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앞에선 노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회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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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뉴스=박윤미 기자)* [고민의 발견]에서는 살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부분을 다룹니다. 때로는 핫이슈를, 때로는 평범한 일상에서 소재를 채택합니다. 마지막 단락에는 고민과 닮은 책의 한 페이지를 소개합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올 7월부터 실시한 '고령층 이용자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모양이다. 지난달 29일 이 사업의 성과와 우수사례 등을 알리는 별도의 자리까지 마련됐다고 한다.

재단에서는 이 사업을 마무리하며 "부모 세대인 고령층의 정서를 이해하며 맞춤형으로 친밀한 교육을 진행함으로써 참여자와 교육자 모두의 만족도가 높았다"는 후기를 전했다.

이러한 평가는 단순히 재단에서 현장의 분위기만으로 짐작해 밝힌 것은 아니다. 실제로 서울시 노인복지관 같은 67개 기관에서 진행된 교육에 참여한 노인 98%가 '만족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결과에 노인 아닌 세대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짐작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같은 첨단기기들은 노인들에게 대적하기 쉬운 상대(?)는 아니다. 요즘은 노인들도 대부분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만 일반 피처폰과 같이 전화 걸고 받는 용도 외에는 잘 활용하지 않는 이유 역시 '어려워서'다.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를 잘 활용하며, 포털 사이트 앱을 열어 정보를 탐색하는 정도까지는 60대도 거뜬히 해내고 있지만, 그 이상의 나이대에서는 사실상 흔하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일, 저장된 전화번호를 불러 전화 거는 일 것조차 60대 이상 고령층에게는 복잡한 일이다.

또한 스마트폰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눌러봐야 하는데 자식이 사 준 비싼 기계(?)를 그렇게 다루려는 노인은 많지 않다.

고령층에게는 '키오스크' 또한 스마트폰같이 딴딴하고 차가운 물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요즘은 대형 프랜차이즈뿐 아니라 소규모 점포들도 하나둘 키오스크를 들여놓으며 인건비를 절약하고 있다. 머잖아 '주문'은 고객의 몫이지 종업원의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이 낯선 기계를 상대로 어떻게 필요한 것을 주문해야 하는지를 배운 노인들은 거의 없다.

문제는 이러한 기기들은 한두 번 설명 듣고 완벽하게 숙지해 쓸 수 있는 간단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인데 때문에 옆에서 누군가 계속해서 사용법을 설명해 주고, 본인도 물건이 익숙해질 때까지 기계를 접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시대에 친절하게도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사용법, 활용법을 알려주는 그야말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교육'이 있었다니, 교육받은 이들이 어찌 만족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몇 달 전 서울역 인근의 한 호텔에 차를 세워뒀다가 요금 정산 문제로 꽤 애먹은 일이 있었다.

분명 사전 정산했는데도 뭐가 잘못됐는지 차단기는 꼼짝도 없이 한일(一)자를 그리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어떻게 행동하라는 지침도 없었지만, 당시로서는 주변에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다급한 나머지 기계에 붙어 있는 빨간 단추를 눌렀지만, 요란한 소리만 잠시 낼 뿐 해결책은 되지 않았다. 여차여차해서 무사히 건물을 빠져나온 뒤에도 운전대 잡은 손에서는 계속해서 식은땀이 났다.

지난주에는 무인정산 시스템으로 완벽하게 탈바꿈된 한 대형마트에 갔다가 흰머리 성성한 노인 부부가 요금 정산소에서 허둥대는 모습을 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요금 정산하는 부스에 앉아있는 직원에게 영수증을 건네면 차단봉을 열어주는 방식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무인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기기에 서툰 노부부는 나가는 방법을 알지 못해 당황했던 것이다.

서울역 한 호텔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차에서 내려 노인 운전자가 정산소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이후 영수증의 바코드를 기계에 대면 알아서 차단봉이 올라간다는 설명 또한 잊지 않았다.

