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의 향연 앞에서 삶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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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뉴스=한경화 편집위원·천안동성중학교 수석교사) 요즘은 봄꽃이 벌이는 잔치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 호강이 절정에 달한다. 2주 전쯤 연한 분홍빛을 머금은, 흰색에 가까운 벚꽃은 세상을 온통 하얗게 만들었고, 다른 꽃들도 자신이 지닌 최고의 예쁨을 뽐내며 우리에게 봄의 향연을 선사했다. 출근길 차 안에서 욕심껏 눈에 가득 담는 봄꽃의 흐드러진 풍경은 지난밤의 부족한 잠과 지치고 힘든 피곤을 잠시나마 호사스럽게 녹여주었다.

지나는 곳마다 하얀 잎을 떨구고 분홍빛과 초록으로 새롭게 단장한 벚꽃과 노래하듯 망울을 터뜨리는 노오란 개나리, 수줍은 듯 피는 하얀 목련과 배꽃이 마음의 문을 똑똑 두드린다. 어서 나오라고. 빨리 내게로 와서 봄을 느껴보라고. 늘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온 나는 낮에 일하다 말고 꽃을 보러 나갔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올해는 내 마음이 달라졌다. 일의 속도를 조금 늦추더라도 봄도 느끼고, 햇살을 받으며 바람도 느껴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마음에 일기 시작했다. 나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꽃에게 다가갔다. 아름드리나무에는 무엇 하나 숨을 틈 없이 빼곡히 꽃이 피어있다. 사진을 찍다가 나무 아래 가만히 서 보았다. 두근두근 살랑살랑 귀밑을 간지럽히는 봄바람이 불자 꽃비가 내렸다. 내 머리와 어깨, 팔, 눈두덩이에 꽃잎이 묻었다. 나는 꽃사람이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듯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사진 속에 꽃과 자신들의 모습을 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을 바라보다 햇살을 따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새삼 놀랐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신부 같은 고운 꽃비, 눈부신 찬란함을 뿜어내는 햇빛, 봄 향기 가득 담은 바람이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내가 그 시간과 공간 속 주인공이 되었다.

문득, 예전에 잡지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나라의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에 다니던 한 고위직 임원이 승승장구하며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제2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이야기는 이랬다.

4월의 어느 날, 자신이 타고 다니던 자동차가 고장이 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했다. 택시 안에서 창밖을 보다가 벚꽃이 날리는 것을 보고 너무나도 놀라 감상하다가 일부러 자신이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내린 뒤 꽃비를 맞으며 걸어서 회사로 되돌아왔다고 했다.

4월에 꽃이 그렇게 아름답게 피어 꽃잎이 날리는 것을 유심히 본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꽃이 피는지 지는지도 모르는 채 회사가 목표로 하는 실적만을 달성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족들과 긴한 상의를 한 뒤 회사를 그만두고 나무가 많이 나는 나라로 이민했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 꿈꾸었던, 나무로 집을 짓고 목공으로 만들고 싶은 것들을 만들며 사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그는 퇴직금을 기반으로 외국에서 삶의 터전을 장만하고 집 짓는 일을 배워 집을 지어 팔기 시작했다. 그가 나무로 지은 독특한 집은 인기가 좋아 몇 채를 지어 팔았다며 만족한 웃음을 짓는 그의 모습은 그 당시 직장생활을 절대적 가치로 알고 살아가던 내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는 양복을 입고 대기업에 출근할 때보다 작업복을 입고 나무를 깎고 다듬으며 사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 했다. 책상 앞에 앉아 편하게 결재하던 삶에 비해 집을 짓는 일이 고되고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며 사는 지금이야말로 비로소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사는 것 같다'고 말했던 것 같다.

나를 포함해 보통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순응하며 그저 열심히 앞만 보며 산다.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잠깐의 꽃 소풍 등의 여유를 부릴 틈 없이 치열하게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해가 진 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나 특히, 어두운 실내에서 종일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4월과 5월에 꽃비가 내리는 줄도 모르고, 혹 알더라도 제대로 느끼거나 즐기지 못하며 봄을 보내고 만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에 대한 자기 결정력'에 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의 강요나 무엇인가에 떠밀려 사는 삶은 이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소리가 자꾸만 거세게 가슴을 치고 머리를 두드린다. 앞만 보지 말고 잠시 멈춰서서 옆도 둘러보고, 뒤도 돌아보며 살라고 조언한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없다. 그러나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떠밀리듯이 하루하루를 시간 노예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는 가끔 돌아보며 생각해볼 필요가 있음을 봄기운에 실어 전해 본다.

진달래와 철쭉, 영산홍도 개화해 5월까지 우리에게 꽃 잔치 초대장을 보내올 것이다. 오늘은 봄의 향연도 모르는 채 일에만 파묻혀 지내는 내 옆에 있는 동료에게 '똑!똑!' 신호를 보낸다. "우리 잠시 꽃놀이 산책 다녀올까요?"라고.[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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