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명에게 물었습니다] "수능 잘 봤니? 이제 뭐 하고 놀 거니?"

대구지하철참사 있던 해에 태어난 49만 5000명 열아홉 청춘에게 전하는 응원
"앞으로는 더 좋은 인품을 가진, 더 실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해"

박윤미 기자 | 기사입력 2021/11/19 [16:37]

[O명에게 물었습니다] "수능 잘 봤니? 이제 뭐 하고 놀 거니?"

대구지하철참사 있던 해에 태어난 49만 5000명 열아홉 청춘에게 전하는 응원
"앞으로는 더 좋은 인품을 가진, 더 실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해"

박윤미 기자 | 입력 : 2021/11/19 [16:37]

▲ (사진=뉴시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박윤미 기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과 이야기들을 골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듣습니다. 그동안의 일방향 보도 방식에서 벗어나 독자들과 소통하고 함께 만들어나가는 뉴스입니다. 예민한 사안의 경우 의견을 주신 분들의 성함을 닉네임으로 대신하거나 블러 처리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한 아이돌 멤버의 무례하다 못해 철딱서니 없는 발언에 많은 수험생이 상처받았다.

 

세계적 가수 방탄소년단을 배출한 기획사 빅히트와 CJ ENM이 합착해 만든 레이블 빌리프랩의 소속 아이돌 그룹 엔하이픈은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던 18일 오후 5시 네이버 V라이브를 통해 'D-1'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송출하며 19일 열리는 팬미팅 소식을 전했다.

 

멤버들은 영상을 지켜보고 있을 팬들을 향해 "내일 (팬미팅에) 오시는 분 중 수능 보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겠다. 수능 다음날이니 수능 잘 보고 나서 오시면 되겠다"고 애정 어린 눈빛과 멘트를 전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V라이브는 이 팀의 리더인 양정원 군이 끼얹은 찬물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가 "그런데 수능 다음날 팬미팅 오시는 거면 잘 보시지 못하시지 않았겠냐"는 불필요한 말을 한 것이다. 

 

이 같은 정원 군의 말에 옆에 있던 다른 멤버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냉랭해진 분위기에 한 멤버가 "못 봐도 된다. 여기 와서 위로받으시면 된다"며 수습에 나섰는데, 당사자인 정원 군도 의도가 어떻든 "수능이 뭐 중요한 것은 아니다"며 수능 관련 발언을 마무리했다.

 

정원 군의 나이는 올해 열여덟. 그도 두 달 뒤면 (대한민국에서 평균적으로) 수능시험을 치르는 열아홉 살 나이가 된다. 수능을 떠나 정원 군은 이미 내로라하는 또래 실력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 뽑힌 경험이 있다. 수험생들이 겪는 압박과 스트레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그런 그의 입에서 나왔어야 할 말은 "정말 수고 많았다"라거나 "혹시 시험을 잘 보지 못했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다음에 잘 보면 된다"는 선험자의 위로였을 것이다.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는 정원 군의 이 같은 발언과 관련해 여러 개 글이 생산됐고, 그중 하나의 글에는 1000개 이상의 댓글이 쌓였다.

 

한 네티즌은 "저 말에 화가 나는 건 고3이라서가 아니다"며 "저건 양정원이 팬을 할 일 안 하고 자기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한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말이다. 이게 무슨 수험생 부심인가. 편들어줄 걸 들어줘라"고 분노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같은 반응인데, 그는 "이건 고3(수험생)만 화낼 일이 아니라 팬들 다 화낼 문제 아닌가. 할 일도 제대로 안 하고 자기들만 쳐다본다고 생각했으니까 이런 말도 쉽게 한 것이다"고 불쾌한 심정을 밝혔다. 

 

엔하이픈 그리고 양정원 군을 옹호하는 댓글도 적지는 않다.

 

한 네티즌은 "솔직히 수능 잘 본 애들은 저런 말에 아무 생각이 없다. 수능 못 본 애들이 부들거리는 게 사실이다"며 크게 잘못되지 않은 발언이라는 입장이다. 

 

정원 군의 말에 힘을 싣는 네티즌도 있는데 한 댓글에는 "솔직히 틀린 말이 아니긴 한데 그걸 입 밖으로 내뱉었다는 건 문제지만…. 수능 며칠 전에 (팬미팅) 티켓팅이나 하는 사람이 어떻게 수능을 잘 보기나 했겠냐"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네티즌의 예상과는 달리 많은 고3 학생이 수능을 준비하면서도 (기말, 논술, 면접 등 각자의 계획을 모두 마친 이후) 졸업 전까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를 나름으로 열심히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인에는 고3 학생들이 수능일 전부터 시험 이후 계획을 묻는 글들을 잔뜩 올려놓기도 했다. 실제 팝콘뉴스가 인터뷰한 고3 학생들은 친구들과 "수능 끝나면"으로 시작하는 게 거의 모든 대화일 정도라고 전했다. 

