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만능주의보다 사회의 문화적 성숙이 우선이다

▲ 인종차별에 저항한 마틴 루터 킹 목사(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김재용 기자)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가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하고 있다. 이들의 농성은 언론에서 외면하고 있는 가운데 주한미국대사관 세스 윈고우스키 정무담당 서기관은 23일 농성장을 방문해 미국과 캐나다, 영국, 호주 주한대사관 공동명의의 서한과 꽃바구니를 전달하기도 했다. 차별금지법 통과 여부는 국제사회에서도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동이 보수적 개신교단 때문?

실제로 유엔 산하 각종 기구에서는 2007년에서 최근 2017년까지 9번이나 한국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기도 했다. 유럽연합 대부분의 나라들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2002년 당시 노무현 대선 후보의 공약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국무총리 산하로 '차별금지법 제정추진기획단'까지 만들었지만, 지금까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뭘까? 일각에서는 보수적 개신교단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다소 편협한 시각에 불과하다. 보수적 개신교단의 반발에도 통과된 법률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란 취업,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성별이나 성적 지향성, 학력, 출신학교, 인종, 국적, 종교, 출신지 등에 따른 차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법이다. 합리적 능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의 취지는 성소수자나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을 금지하고자 하는 목적이 강하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근대화 과정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은 지속해서 만들어졌다. 현실 사회 일상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차별의 유형을 금지함에도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차별금지법이 만능? 오히려 새로운 차별 사유 만들 가능성

하지만 법이 관여해 차별의 경계를 설정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법 제도는 다양한 규율 대상을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고, 차별 여부를 법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새로운 차별 사유를 초래할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여부의 쟁점은 차별의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차별은 동일한 행위라도 그 당시의 맥락에 따라 유동적으로 다양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차별 여부의 판단은 상황을 고려한 맥락에서 결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현행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과 관련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은 "차별이란 정당한 이유 없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다르게,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는 것은 "당해 근로자가 제공하는 근로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달리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아니하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 정도 등이 적정하지 아니한 경우"라고 판시했다. 따라서 상대적인 관점에서 일상의 미세한 차별적 시선이나 행동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는 소수자의 피해가 무제한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으며, 무엇보다 자칫 증거불충분으로 인해 가해자의 역고소가 증대될 가능성도 크다. 이렇게 되면 약자가 오히려 역풍을 맞아 차별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 또 다른 차별 사유를 초래할 위험성이 큰 이유다.

포괄적 평등의 강요는 표현의 자유와 충돌할 수도 있어

계도, 처벌의 한계점도 있다. 예를 들어 현행법상은 '사업주 등'에게 차별금지 의무 또는 노력의무 조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실제적인 차별행위 감소를 위한 사전적인 의미의 '의무 또는 노력의무'라는 조항은 실제로 실효성의 정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추상적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차별금지의 사회를 위해서는 법안 마련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입법 만능주의는 그래서 위험하다. 법보다 사회적 가치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우선이다. 새로운 차별금지 사유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명확한 평등 규정을 먼저 정의하고, 전체 사회 구성원이 합의한 평등의 가치 기준으로 다양한 차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평등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평등에도 형식적 평등, 결과적 평등, 기회의 평등이 있다.

형식적 평등은 기계적으로 같은 것을 같게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 평등은 일정한 결과의 달성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차별이다. 기회의 평등은 평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동일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중에 어떠한 평등의 개념을 사회적 가치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 정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개인의 특성을 무시하고 포괄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형식적 평등을 강제하게 되면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제21조)를 침해할 수도 있다.

입법 만능주의보다 사회의 문화적 성숙이 우선

법안을 통한 하향식 해결보다는 각 주체의 자율성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기업이 자율적으로 합리적 채용 시스템이나 직원 의식 교육을 정비해야 한다. 소수자나 장애인 등을 채용할 때 사업주나 동료 직원들의 의식을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의 하향식 법안 주입은 자칫 직장 내 갈등, 괴롭힘, 왕따 등이 발생해 새로운 사회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다.

결국 단순히 차별금지법만 제정해서 강제한다고 문제가 해결된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단선적인 규제보다는 전체 사회의 의식 교육, 문화적 성숙을 기해야 하고 구조적인 차별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내용이 더욱 탄탄하게 설계되어야 한다.[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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