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빈부격차와 시장중심주의로 나타나는 미국식 자본주의
여전히 미국은 배울 점이 많긴 하지만 미국의 단점도 통찰하는 균형이 필요


(팝콘뉴스=김재용 기자)최근에 일이 있어 대학교에 갔다가 어떤 대학생 청년과 우연히 만나 대화하게 됐다. 이 청년은 자기가 정치적으로 누구를 지지한다면서 한국은 무조건 미국식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정의라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청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물론 미국식이 현대 국가 체제의 최선의 대안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미국식을 따르는 것이 정의일까?

올해 2월에 유례없는 미국의 텍사스 한파로 텍사스 주민들이 큰 재앙을 겪었다. 이 와중에 가장 견디기 힘든 재앙은 돈이었다. 재앙으로 전기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텍사스 주민들은 1만 달러가 넘는 전기요금 청구서를 받았다. 세상에 전기요금이 1000만 원이 넘는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일까?

극단적 시장중심주의의 미국식 자본주의가 정의로울까?

미국 사회에선 재앙을 이용해 돈벌이하는 모습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여름 플로리다 허리케인 재앙 때도 플로리다 동네 어느 가게에서는 얼음 한 봉지를 10달러에 팔았다. 찌는듯한 8월 한여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냉장 시설을 켤 수도 없는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던 시민들은 비싼 얼음을 살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지붕을 덮친 나무들을 치워주는 데 수리업자들은 2만 3천 달러를 요구했다고 한다. 근데 놀라운 것은, 주민들의 재앙을 이용해 돈벌이하는 이런 모습을, 미국의 일부 경제학자들과 적지 않은 미국 시민들이 옹호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직 시장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될 뿐이라며 공정한 가격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게 바로 미국식 자본주의다. 물론 이것이 옳다 나쁘다 단정할 수는 없다. 경제이론적 입장에서도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런 사회 속에서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할까? 이것이 정의일까?. 미국의 정치철학자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교수는 과연 이런 모습이 정의인지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미국식 정의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일부 정치인들은 반미를 외친다. 미국식의 신자유주의가 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명목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왜 미국으로 자식들을 유학 보내지 못해서 안달하고, 강남에 집을 사지 못해서 안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구호처럼 외치는 반미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들이 반미를 외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전근대적인 내적 모순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산업화 과정에서 봉건적 모순을 완벽히 탈피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미국식의 합리적 문화와 체제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동안 친미의 길을 걸었다. 미국을 배우는 것만이 전근대성을 탈피하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독일의 공산주의 경제학자 칼 마르크스도 미국식의 테일러주의를 극찬했다고 하지 않나. 미국을 배우는 것만이 전근대성을 탈피하는 유일한 답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미국식이 아니면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는 못한다.

미국도 좋지만 동시에 미국의 단점도 볼 수 있어야

최근 일각에서는 중국식을 미래의 대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이라고 하면 무조건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딱히 그렇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중국이 비록 20세기 초 근대화에 실패하고 공산주의 체제를 선택해 질곡에 빠졌지만, 중국식 시스템은 전통적으로 서구 세계보다 선진적이었던 부분이 많다. 최근의 근대사 연구에 의하면 관료 제도나 화폐 경제의 발달, 도시의 발달, 송나라 시절부터 발전해 온 복지 제도 등은 서구보다 거의 천 년 전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근대적 시스템이 서구보다 천 년 전부터 이미 발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은 땅이 넓고 사람이 워낙 많기에 중국 땅 곳곳에서는 생각 외로 꽤 선진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작은 사회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중국은 아직 연구해야 할 부분이 너무도 많은 곳이긴 하다. 하지만, 현대 중국은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많다. 따라서 중국이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되기 전까지는 과연 중국이 미국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그래서 아직은 미국식의 자유주의와 합리적 시스템과 문화를 배워야 한다. 그렇다고 미국식이라면 맹목적으로 옹호해도 좋다고 주장하는 것이 옳을까? 미국 시스템의 합리성은 배워야 하지만, 과도한 자유방임과 자본주의의 옹호로 인해 퍼지는 마약과 범죄의 일상화, 텍사스 한파 사례처럼 이웃의 고통까지 돈벌이에 이용하는 극단적인 시장주의 문화는 금물이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판단해서 옳고 그름을 분별해야 한다.

미국이 망했다고 갑자기 미국보다 더 합리적인 어떤 규범이나 체제가 나타나서 바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다. 동네에서 능력과 돈이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형이 갑자기 이사를 했다고 바로 능력 있고 인격이 훌륭한 다른 형이 그 자리로 이사를 오지 않는다. 오히려 깡패나 더 나쁜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전보다 더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미국식을 추구하되 맹목적이기보다 우리의 현실에 맞지 않거나 너무 과하다 싶은 것은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좋은 삶이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젊은 민주 사회다. 최근 수십 년간 한국은 경제적으로 경이롭게 변모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경제권 가운데 하나가 된 지금, 한국인들은 좋은 삶의 의미에 관해 묻고 있다. 일인당 소득이 어느 정도 달성된 뒤에도, 돈으로 더 많은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참고도서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김명철(옮긴이), 와이즈베리 2014

미야지마 히로시,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 배항섭(엮은이), 너머북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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