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역사를 엮는 박물관, '하영사'

(팝콘뉴스=강나은 기자)하영사가 남대문에서 자리를 지킨 지는 50년이 되었지만, 하영사의 역사를 고작 50년이라고 말하기는 섭섭하다. 차명순 대표는 하영사의 역사가 아닌 우리나라 전통 매듭의 역사를 엮어나가고 있기 때문. 수작업으로 호박, 비치, 옥 등 다채로운 색상의 보석과 우리나라 전통 매듭을 더해 작품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차명순 대표에게 전통공예에 대한 자부심을 들어본다.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 다양한 매듭 작품(사진=하영사) © 팝콘뉴스


사람도, 취미도, 일도 엮어낸 매듭과의 만남

차명순 대표가 아직 결혼하기 전 일이다. 동네 친한 언니가 매듭을 가르쳐주었고, 그 인연으로 전통 매듭에 빠졌다. 취미로 배운 전통 매듭을 짓고 있자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빠져들었고, 야무진 손끝에서 아름다운 매듭 작품들이 하나둘 완성되었다. 매듭의 즐거움을 알려주었던 그 언니는 매듭과의 인연에 더해 남편과의 인연을 이어주면서 형님이 되기도 했다.

결혼하고도 매듭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지기는커녕 더욱 거세졌다. 해병대 장교였던 남편은 훈련으로 늘 집을 비우기 일쑤였고, 혼자 남은 차명순 대표는 밤을 새워 전통 매듭을 지어냈다. 하루의 적적함이 쌓여 작품이 되어갔다.

"생각보다 깊이 전통 매듭에 빠지게 된 거죠. 매듭 가게를 하게 될 만큼이요."

그렇게 만들어진 백년가게가 바로 하영사였다. 남대문에 자리를 잡은 하영사는 혼사를 앞둔 이들이 고급스러운 장신구를 찾기 위해 반드시 들르는 곳 중 하나였다. 고객들은 인륜지대사를 앞두고 한복에 어울릴만한 노리개를 고르고, 가락지를 껴보곤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목걸이 팔찌, 비녀, 뒤꽂이 등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다양한 종류의 장신구들이 펼쳐져 있으니 특별한 날, 더욱 특별해 보이고 싶은 이들은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 하영사 차명순 대표(사진=하영사) © 팝콘뉴스


국가는 달라도 취향만은 같은 단골들이 있기에

50여 년간 한자리를 지킨 하영사에 많은 이들의 발걸음과 눈길이 머물다 갔지만, 그중에도 차명순 대표의 기억에 남아있는 단골들이 있다. 바로 20여 년 전 처음 하영사를 찾았던 젊은이들이다. 한복을 빌려 입고 궁을 돌아보며 재미있게 놀던 이들은 한복을 입은 김에 장신구에 욕심이 생겨 우연히 하영사를 찾았다고 했다. 비싸지는 않지만, 기분을 낼 수 있을 만한 장신구 몇 개를 산 이들은 그 이후에도 종종 모임이 있을 때마다 하영사를 찾아 장신구를 사 가곤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어느덧 40대 중반이 된 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해서 모이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모였다며 하영사에 케이크를 사 와서 차명순 대표와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 외에도 차명순 대표가 소개된 다큐멘터리가 전 세계적으로 방영되면서 그의 작품을 사기 위해 미국에서 한국을 찾아온 고객도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실제로 장신구를 보고 싶었다던 고객은 감탄사를 내며 여러 가지 장신구를 구매해갔다. 또한 일본에 갔을 때도 일왕의 처제가 그의 작품에 반해 800만 원에 육박하는 작품을 구매해가기도 했다.

▲ 하영사 내부(사진=하영사) © 팝콘뉴스


전통 매듭의 역사를 이어 나가기 위해

그렇다고 해서 차명순 대표가 상업적인 매듭에만 매달렸던 것은 아니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아름다운 매듭을 짓는 한편, 우리나라의 전통을 잇는 매듭도 놓지 않았다. 10년 가까이 시간을 들여 재현해낸 고종황제 어연이 대표적이다. 어연은 왕과 왕비가 탔던 가마로, 각종 술과 매듭이 어연 안팎 모두를 장식해 매듭 집합체라고도 불린다.

1997년 차명순 대표는 전통 매듭기능전승자로 인정받았으며, 전승 공예대전에 나가 여러 번에 걸쳐 수상하는 등 전통 매듭에 대한 실력을 꾸준히 인정받았다. 그 외에도 차명순 대표는 국무총리상, 시장상 등 수많은 수상 이력을 새겨넣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수상 이력도 코로나19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경기가 안 좋은데, 누가 장신구에 관심을 두겠어요.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장신구도 사 갈 텐데. 이럴 때일수록 공예인에 대한 인정이 필요한데 아쉽지."

가까운 일본만 해도 기능전승자 정도로 인정받는 공예인이라고 하면 학교나 집 등 전반적인 생활을 국가에서 책임진다. 공예만으로 생계를 이어 나갈 걱정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적인 전통공예를 하더라도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게다가 서양 문화에 관한 관심은 커지지만, 우리나라 전통 문화에 관한 관심을 점점 사라지면서 생계에 대한 우려는 더 심해지고 있다. 남대문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본점 외에 홍대거리에도 갤러리를 오픈해 젊은이들에게 다가가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지만, 이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차명순 대표는 솜씨가 좋은 며느리인 김지혜 계승자에게 전통 매듭의 대를 이어줄 예정이다. 누군가는 자신처럼, 갑작스럽게 전통 매듭에 빠져들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전통 매듭은 사람을 엮는 매력이 충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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