마트에서 집을 향해 운전하면서는 "이렇게 사람 많은 날에는 주차 도우미 한 명 정도는 배치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곰곰 생각해보니 인건비 줄이겠다고 기계 들여놓고 또 인력을 배치하는 게 마트로서는 비용을 이중 삼중으로 지출하는 일이었다.

기기 이용에 서툰 노인들에게는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하고 싶다.

이 사회는 '주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대세'가 괜히 대세겠는가. 하여 스마트폰도, 키오스크도 그것에 익숙하지 않아 헤매는 노인보다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주류'들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주류는 30~50대다. 물론 20대에도, 빠르면 10대 후반의 나이에도 능력과 상황에 따라 돈 벌고, 쓰고,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보자면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하는 코어는 분명 30~50대다. 때문에 사회는 이들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니즈를 빅데이터로 추출해 소비재를 만들고, 그들이 지갑을 열도록 하는 것이 '시장'이니까. (심지어 키오스크 같은 기기를 만들거나 매장 내 배치할 때도 스스로 계산이 가능한 대한민국 성인의 평균 신장을 고려하지 않는가. 필자는 아직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키오스크를 본 적이 없다.)

지금의 시대가 30~50대를 주류로 치다 보니 주류 아닌 비주류는 소외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어린아이들이야 보호자가 거의 매일 곁에 있는 데다 모르는 것을 하나둘 배우는 시기이기도 하고 곧 주류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니 그다지 미안한 느낌이 덜하지만, 한때 사회를 주름잡았던 '주류'들이 '비주류'로 계층(급) 이동한 뒤 소외되는 것을 볼 때면 다소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렇다면 이 사회는, 이 사회의 젊은이들은 스마트폰과 키오스크가 어려운 고령층의 사람들, '노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선 기억해야 할 것은, '인간은 누구나 비주류에서 주류로, 또다시 비주류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태어난 인간 모두가 겪는 동일한 시간적 경험이다. 현재 이 시대를 사는 노인들도 한 때는 대한민국 대세였다.

결국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말이다. MZ세대들도 몇십 년 후에는 노인이 되고 오늘날의 노인들이 낯설어하는 스마트폰과 키오스크와 같은 아니 그보다 더욱 낯설고 조작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만날 수 있다. 세상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므로.

따라서 젊은이는 조금만 '여유'를, 그리고 조금은 용기를 내 '친절'을 베풀면 좋겠다. 키오스크 앞에선 노인의 굼뜬 손동작에 답답해할 것이 아니라 그가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잠시 살펴봐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그리고 "제가 도와 드려도 될까요?" 하고 물을 수 있는 용기와 친절한 마음. 그것이면 된다. 그것에 대한 보상은 또 다른 누군가가 내 부모에게 친절을 베풀 것이라 믿는 것으로 대신하면 되겠다.

노인들에게도 부탁드리고 싶다. 젊은이들과 같이 '용기'를 내셔라. 모르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고 당신들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가르쳤다. 기계 앞에서 주문하는 일이 영 어색하고 어렵더라도 괜히 종업원이나 사장을 불러가며 성내는 일은 안 된다. 주변에 있는 젊은 사람 누구에게라도 "잘 몰라서 그러는데", "혹시 도와줄 수 있는지" 하고 겸손한 자세로 도움을 청한다면 단언컨대 거절할 이는 없을 것이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늙은이로 태어나 아기로 죽는 것, 어쩌면 저게 더 나을 수 있겠구나. 외형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요즘 사회에 차라리 어린 아기의 모습이라면 사람들의 친절이라도 마음껏 받다가 충만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을 테니.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이번 교육은 그야말로 이 시대에 걸맞은 교육이 아니었나 싶다. 조금 욕심을 부려보자면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마트폰 사용 방법 같은 교육은 동사무소 같은 데서만 할 게 아니라 TV 채널에서도 좀 정규 편성해 방영하면 어떨까. 왜 교육 방송에서는 입시에 필요한 것들만 가르치는 것인지. 유튜브나 네이버에서 스스로 정보 얻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텔레비전에서도 좀 방영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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