을 나가면 커피에 가래침을 뱉어 달라고 해 마시는 손님도 있었다.

또 한 손님은 의자에 앉은 채 데이지씨를 서게 한 후 옷을 벗으면서 춤을 추고 다리를 벌리라는 요구도 했다. 정도가 더 심한 손님 중에는 허리띠를 풀어 겁을 주면서 겁탈하듯 관계를 요구하는 손님도 있었다. 칼을 머리맡에 놓고 겁에 질린 그를 보면서 욕을 하고 협박을 하면서 성관계를 하는 손님도 있었다.

성욕을 채우려는 남자들에게 나이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였다. 데이지씨가 어린 여자라는 게 중요할 뿐이었다. 아버지 벌되는 한 남자 손님은 입으로 사정 할 때까지 해줄 것을 요구 했다.

 

한 손님은 커튼 뒤에서 ‘까꿍’만 하면 돈을 준다고 데이지씨를 속여 여관으로 유인한 뒤 그가 커튼 뒤에서 얼굴을 내 밀 때 마다 귤이나 사과 등 물건을 집어 던지면서 얼굴에 맞으면 5만원, 팔이나 다리에 맞으면 3만원, 배나 가슴에 맞으면 2만원의 가격을 정해, 인간다트처럼 그를 가지고 놀았다.

자신의 성기에 온갖 인테리어(해바라기, 구슬)를 한 어떤 손님은 성관계를 거부하는 그에게 물리력을 동원해 강제로 성관계를 하는 등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가 일하는 다방 인근 지역에서 데이지씨의 인권은 어디에도 없었고 오로지 성적 노리개로만 취급당했다.

데이지씨가 이런 억압과 착취에도 불구, 다방 생활을 벗어나지 못 한 것은 주변의 뻔뻔한 분위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업주는 오히려 성관계를 거부하는 데이지씨에게 “일을 못하니 집에 전화하겠다.

 

당장 돈을 만들어 와라”는 협박으로 그의 탈출 의욕을 꺾었다. 온갖 변태행위를 일삼으면서 그를 노리개로 가지고 논 손님들은 자신이 “사장과 친하고 동네 사람들도 다 안다. 내가 이런 것 다 말하면 얼굴 멀쩡히 다니지 못한다”는 협박으로 자신들의 변태행위를 무마했다.

성매매를 한다는 약점 아닌 약점 때문에 그는 어디에 하소연 할 때도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의 약점을 이용하는 손님들도 있었다. 2차를 나가 성관계를 가진뒤 기분이 상했으니 돈 못준다고 생 때를 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방은 2차비와 티켓비가 따로인데도 불구하고 티켓비용을 주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오히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데이지씨는 “오히려 막노동을 하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더 인간적이고 자신을 편하게 해줬다”고 회고했다.

 

남자들은 밤낮이 다른  이중의 탈을 쓴
야누스

 

데이지씨는 그 곳에서 남자들이 자신의 시커먼 흑심을 감춘 채 낮에는 뻔뻔스럽게 행동하고 밤에는 그 가면을 벗고 본색을 드러 내는 야누스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데이지씨는 온갖 시달림에도 불구, 선불금과 결근비 등을 합쳐 320만원의 빚을 지게 됐다. 그 빚을 갚기 위해 선불금을 많이 주는 다른 다방으로 옮기게 된다.

 

그는 새로운 직장에서 맘을 잡고 열심히 살려고 다짐했다. 하지만 업주이자 마담인 여사장은 영업에 관심은 없고 놀음만 일삼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다시 김포의 S다방으로 옮긴다. 그 곳은 다른 업소와 다르게 건전하게 영업을 했다. 월급도 잘 나와 겨우 빚을 갚고 통장에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빚을 청산하면서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환영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병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돌보다 보니 그나마 모았던 돈도 다 써버리게 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강화에 있는 다방에 취직하게 된다.

 

아파서 15만원을 내고 쉬어도 티켓 강요

 

그는 월급 180만원에 티켓비 2만원을 받으면 업주가 1만5천원, 데이지씨가 5천원을 갖기로 하고 다시 다방 일을 시작한다.

결국 돈 때문에 2차를 나갈 수밖에 없었고 못 마시는 술을 억지로 마셔가면서 성매매를 했다. 다방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추운겨울 발목까지 눈이와 차가 못 다니는 그런 곳까지 일일이 걸어서 배달을 해야 했다. 여기서도 선불금의 족쇄는 그를 괴롭혔다.

 

병원에 가는 것, 약을 먹는 것까지 일을 못했다는 이유하나 때문에 벌금을 내야 했다. 데이지씨는 선불금이 늘면서 인근의 다른 다방으로 계속 전전하게 된다. 다방을 옮길 수록 업주의 성매매 요구는 더 심해 졌다. 한 업주는 감시하는 사람까지 붙여 도망가지 못하게 그의 행동을 24시간 주시했다

 

. 또 돈을 입금시키지 못하면 아침부터 윽박질렀고 심지어 “오늘까지 돈 가지고 오지 않으면 잡아 죽인다. 갈아 마신다”는 협박까지 했다. 몸이 아파 벌금 15만원을 내고 숙소에서 쉬고 있어도 업주가 찾아와 배달을 강요했다.

 

인권유린에 시달리다 탈출

 

월급날이 돌아와도 돈은 주지 않았다. 아파서 쉬는 날까지 거론하면서 오히려 빚으로 전가 시켰다. 결국 3개월 동안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착취당한 채 빚만 늘게 됐다. 밀린 월급을 포기하고 관두려 하자 업주는 집에 연락하겠다며 협박, 관두지 못하게 했다. 함께 일하던 친구와 데이지씨는 결국 업소를 탈출했고 업주는 선불금 계산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심부름센터를 고용, 데지씨 일행을 납치, 3일 동안 감금 했다.

업주는 그들을 3종업소와 모텔조바, 안마시술소, 백령도에 팔아넘기려했다. 심지어는 평택 ‘쌈리’와 천호동 집창촌까지 거론됐다. 결국 친구는 평택으로 팔려가게 됐고 데이지씨는 업주의 다방에서 다시 일을 하기로 결정 됐다.

서로 헤어지는 전날 밤 2층 숙소에서 잠옷을 걸치고 담배를 핀다는 핑계로 감시하는 여자를 겨우 따돌리고 밖으로 나와 인천여성의 전화에 도움을 요청했다. 가지고 있던 핸드폰과 짐은 업주에게 빼앗기고 잠옷만 걸친 채 친구와 데이지씨는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 현재 데이지씨는 인천여성의 전화 도움으로 업주를 고발하고 자활지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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