 

같은 학교 한 반 친구인 S, K, Y양은 코로나19 탓에 친구들과도 '거리두기' 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나마 수능이 끝난 현재 위드코로나 상황이라 친구들과 모여 여행이나 공연 등을 즐길 수는 있지만, 일일 확진자 숫자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자유로이 외출을 즐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반면 위드코로나와 수능시험 기간이 맞아떨어지면서 이를 기회로 여긴 백화점, 대형마트, 온라인몰 등은 할인행사를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확진자 발생을 염려한 까닭에 중단됐던 문화 공연들도 기지개를 켜고 사람들을 무대 앞에 모으는 중이다. 콘서트와 뮤지컬 등을 예매하는 사이트에서도 수험생을 환영하는 이벤트가 한창이다.

 

수능 이후 첫 주말을 맞는 고3 수험생들의 발길은 과연 어디로 향하게 될까. 

 

▲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서울 강서구의 한 고등학교 고3 같은 반 학생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서울 강서구의 A 고등학교 3학년인 S양은 운전면허 취득 그리고 친구들과 놀이공원 가는 계획으로 들떠있다. S양은 "위드코로나이긴 한데 놀이공원에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친구들이랑 수능 끝나면 롯데월드 가자고 말은 했는데 조금 그렇다. 면허는 될 수 있는 대로 아무것도 안 할 때 따려고 한다. 이 생각은 고3 되면서부터 했다"고 말했다.

 

같은 반 K양은 고양이카페 가기, 보석십자수 하기, 과일청 만들어서 친구들 나눠 주기, 친구랑 네일아트 하기와 같은 소소한 일상 계획을 밝혔다.

 

Y양은 친언니 방에 쌓여 있는 책 읽기, 그동안 못 본 넷플릭스 시리즈 몰아보기, 요가학원 다니기, 운전면허 따기 등의 계획과 함께 '오징어 게임'은 시험공부 중에 몰래 봤다는 고백을 슬쩍 전했다. Y양은 이번 주말 친구와 귀를 뚫을 예정이다. 스마트폰 바꾸기, 귀 뚫는 일만큼은 엄마 아빠를 생각해서 수능 이후 스케줄로 잡았다는 귀여운 효심도 밝혔다.  

 

현 고등학교 3학년은 2003년생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린 해의 다음 연도에 태어났다. 안타깝게도 당시 광화문을 붉은색과 우렁찬 함성으로 채웠던 그때 명장면을 지금의 고3 학생들은 영상과 책으로만 보고 들은 것이다. 이 해 2월 24일 김대중 대통령은 퇴임했고, 이튿날인 2월 25일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했다. 김대중 대통령 퇴임을 앞둔 2월 18일 오전 9시 55분 대구 도시철도 1호선 화재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같은 해 영화계에서는 만우절인 4월 1일 홍콩배우 장국영이 사망했다. 같은 달 25일 국내에서는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했다. 이 외에도 굵직한 뉴스가 많은 해였다.

 

2003년 출생아는 49만 5036명으로 이 중 남자는 25만 7727명, 여자는 23만 7309명이다. 이듬해인 2004년도에는 47만 6958명이 태어났는데 1년 만에 출생아 숫자가 1만 8078명이나 줄었다. 이후 2020년에는 27만 2400명이 태어났다고 하니 22만 2600여 명 이상의 신생아 울음소리가 이 땅에서 사라진 된 셈이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에게서 위로를 원했지만 그러지 못한 수험생을 위해 한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한 30대의 글을 공유한다. 부디 이번에 수능시험을 본 모든 수험생에게 편안함이 찾아들기를 바라며.

 

"수능 잘 봤니? 수능을 잘 봤으면 또 정신 차려야 해. 학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 이제는 어른이라 더 이상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아. 너는 가진 학벌을 발판 삼아 더 좋은 인품을 가진, 더 실력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해. 남들보다 더 좋은 결실을 얻게 된 것에 꼭 감사해야 해", "수능 망했니? 그래도 안 죽어. 살다 보면 내가 가진 신념이나 가치가 시절에 따라 매번 바뀌기 마련이고 그 시절도 매번 바뀌어. 그냥 조금이나마 내가 편한 방향으로 몸을 뒤척이며 눕다 보면 내 길이구나 하는 순간이 와. 그냥 수능을 잘 봤든 못 봤든 남한테 폐만 끼치지 말고 있는 대로 살아봐. 그 어느 때가 오면 알 거야. 학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됨됨이와 능력치가 중요하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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