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교 위문편지에 담긴 조롱…강제로 시킨 게 문제인가 인성 문제인가

▲ 서울 한 여자고등학교 학생이 보낸 위문편지(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팝콘뉴스


(팝콘뉴스=박윤미 기자)* [고민의 발견]에서는 살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부분을 다룹니다. 때로는 핫이슈를, 때로는 평범한 일상에서 소재를 채택합니다. 마지막 단락에는 고민과 닮은 책의 한 페이지를 소개합니다.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군인들에게 보낸 위문편지가 외부에 공개되면서 적잖은 논란이 일고 있다. 이슈를 접한 네티즌 사이에서는 "학생들이 너무했다"는 의견과 "때가 어느 땐데 위문편지냐"는 상반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온라인이 뜨겁게 달궈지는 사이 해당 지역 교육청과 학교는 사태 파악 및 사과 등으로 수습에 애쓰는 모습이지만,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자고등학교에서 강요하는 위문편지 금지해 주세요'라는 제목 아래 "미성년자에 불과한 여학생들이 성인 남성을 위로하는 편지를 억지로 쓰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한 것인지 잘 아실 거로 생각한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됐다. 13일 현재 이 청원에는 9만 9000명이 동의했다.

논란은 일부 학생이 편지에 쓴 내용에서 비롯됐다.

한 학생은 편지지 대신 노트를 찢어 "저도 이제 고3이라 (힘들어) X 지겠는데 이딴 행사 참여하고 있으니까 님도 열심히 하세요"라고 적었다. 그뿐만 아니라 "눈 오면 열심히 치우세요", "인생에 시련이 많을 텐데 이 정도는 이겨줘야 사나이" 같은 충고에 가까운 내용을 나열하고 있다.

또 다른 학생은 누가 봐도 억지로 흘려 쓴 글씨로 "샤인 머스캣은 나오나요?", "비누는 줍지 마시고" 같은 다소 충격적인 내용을 적어놨다.

'샤인 머스캣'은 평균 한 송이 만 원이 넘는 비싼 과일이다. 일반 가정에서도 쉽게 사 먹기 어려워 군 보급을 두고 한때 비판이 인 바 있다. 이 학생이 위문편지에 샤인 머스캣을 언급한 것이 정말 궁금해서였는지, 비싼 과일이 장병들에게 보급되는 것이 못마땅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위문편지 성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비누를 줍지 말라'는 문장은 남성 간 동성애를 뜻하는 것으로 이는 분명 군인을 조롱하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군인뿐 아니라 그 어떠한 상대에게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이 학교는 1906년 설립된 사립학교로, 지난 1953년 25사단과 자매결연 맺었다. 이후 1961년부터 사단에 위문품 및 위문편지를 보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통일 및 안보 중요성 등에 대한 교육 활동의 일환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입대 후 외부와 일체 단절되는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군인들도 휴대전화를 사용할 정도로 어느 정도 외부와 소통 할 수 있기 때문에 '위문편지'는 사실상 무의미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를 즈음 학교 측은 공개적으로 "2021학년도 위문편지 중 일부의 부적절한 표현으로 인해 본래 취지와 의미가 심하게 왜곡된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국군 장병 위문의 다양한 방안을 계속 강구하고 있으며 향후 어떠한 행사에서도 국군 장병에 대한 감사와 통일 안보의 중요성 인식이라는 본래의 취지와 목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해당 교육청은 "위문편지 봉사활동을 없애는 것은 학교 측이 결정해야 할 부분"이라는 입장이다.

MZ세대 이전 세대에게는 익숙한 '위문편지'는 군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군부독재시절 생긴 것이다. 당시 전국 각급학교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위문편지 쓰기를 강제했다. 학생들은 군말 없이 이를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였다. 여학생 중 일부는 위문편지를 받은 군인에게 답장받고 다시 답장을 보내는 등 여러 차례 편지를 주고받은 끝에 인연을 맺었다는 둥 지금으로서는 믿기 힘든 일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제 '위문편지'는 '응답하라 1988' 같은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소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상대가 누군지도 알지 못하면서 억지로 써야 하는 편지라니. 감정을 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조롱 섞인 문장을 담아 편지 쓴 학생들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같은 시간 다른 많은 학생은 꽤 성의 있는 편지를 썼다.

한 학생은 여백에 예쁜 그림을 그리고 색칠까지 했다. 물론 성격과 취향 문제일 수 있다. 다만 그 학생은 편지에 시험 본 이야기, 나이 먹는 게 싫다고 했더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나이 먹었다는 증거라고 했다는 엄마의 이야기' 등 누가 읽어도 미소 짓게 하는 학생다운 글을 적었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이처럼 극명하게 달리 쓰고, 다른 결과를 얻었다.

2021년 연말 위문편지 여파는 2022년 연초 젠더 갈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는 편지 작성자까지 알아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학교는 이미 테러당하는 모양이다. 관련 기사마다 아직 미성년자인 학생을 점찍어 미래를 저주하는 듯한 댓글을 다는 철없는 어른들도 있다. 부디 학교가 학교의 위상만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도 철저하게 보호해 주기를.

고등학교 3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고3 수험생이 얼마나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입시 준비를 할는지 대부분 어른은 알고 있다. 그래서 수험생들은 수능 전에 선물을 받고, 시험 후에는 "수고했다"라는 인사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수능 후 온 나라가 수험생에게만 할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대한민국 유일한 문화다. 그만큼 독보적인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핑계로 타인에게 상처 주는 행위는 절대 금물이다. 봐주기는 딱 여기까지만 이다.

고3 수험생 못지않게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 스트레스 속에 살고 있다. 군인도,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도 고3 수험생 부모들도 스트레스받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펜이 칼보다 무섭다'라는 말이 있다.

원래 이 말은 글 쓰는 사람을 향하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다. 익명 뒤에 숨어서 누군가에게 배설하듯 내뱉는 말은 때론 상대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반대로 상대에게 건넨 별거 아닌 위로가 삶의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될 때가 있다. 말과 글은 이처럼 힘이 있다.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복무 기간이 짧고, 휴대전화도 사용할 수 있다지만 군대는 군대다. 집에서처럼 자고 싶을 때 자고, 배달 음식 시켜 먹고 싶을 때 주문할 수 있는 자유는 없다. 여자친구 목소리를 밤새 들을 수도,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간호하거나 밤새워 일하는 아버지를 도울 수도 없다. 그런 마음들을 뒤로해야 하는 곳이 군대다.

안부가 궁금한 이는 따로 있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이에게서 배달 온 편지에 "눈이나 쓸라"는 충고나 명령이 담겨 있다면 남은 군 생활, 그의 마음은 얼마나 퍽퍽할까.

성인은 아니기에 어리다고 넘어가긴 하지만, 사실 고3이면 어리지 않다.

다음에 또 하기 싫은 일을 마주했거든, 아무 잘못 없는 상대에게 화풀이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일을 강제하는 상대에게 항의하는 배짱을, 혹은 그것을 거부하는 용기를 보여주기를. 그것이 그 나이에 가장 어울리는 행동이므로.

내가 하는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릴지, 내가 하는 행동 때문에 상대가 어떤 상처를 받을지 생각하지 않을 때, 그것은 실로 한 사람의 일생을, 크게는 사회 전체를, 더 크게는 인류 전체를 불행에 빠트릴 수 있는 악이 될 수 있습니다. 악은 이렇게 우리 가까이 있으며 심지어 평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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