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겉으로 보면 진보적이고 세련된 성의식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뒤로는 여성 몸에 대한 왜곡된 성문화가 번성하는 이중적 의식 만연
이성과 교감하고 의사소통 훈련해야 건강한 성심리 형성할 수 있어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김재용 기자)길거리를 걸어가는데 앞에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순간 흠칫 놀랐는데 여학생들의 치마가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요새 여학생들 교복 치마가 짧은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 학생들은 너무도 짧았다. 어느 정도 짧았는지 기사에 옮길 수 없을 정도였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이렇게 짧은 교복 치마는 상상할 수도 없었기에 성문화의 급격한 변화가 놀라웠다. 또 한 편으로는 이렇게 짧아진 교복 치마처럼 지금 우리 사회가 건강한 성의식을 형성하고 있나 하는 의문도 들었다.

성의식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최근 우리 문화만 봐도 이 점을 알 수 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여중·고생이 짧은 교복 치마를 입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간혹 그런 옷을 입는 학생들이 있으면 이웃 나라의 잘못된 성문화를 배운 것으로 여기거나, 일종의 비행 청소년으로 치부되며 차가운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여학생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활보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과도하게 짧은 경우도 많지만, 이를 차가운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적다. 예쁘다고 칭찬받고, 긴 치마를 입으면 오히려 촌스럽다고 여긴다.

개인적으로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너무 짧은 교복 치마를 입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짧은 치마를 입는 목적은 예뻐 보이기 위함인데, 성적 어필을 매개로 하므로 왜 미성년 학생들이 이런 성적 어필을 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 학생들의 성적 어필을 터부시하면서 성적 어필을 할 수 있는 복장을 당연시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성적 이중구조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는 한국 사회의 급격한 성의식 변화를 보여주며, 동시에 성에 대한 이중적 의식 또한 한국 사회만의 또 다른 특수한 면(분열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뿐만 아니라 20~30년 전만 해도 길거리에서 남녀학생이 손을 잡으면서 가는 모습 자체를 보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손을 잡는 것을 넘어서서 몸을 밀착하거나 입맞춤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이처럼 성의식은 시대에 따라서 달라진다.

성을 엄격하게 금지했던 중세 시대

고대에서 전근대 이전 시대의 성의식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큰 차이는 없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스토아 철학은 인간의 성욕과 이성을 분리해서 이해했다. 고대인에게 성관계는 오늘날과 같은 즐거움이 목적이 아니라 출산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기독교 시대에 들어서 성을 하나님의 선악과 연결 지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비정상적인 성행위는 모두 터부시했다. 간통, 강간, 근친상간, 간음 등은 모두 죄악이었고 불법이었다. 17세기를 배경으로 한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주홍 글씨'에 이러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주인공 해스터라는 젊은 여인은 유럽에서 늙은 남성과 결혼했다. 남편을 유럽에 두고 해스터는 먼저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그곳에서 어느 남자의 사생아를 낳는다. 간통한 죄로 해스터는 공개된 장소에서 A자를 가슴에 달고 평생 사는 벌을 받는다. 현대 비평가들은 성에 대한 이러한 율법주의의 엄숙이 인간의 성욕과 성도덕을 제한한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 따라 현대사회에 들어서서 성에 대한 금기가 많이 없어졌다.

큰 틀에서 보면 동양의 성윤리도 서양의 성윤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대 유물을 보면 여성의 성기와 가슴을 유독 커다랗게 만들어낸 그릇이나 장식품 유물이 많은데 이는 성을 쾌락의 행위보다는 다산이나 출산 같은 풍요의 상징으로 여겼던 흔적일 것이다. 한국의 성의식은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개방적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근본적 성리학적 질서가 형성되면서 성에 대해서는 엄격히 터부시되었다. 근친상간, 간통, 간음 등을 범한 사람은 강상죄로 처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결혼하지 않은 미혼의 딸이 외부 남성과 성적 추문이 생기면 그 가족들이 딸을 몰래 죽여버리는 명예살인도 적지 않았고, 동네 남성과 성적인 관계가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나서 자살하거나, 소문을 낸 당사자를 피해 여성이 찾아가서 직접 죽이는 일도 있었다. 이처럼 과도한 성적 금기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부작용을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일본은 성에 대해 개방적이었다. 에도 시대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일본 성문화를 목격하고 놀랐을 정도였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자기 조카와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을 정도로 일본은 근친상간에 대해서도 개방적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의 성문화는 터부시되는 것이 별로 없다. 이처럼 일본은 과거와 비슷하지만, 한국은 상당히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볼 수 있다.

