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 연예인 캐스팅한 드라마 '설강화' 열매 맺기도 전에 '낙화'
역사왜곡 안기부 미화 등으로 네티즌에 뭇매…광고사들도 손절

▲ JTBC 드라마 '설강화' 포스터(사진=JTBC) © 팝콘뉴스


(팝콘뉴스=박윤미 기자)대세 배우 정해인과 글로벌 스타 블랙핑크의 지수를 캐스팅한 드라마 '설강화'가 열매도 맺지 못한 채 '낙화'하는 모양새다.

종합편성채널 JTBC가 2021년을 유의미하게 마무리하는 동시에 2022년의 신명 나는 출발(시청률)을 기대하며 내놓았을 주말드라마 '설강화'(연출 조현탁 l 극본 유현미)가 '역사왜곡', '민주화운동 폄훼' 등을 이유로 시청자는 물론 비시청자들의 심기까지 건드리면서 방영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드라마 앞뒤로 줄줄이 붙었던 광고들은 하나둘 빠지기 시작해 대부분 빠르게 '손절'하고 있다.

'설강화'는 국가안전기획부 요원들에게 쫓기고 있던 남파간첩 임수호(정해인 분)를 운동권 대학생으로 오해한 대학생 은영로(지수 분)가 구해주면서 시작되는 드라마다. 지난 18일과 19일 1, 2회가 방영됐다.

드라마는 방영 전 일부 내용이 유출되면서 '드라마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이 때문에 드라마 제작진 등은 이 드라마가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하는 것이 아닌,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 픽션이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드라마의 메가폰을 잡은 조현탁 감독은 지난 16일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1987년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군부정권과 대선정국이라는 상황 외에 모든 인물과 설정 기관은 가상의 창작물이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제작진이 나서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드라마상 베를린대학교 경제학과 대학원생인 남자 주인공이 실제로는 남파 간첩이었고, 여자 주인공은 그런 남자 주인공을 그저 데모하다 도망 다니는 운동권 청년이라고 생각하며 돕는 설정 자체가 심각한 역사왜곡이라고 비난받았다. 안기부 직원을 미화한 장면 등은 시청자들의 원성을 들어야 했다. 드라마의 배경인 1987년은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때로, 마치 민주화운동에 간첩이 개입한 듯한 오해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역시 이 드라마 방영금지를 외치는 이들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드라마가 첫 방송 된 후 이튿날인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드라마 설ㅇㅇ 방영중지 청원'을 제목으로 하는 글까지 등장했다. 이 글은 단 이틀 만에 30만 명 넘는 이들로부터 동의를 얻으며 청와대 답변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청와대는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에 대해서만 답변한다.

▲ '설강화' 방영 중지를 촉구하는 국민청원, 이틀 만에 30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사진=청와대 국민청원) © 팝콘뉴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설강화 관련 민원만 500건 이상 접수됐다. 그뿐만 아니라 화력이 세기로 유명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드라마에 협찬했거나 광고 중인 기업 명단과 함께 불매 요청 운동을 예고하는 글이 등장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제일 먼저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정해인을 모델로 쓰고 있는 치킨업체에서는 재빠르게 광고를 철회하며 발을 뺐다.

드라마 '설강화'의 역사왜곡 논란에 고(故) 박종철 열사 측에서는 "명백한 왜곡 의도를 지닌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관계자는 20일 모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드라마를 봤다. 역사적으로 너무나 무책임하고, 너무나 명백한 왜곡 의도를 지닌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드라마에서 안기부 직원은 부조리한 현실, 국가권력과 언론, 국민으로부터 진실을 외면받는 피해자가 되고 혼자 진실을 꿰뚫고 정의를 구현하는 존재로 미화되고 있더라. '미화가 아니라 오히려 부패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한 것'이라는 (드라마) 제작진의 해명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드라마 시작할 때 사건과 배경이 실제와 관련 없다는 자막이 나오는데, 그것 하나로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물은 뒤 "아픈 역사를 다룰 때는 콘텐츠를 만드는 분이 더한 무게를 가져야 한다. 철저하게 진실에 기반을 두지 않고서는 가상으로라도 배경을 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드라마 '설강화' 사태는 지난 3월 방영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연출 신경수 l 극본 박계옥) 때와 흡사하다. '조선구마사'는 중국식 한복과 월병 등을 소품으로 활용했다가 역사왜곡 논란으로 단 2회 방송 만에 브라운관에서 퇴출당했다.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및 광고업체 등은 '(역사에 대한) 무지'를 사과하는 것으로 그나마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처럼 드라마 '설강화'가 살얼음판을 걷는 가운데 이 드라마의 OST '곁에 있어준다면'을 부른 가수 성시경과 이지성 작가가 나름 소신 발언했다가 세간의 뭇매를 맞고 있다.

