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암 환자에게 후원금 보낸 뒤 후회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박윤미 기자)*[고민의 발견]에서는 살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부분을 다룹니다. 때로는 핫이슈를, 때로는 평범한 일상에서 소재를 채택합니다. 마지막 단락에는 고민과 닮은 책의 한 페이지를 소개합니다.

한때 '희망의 아이콘'이었던 가수 최성봉 씨가 대중을 우롱한 '희대의 사기꾼'이자 '거짓말의 아이콘'으로 전락했다. 대중이 받은 실망과 충격이 워낙 큰 탓에 웬만한 이변 아니고서야 앞으로 최 씨는 예전처럼 대중 앞에서 희망을 노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성봉 씨는 2011년 한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보육원에서 지내다 그곳을 탈출한 다섯 살 때부터 껌을 팔며 혼자 생활했다는, 이른바 믿지 못할 '불우한 유년 시절'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반주 시작과 함께 꽤 근사한 노래 실력을 선보였는데, 안타까운 그의 지난 삶 때문이었을까. 그가 노래 부르는 동안 방청석과 심사위원석에서는 눈물 흘리는 이들 여럿이 카메라에 담겨 고스란히 TV 화면으로 송출됐다.

최 씨는 준우승까지 차지했을 정도로 실력 면에서도 화제가 됐다. 덕분에 그는 이 프로그램 출연 이후 인기와 부, 팬까지 전에 없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기와 거품은 쉽게 가라앉는다고, 최 씨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TV에서는 최 씨가 출연한 프로그램과 비슷한 포맷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여기저기서 경쟁하다시피 방영됐다. 그야말로 '오디션 스타 붐 시대'였다. 출연자들이 털어놓는 사연들도 각양각색이었다. 외모나 실력 면에서도 눈길을 끄는 이들이 계속 등장했다. 때문에 최 씨가 시청자들의 기억에서 조금씩 잊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가 최근 대장암 등 복합적인 병에 걸려 시한부라는 소식을 전해 대중의 눈시울을 또 한 번 적시는 일이 있었다. 그의 투병 소식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당시만큼 큰 화제가 됐다. 언론들은 즉각 그가 SNS에 올린 글을 받아 기사화했으며. 여론은 2011년과 같이 그를 동정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의 자작극이었다. 그는 암에 걸린 사실이 전혀 없으며, 그가 입고 있던 병원복은 코스튬 플레이용으로 인터넷 사이트에서 파는 것이었다. 암을 증명하겠다며 카메라 앞에 들이밀었던 진단서 또한 가짜였다.

그를 후원했던 사람들은 망연자실했다. 몇몇 후원자들은 투잡, 쓰리잡 해가며 그의 병원비를 후원했다고 하소연했다. 어떤 이는 자기 가족이 최 씨와 같은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났기에 남 일 같지 않아 생활 형편이 어려운 중에도 돈을 보냈다며 최 씨 거짓말에 분노하는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했다.

이후 최 씨는 한차례 자살 소동을 벌였지만, 결국엔 자신의 SNS에 사과문을 게시한 채 종적을 감췄다.

▲ (사진=최성봉 인스타그램) © 팝콘뉴스


최 씨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엄청난 거짓말을 했을까.

사실 짐작은 어렵지 않다.

2011년 최 씨가 출연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은 잠시나마 최 씨를 스타로 만들어주었을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최 씨를 대국민 사기꾼으로 만든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최 씨는 아마도 이 무대를 통해 대중의 심리를 학습한 모양이다. 사실 그렇지 않나. 무려 다섯 살 어린아이가 껌을 팔며 혼자 계단 등지에서 노숙하며 지냈다는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한단 말인가. 그의 말을 검증하거나 증명한 이 또한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 그의 말을 믿었고, 심지어 눈물 흘렸다.

그는 그렇게 자기가 한 말을 통해 사람들이 관심과 사랑을 주고, 인기와 돈까지 얻는 전에 없는 달콤한 경험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최 씨가 간과한 것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에 약한 것은 맞지만, 돌아설 땐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을.

한국 사회는 부모 없는 아이가 성장 과정에서 느꼈을 결핍과 외로움을 동정한다. 최 씨 역시 그러한 동정을 받은 사례다. 부모의 관심과 보살핌 아래 살아도 힘든 이 세상을 부모 도움 없이 살아내야 했던 최 씨가 안타깝고 딱해서.

그러나 부모 없는 아이는 더욱 반듯하게 자라야 한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바로 손가락질당한다. 면전에 대고 '어미 아비 없이 자라 저렇다'는 말을 하는 것도 우리나라 국민성 중 하나다.

최 씨는 2011년처럼 사람들의 동정 혹은 관심이 필요했던 것 같다. 소위 불우한 유년 시절 약발(?)이 다 한 까닭에 또 다른 이슈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시한부 인생'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통통한 볼살과 수북한 머리카락 등은 여느 말기 암 환자의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게다가 요즘처럼 정보망이 발달한 세상에 후원받은 돈으로 매일 밤 유흥주점에서 돈 쓰기를 물 쓰듯 했다니 그의 이런 사기극은 언제 발각돼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이번에 시한부 거짓말이 발각되면서 그가 2011년 무대에서 했던 이야기까지 모두 '거짓말'로 의심받고 있다. 사과문에 몸 아픈 것은 거짓말이지만 정신 아픈 것은 진짜라고 하소연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믿어줄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최 씨는 막노동해서라도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국민에게 보답했어야 했다. 그것이 그를 후원하고 응원한 사람들에게 보였어야 할 최소한의 도리였고, 보은이었다.

이번에 최 씨의 치료비를 후원한 이 중에는 "다시는 사람을 믿지 못할 것 같다", "이제는 진짜로 불쌍한 사람을 마주쳐도 돕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진짜 나쁜 사람은 사람을 기만하고 속인 최성봉 씨이지,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푼 당신이 아니다.

누군가 한 말의 진위를 따지고 진실을 파헤치는 일은 살아가는데 큰 의미가 없는 데다 에너지를 갉아먹는 일이다. 상대를 믿어주는 것이 내 속 편한 일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 속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상대를 속이지 않고 살면, 나를 속이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번에 최 씨의 일을 경험한 것은, 당신의 선함이 방향을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 결코 중단하게 만드는 방해물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신 인생의 방향을 바꿀 만큼 최 씨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최 씨는 사과문에 "백배사죄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지방에 있는 식당에서 일하며 후원금을 갚겠다"고 했다. 왜 굳이 '지방'이라는 단어를 썼는지 모르겠다. 노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인지, 사람들 속에서 사라지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번에 한 말 만큼은 꼭 지키기를 바란다.

누구든 살아가는 동안에 한 번쯤은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그러고는 자신만이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소중한 경험으로 새로운 사고방식과 강한 힘을 얻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야야 헤릅스트 '피해의식의 심리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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