성심리에 관한 아이젠크(Eysenck) 이론

성심리에 관한 여러 가지 심리학적 이론들도 있다. 진화심리학은 성의식을 자연 선택의 과정으로 본다. 유기체는 재생산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본능적인 행동의 범위를 발달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이론은 가학, 피학성 변태 성욕 들을 진화의 산물로 본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남성적 흥미와 편견을 다루기 때문에 여성은 매우 혐오감을 가질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이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성윤리의 파탄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독일계 영국 심리학자 한스 아이젠크(Hans Jurgen Eysenck) 이론의 핵심 내용은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외향적이기 때문에 더 많은 자극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외향적인 사람은 더 열정적인 경험과 흥분을 찾기 때문에 더 위험한 성적 행위를 추구한다. 반면에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극을 덜 추구하기 때문에 자극적인 성행위를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외향적인 사람이 반드시 위험한 성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비판을 받는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행동은 습득되거나 문화에서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발달은 생물학적 발달 과정이고 경험과 사회화로 수정된다. 태아에서 어른으로 자라면서 단계를 통해 성숙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프로이트 이론의 핵심은 인간이 성장해서 겪는 모든 문제는 어렸을 때 경험한 일들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른이 되어서 갖는 성의식도 어렸을 때의 일들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또한 인지발달 이론에 따르면 출생 직후의 영아는 자신과 세상에 대해 어떠한 도식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과 주변 세계에 대한 개념을 형성한다. 주변의 여성과 남성의 활동과 역할을 관찰하면서 사회적 성고정관념을 습득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 인지발달 이론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성심리 이론들보다는 미디어가 성의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성 정보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어떤 관념이나 개념적인 것, 또는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인상만을 줄뿐 나머지는 머릿속에 머물다가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미디어만을 통한 학습은 자칫 성의식에 대한 오류와 왜곡된 지식만을 습득할 가능성이 크다.

예전보다는 달라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가 어리다거나,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성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어른들이 많다. 이런 과도한 금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오히려 이중적이고 왜곡된 성의식을 형성시킬 가능성도 크다. 성적 욕망과 그것을 합리적으로 통제하는 기제 사이에 불일치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성에 대한 이중적 의식은 건강한 성문화를 형성시키기보다 겉으로만 점잖은 척하고, 뒤로는 과도한 성적 이미지에 변태적으로 집착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꽤 번성하는 특유의 밤 문화나, 왜곡된 성의식이 미성년자에 대한 심각한 범죄로까지 발전한 n번방 등이 이를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성적 의사소통을 아는 것이다. 성적 이중의식을 깨기 위해서도 성적 의사소통은 중요한 기능을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보통 남성들은 성적 의사소통에 대해서 여성만큼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여성은 커플 간의 의사소통에 대단히 민감한 편이다. 언어학자인 데보라 테넌(Tannen)에 따르면 "이성 관계의 패턴이나 문제에 대해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남녀가 매우 상이한 의사전달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성 간에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관계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성적인 상호작용을 어떻게 조정하는가, 성행동 이후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등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자료

『성심리와 성건강』, 박경, 이희숙 外, (주)시그마프레스, 2008년,

『성심리의 이해: 제9장 대중문화와 성』, 천성문, 양서원, 2013년,

『100년 전 살인사건』, 김호, 휴머니스트,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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