성시경은 이달 1일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많은 분이 '설강화'만 안 된다고 하시는데, 예전에 약간 내용상(역사왜곡)으로 뉴스가 났던 게 있어서 그러시는 것인가"라며 "그렇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확인했다"고 드라마가 역사왜곡 하지 않음을 확신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성시경의 이 같은 발언은 '설강화'의 내용이 일부 유출되면서 역사왜곡 논란을 우려한 성시경 팬들이 그의 OST 참여를 만류했기 때문.

그런데도 그는 "만약 역사왜곡 드라마면 그게 방영이 될 수 있을까"라며 "'설강화'가 그런 내용이면 아마 잘 안되지 않겠나. 문제가 생길 거다. 우리 사회는 '다 같이 쟤를 미워하자' 이런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런 건 없어져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당구선수 차유람의 남편으로 유명한 이지성 작가는 '설강화' 드라마 방영 중단을 촉구하는 네티즌을 겨냥해 "'설강화' 핍박자들아 민주화 인사라 불리는 자들이 학생 운동권 시절 북괴 간첩들에게 교육받았던 것은 팩트"라며 "이건 그냥 현대사 상식 같은 거야. 증거도 차고 넘친단다. 제발 공부부터 하고 움직이렴"이라는 조롱조의 글을 자신의 SNS에 게시했다. 이 작가는 '꿈꾸는 다락방', '리딩으로 리드하라' 등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을 '우익작가'로 칭하고 있다.

이러한 논란이 이는 가운데 청년단체 '세계시민선언'에서는 20일 공식입장문을 통해 22일 오후 2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드라마 설강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계시민선언은 "'설강화'에서는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을 이유 없이 고문하고 살해한 안기부 소속의 서브 남주인공을 우직한 열혈 공무원으로 묘사하며 안기부를 적극적으로 미화하고 있으며, 간첩이 우리나라 내부에서 활약하며 민주화 인사로 오해받는 장면을 삽입하여 과거 안기부가 민주항쟁을 탄압할 당시 간첩 척결을 내걸었던 것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는 군부독재에 온몸으로 맞서던 이들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자 현재진행 중인 군부독재 국가들에 자칫하면 세월이 지나면 자신들의 국가폭력 또한 미화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는 매우 위험천만한 행위"라고 밝혔다.

또 "저희 세계시민선언은 법원이 '설강화'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함으로써 방송이 더는 희생당한 시민들에 대한 모독행위를 할 수 없게끔 중단시키고 사회에 국가폭력을 더는 용인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기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밝혔다.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 또한 이번 논란과 관련해 소신 발언했다.

전 박사는 "1987년 민주화운동 배후에 북한 간첩이 있었고 정부 요원들의 고문은 불가피했다는 생각을 담은 '창작물'이 흥행에 성공하면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80년 광주에서 무장 공격을 주도했다는 생각을 담은 창작물이나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 취업자라는 생각을 담은 창작물도 만들어질 수 있다"며 "창작자들에게는 역사적 사실을 날조할 자유가 있지만, 그 날조에 대해 사회적, 문화적 책임을 질 의무도 있다. 조두순이나 유영철을 미화하고 그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저지르는 패륜적 창작물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은 이런 생각에 대한 '사회적 응징' 기능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이어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는 역사적 사실을 증거 없이 날조할 권리가 창작자에게 있다면 그들을 응징할 권리는 시민에게 있다"면서 "그 응징의 정도가 유사한 창작물의 범람 가능성을 결정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드라마 '설강화' 논란에 붙은 불씨는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화력이 세졌고, 때문에 많은 시청자는 과연 방송국이나 제작진 측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하고 있다.

21일 현재 JTBC는 "역사왜곡과 민주화운동 폄훼 우려는 향후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오해 대부분이 해소될 것"이라며 "부당한 권력에 의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억압받는 비정상적인 시대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제작진의 의도가 담겨 있다. 회차별 방송에 앞서 많은 줄거리를 밝힐 수 없는 것에 아쉬움이 남지만, 앞으로의 전개를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라는 입장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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