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거리 홈리스·청소년 홈리스·탈시설 인터뷰에서 모은 이웃의 문장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기자는 인터뷰를 잘하는 편이 못 된다. 올해는 모르는 이야기에 욕심이 앞서 섣불리 뛰어드는 경우가 많아 더 그랬다.

'덜 준비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는 경우가 자꾸 생겼는데, 죄송스러운 한편, 새로운 이야기들을 거기서 만나는 경험이 못내 즐거웠다.

올해 작은 매체의 기사에 시간과 품을 내어준 모든 인터뷰이들의 목소리가 무겁고 소중하지만, 이 중 몇몇, 내년 기사의 이정표 삼을 수 있을 것 같은 문장을 따로 모았다. 여기에 당시 기사에 미처 담지 못한 부분을 더했다.

■ "기자님, 우리가 사람이요, 아니요?"[르포] "기자님, 우리가 사람이요, 아니요?" 노숙인이 물었다(21.02.10)

▲ 지난 15일 오후 서울역 광장 인근 계단에 쪽방촌, 거리 등에서 생활하다 숨진 이들의 이름이 영정사진 액자에 각각 담겨 있다 ©팝콘뉴스

서울역을 연초, 연말 두 번 찾았다. 올해 초 첫 번째 '거리두기 설'을 앞두고 한 번, 올해 말 강추위가 찾아온다는 주말을 앞두고 한 번.

기사에는 다 담지 못했지만, 서울역 광장에서 쪽방촌·고시촌에 거주하면서 식사 등을 위해 거리로 나오는 홈리스분들과 거리 홈리스분들을 인터뷰하면서 제법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부모님을 모시느라 일찍이 생활전선에 나서는 바람에 한글도 채 떼지 못한 것이 한이 돼, 요새는 매일 몇 종의 신문을 정독한다는 이야기, 가족들이 있었지만 IMF가 터지기 전 모두 이민을 보냈고 그 후로는 본 적이 없지만, 그네들에게도 '나'는 부담일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말. 자신도 한때 기자 생활을 했다며 반갑게 인사를 전하는 거리 홈리스분도 있었다.

평범한 이야기,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린 이야기,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 얼마나 평범하게 찾아오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모든 인터뷰이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올해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에는 영구임대주택 설립 계획을 포함한 '공공개발'이, 건너 남대문 경찰서 뒤편(양동) 쪽방촌에서는 '영구임대주택 등 이주대책이 있는 민간개발'이 결정됐다. 이주노동자 속행 씨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한파에 사망하면서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쪽방촌 재개발로 설립되는 '영구임대주택'은 영구히 살기에 부족한 4평~5평 수준이며, 양동 쪽방촌은 민간개발이 결정되면서 이미 비자발적 퇴거자가 다수 발생했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의 배경이 되는 것으로 지적받아온 '노동허가제'는 여러 시민단체의 폐지 요구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지난 설, 정부의 '이번 설은 집에 머무르라'는 당부가 대문짝만하게 적힌 간판을 뒤에 두고 한 거리 홈리스는 기자에게 말했다 "기자님, 내 하나만 물어봅시다. 우리는 사람이요, 아니요?"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다는 이유로 벌 받는 사회에서는 아무도 잘 살 수 없다고 믿는다.

■ "이상한 나라요? 집이죠"[가치취재] "보호도 자유도 필요한데요?"...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의 증명(21.05.25)

▲ 지난 26일 '줌'으로 진행된 '비상구에서 지은 누구나의 집' 출판기념회. 약 160여 명의 청중이 모였다 ©팝콘뉴스

올해 아동·청소년 관련 기사를 진행할 일이 자주 있었다. 대부분 아픈 소식에서 시작되는 기사였다. 아동학대, 입양아동, 청소년 홈리스 등 주제어는 때마다 달랐는데, 겹치는 열쇳말이 있었다. '원가정(친가정) 복귀'와 '보호자 교육 및 지원 미비'였다.

원가정 복귀를 원칙으로 아동학대 수사가 진행되고 청소년 홈리스 쉼터가 운영되면서 동시에 아이들이 복귀할 원가정 대상의 교육이나 지원은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집으로 '돌려보내진' 아이들은 다치거나 세상을 떠났고, 집에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한 아동·청소년들은 '비행 청소년' 딱지를 붙이고 거리로 내몰렸다. 쉼터 청소년은 '피학대 청소년' 등으로 분류되지 않아 지원 사업에서도 대부분 비켜난다.

당장 '폭력'을 어떻게 할 수 없다면, 집에서 나와야 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이 '길게 살 집'을 만들자는 문제의식에서 '이상한나라'는 시작했다고 했다.

이날 인터뷰한 '이상한 나라'는 홈리스 청소년 지원버스 '엑시트(EXIT)'가 운영하는 여성 청소년 홈리스 쉼터였다.

쉼터지만, 위반 시 퇴소가 전제된 '규칙'이 아니라 서로 잘 지내기 위한 '약속'을 이야기하는 곳, 입주민 얌은 이상한 나라를 '집'이라고 했다. 약속을 만드는 법, 싸우는 법, 걱정하는 법, 참여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기자가 인터뷰를 진행한 날에 이상한나라는 이미 '마지막 퇴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엑시트도 올해로 일단 '시즌 1'을 마무리했다. 예산 부족 탓이다.'시즌 2'를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은 앞일을 알 수 없다.

시즌1을 마무리하며 엑시트와 이상한나라는 그간 활동을 이곳을 직접 겪은 청소년, 활동가, 다른 기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정리한 책 '비상구에서 지은 누구나의 집'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궁금하다면, 필요하다면,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면 좋겠다.

관련해, 청소년 홈리스의 '집에서 살 권리'를 이야기하는 '청소년 주거권 네트워크'도 절찬 활동 중이다.

■ "불편도 겪어봐야 아는 거니까요" [사람] 탈시설 '사람'에게서 시작해야... 탈시설 협동조합 '도약' 준비위(21.09.13)

▲ 11일 관악 정다운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만난 '도약'과 관악 의료사협 활동가. 왼쪽부터 ©팝콘뉴스

마지막은, '탈시설' 이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까마득히 모르는 일이라, 인터뷰 전에도 기사 진행 중에도, 기사 진행 후에도 인터뷰이분께 죄송스럽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중증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의 '탈시설' 문제가 올해 계속 언급됐다. 올해 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약속했던 '탈시설 로드맵'을 내놨고, 국회에서는 '탈시설법'이 발의됐지만, '시설전환' 중심의 로드맵은 여전히 탈시설 시 돌봄의 책임을 '보호자'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며 '탈시설법' 및 탈시설 권리가 명시된 '장애인권리보장법'은 논의가 후퇴하는 중이다.

'도약'은 장애인 시설 '도란도란'이 폐쇄되면서 이곳에서 '전원'이 아닌 '자립'을 선택한 이들의 충분한 자립을 위해 준비 중인 탈시설 협동조합이다. 신림 등지에 가까이 자리를 잡은 '아저씨들'과 여행도 하고, 모임도 하고, 진료도 받고 있다.

보호는 '완전히 안전하고 무결한'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불편과 위험을 스스로, 또 함께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일과 함께 가능하다고, 그 실례를 만들겠다고, 이날 인터뷰 한 강자영·김치환 사회복지사는 말했다.

진즉에 적었어야 할 이야기를 미뤄 적다 보니 스크롤이 길어졌다. 모쪼록, 내년은 제때 전해야 할 목소리를 제때 전할 만큼만 나아지기를 일단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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