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검사 주기 이틀에서 5일로 바뀌었지만
예산 줄고 병상부족으로 방치 여전

▲ 15일 서울역 광장에 거리 홈리스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펼친 1인 텐트들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다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올해 초, 확산세를 키워나가던 코로나19는 서울역 광장까지 덮쳤다. 방역 당국은 거리 홈리스 등 홈리스가 센터나 시립 식사시설을 이용하려면 이틀에 한 번씩 PCR 음성확인서를 받아오는 일종의 '방역패스'를 대안으로 내놨다. 주민등록 말소나 휴대전화가 없는 탓으로 PCR 검사가 어려운 이들이 시설 이용에서 배제됐다.

확진 시 제공되는 임시 격리 시설인 컨테이너 역시 격리와 주거에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일자, 방역 당국은 지난 10월과 11월 단계적 일상회복 시행과 함께 "격리에 취약한 주거환경인 경우 생활치료센터 입소나 입원치료를 우선"으로 하겠다는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상황은 달라졌을까. 15일 서울역 광장을 찾았다.

■ 음성검사 주기 이틀→닷새로 바뀌었을 뿐...시설 이용 여전히 어려워

길게 늘어선 선별검사소 대기줄을 지나치자 박스 종이를 몇겹 덧대 바닥에 앉은 거리 홈리스들이 보였다. 간밤에 내린 비를 피하고자 곳곳에 있는 작은 1인용 텐트가 지퍼를 단단히 걸어 잠그고 있었다.

서울역에서 15년째 생활하고 있다는 홈리스 A씨(69)는 "여기는 다 똑같다"며 5, 10, 15, 25, 30일마다 PCR 검사를 받고 있다고 했다. 시립 배식소인 따스한채움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올해 초 공영 복지 시설을 이용하는 홈리스 대상으로 도입된 '음성검사제'는 주기가 이틀에서 일주일로 짧아졌을 뿐, 여전히 운영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PCR 검사를 받기 어려워지거나 주기적인 검사가 부담스러워 시립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이들은 다른 지역구로 옮겨 다니며 식사를 해결하는 상황이다.

홈리스 B씨(67)는 "가끔가다 한 번씩 검사를 받는데, 정기적으로는 못 받는다. 왔다 갔다 해야 하니까"라며 "먹고 자고 해야 하니까 그렇다. 종교단체에서 밥 주는 곳이 (여기저기) 많이 있는데, 밥은 거기서 먹고 있다"고 말했다.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서울시립 따스한채움터의 1식 평균 이용인원은 음성확인제가 시행된 지난 2월, 직전 달 약 311명에서 약 135명으로 줄었다. 2019년, 2020년(평균 약 300명)에 비해 200명가량이 줄어든 수치다.

▲ 서울시립 따스한채움터 1식평균 이용인원 변화(사진=홈리스행동) © 팝콘뉴스

격리시설 이동 지연 역시 여전한 상황이다. 지난달 30일 서울역에서 생활하는 한 거리 홈리스가 정기 PCR 검사에서 확진 판정받은 후에도 거리에 방치된 사례가 알려진 바 있다.

홈리스행동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지난 11월 15일부터 28일까지 서울역 인근에서 발생한 확진자 수는 약 10명이다. 비슷한 시기 영등포 노숙인 복지시설에서 34명(11월 7~18일), 동대문 노숙인시설에서 78명(10월 26~11월 16일)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홈리스행동은 시설로 이동하지 못하고 방치된 확진자 수 파악 등을 위해 지난 1일 서울시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면담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파악이 늦춰지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 지속적인 의료 서비스 필요한데, 예산 10% 감축

의료공백은 되려 확대하고 있다. 거리 홈리스의 경우, 별도 공공 지정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지정병원제'가 적용되는데, 해당 병원이 코로나19 전담 병원으로 전환한 까닭이다.

하지만 서울시의 내년 노숙인 등 의료지원 예산은 올해 대비 10% 삭감된 상태로 시의회에 제출됐다.

이날 서울역에서 만난 거리 홈리스의 나이대는 대부분 50·60대였다. 이들 중 일부는 기억장애, 신체장애, 우울증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우울증으로 쪽방 등에서 살기 어려워져 거리로 2주 전 거리로 나왔다는 C씨(60)는 "강화도에 죽으러 갔다가 다시 한번 살아보려고 여기 온 것"이라며"지원신청을 하면 고시원 같은 데를 얻어주는데, 들어가 있으면 그게(우울증이) 또 닥칠까 봐, 이겨보려고 나왔다. 다음 주부터 인력사무소라도 가 볼 것"이라고 전했다.

D씨(56)는 기억장애와 발 부위 장애를 동시에 겪고 있다. 요양병원에서 6개월간 생활하다 지원사업을 통해 고시원을 얻었지만, 다시 서울역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D씨는 설명했다.

D씨는 "전기공사를 한 30년 했는데, 발에 감각도 없고 코로나19로 일도 없고 해서(쉬고 있다)"며 "발이 좀 괜찮아지면(일을 다시 할 것)"이라고 말했다.

▲ 15일 서울역 노숙인 지원시설인 '다시서기지원센터'에 "감염증 확산 및 예방을 위해 쪽방 및 고시원 거주자와 기초생활 수급자는 센터 이용을 자제해 달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 팝콘뉴스


■ "죄송합니다. 곧 걷겠습니다"

지원사업의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관련 예산은 줄어드는 모습이다.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서울시가 시의회에 제출한 내년도 노숙인 자활·재활·일시보호시설 등 복지시설 기능보강 예산은 2021년 약 5억 5000만 원에서 약 4억 1000만 원으로 25%가량 감액됐다. 노숙인 종합지원센터 기능보강 비용이 새롭게 책정됐으나 서울역 응급구호방의 칸막이 설치 비용 등이 골자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 빈칸 일부는 종교단체가 메꾸고 있다. PCR 검사가 어려운 이들 대상의 식사 제공뿐 아니라, 이날 곳곳에 자리한 1인 텐트도 종교단체에서 지급한 것이라고 홈리스들은 설명했다. 다만, 날이 개면 텐트 설치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텐트를 지급받은 C씨는"아침 7, 8시가 넘어가고 날씨가 좋으면 경찰들이 텐트를 걷으라고 한다. 보기 흉하니까"라고 말했다."비가 오면 좀 봐준다"고 덧붙였지만,한 노숙인의 텐트 위에는 자신의 이름과 함께 "죄송하다. 곧 걷겠다"는 문장이 적힌 쪽지가 얹혀 있었다.

15일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홈리스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통해 "짐을 보관할 수 있는, 몸을 누이고 바이러스로부터 내 몸의 안전을 지키는 공간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안전한 공공공간에서 쫓아내고 짐을 마음대로 쓰레기 처분하는 폭력이 공공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 (홈리스에 대한) 형벌화 조치를 막아야 하는 게 공공의 역할"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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