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사는 '북한 시민' 김련희 씨 이야기 담은 영화 '그림자꽃'
영화 끝나고 2년 지났지만 여전히 달라진 것 없어

▲ 지난 25일 이수역 아트나인에서 만난 '그림자꽃'의 이승준 감독(왼쪽)과 김련희 씨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김련희 씨의 사연은 여러 차례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지난 2011년 중국의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 남한으로 건너온 사연, 이후 국정원에서부터 '집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으나 '신원특이자'로 분류돼 여권 발급이 막힌 사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간첩 자백'으로 감옥살이를 한 사연이 국내외 매체를 통해 소개됐다.

하지만, 김 씨의 사연과 삶은 여전히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김 씨의 목소리를 담은 매체에는 곧장 혐오발언을 섞은 불신의 말들이 달린다.

이승준 감독은 이 같은 '지우기'의 배경에 "보고싶어하는 것만 보려 하는" 습관이 있다고 짚는다.

이 감독은 "간첩 건과 관련한 판결문을 보면, 이전의 사정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안 믿는다. '어떻게 실수로 넘어와? 말이 돼?' 한다"라며 그 배경에 "'남북이 얼마나 다른데', '어떤 점이 다른데'에 주목하도록 계속 훈련받아온 탓이 있다"는 부연이다.

오는 27일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는 영화 '그림자꽃'의 이승준 감독과 '북한 시민' 김련희 씨를 25일 이수역 아트나인에서 만났다.

■ "닮은 점을 닮았다고 말하는 데서부터 '대화'할 수 있을 것"

Q. 영화의 시작이 궁금하다. 김련희 씨와 관련한 영화를 기획한 계기가 있다면?

이2015년 여름에 한겨레에서 기사가 나왔다. 1면이었는데, 헤드라인이 '나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었다. 사진에서 김련희 씨는 얼굴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남북문제에 관한 관심이 늘 있었다. 해외 영화제를 다녀보면, 다른 국가가 북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경우가 있다. 북한에 들어가서 촬영하는데, 내용이 '체제에 대한 조롱'으로 비슷했다.

남과 북에 관한 이야기를 '당사자 국가의 감독'이 한 번은 해야 하는데, 다큐멘터리를 위해 북한에 들어가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김련희 씨는 '내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북쪽 사람'이었다. 북에 관한 이야기를 같이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바로 수소문했고, 2~3일 뒤에 촬영을 시작했다.

Q. 영화 제작 과정에서 스태프와 함께 고민했던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이었는지, 또, 이것이 영화에 어떻게 반영이 됐는지 궁금하다.

이 영화가 해외 역시 타깃으로 하다 보니 '상황을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해외에서는 국가보안법으로 북한과 남한 사이 전화조차 어렵다는 것을 잘 모른다.

이걸 영화 속에서 이해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설명을 많이 하는 건 영화적으로 불필요했다. 균형을 맞추는 게 우선 중요했다.

또, 영화를 시작한 것이 2015년 8월인데, 그전에 발생했던 일들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김련희 씨의 상황은 배경에 깔고 가는 영화고 '설득'하려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정보는 줘야 하니까. 일어난 일 중 필요한 것을 골라서 전달해야 하는데, 무엇을 전달하고 어떤 영화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Q. '남북이 서로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되짚어보는 영화기도 하다. 김련희 씨는 평양 사람이다. '평양'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북한'을 이야기하는 일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도 있을 것 같다.

이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봐야 하는 게 있는데 봐야 하는 게 안 나오니까. 손수레 끌면서 지나가는 모습이 아니라 지하철을 타고, 휴대폰을 보는 모습이 나오니까.

물론, 그런 (낙후된) 현실은 있다. 평양에 사는 가족의 삶이 북한에서 보통의 삶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게 아니라, 비슷한 모습이 있으면 그걸 보고 '저런 게 비슷하구나' 생각하자는 거다.

자꾸 다른 걸 찾아내서 '우리가 더 낫다'를 발견하려 하는데, 그렇게 해서 언제 친구가 되고 언제 평화가 오겠나.

▲ 영화 '그림자꽃' 스틸(사진=ROSC) ©팝콘뉴스

Q.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2015년, 마무리는 2019년이었다. 2019년에 영화를 마무리한 이유가 따로 있을까?

이2017년 정상회담을 한 후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영화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엔딩은 김련희 씨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희망과 절망이 반복됐고 희망고문이 계속됐다. '언제까지 이 영화를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고, 2018년 말 정도에 한 번쯤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영을 하든 개봉하든 한 번쯤 '질문'을 던질 때가 됐다 싶었고, '결국 그대로인 현실'을 공유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Q. 촬영이 5년여 이어졌다. 영화의 기획이 바뀐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 기획이 있고, 계획이 있고 그런 건 아니었다. 잘 따라가는 게 중요했다.

김련희 씨의 활동과 노력이 한 줄기,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결을 한 줄기로 잡고, 두 가지 줄기에 부합하는 일상을 따라가고 담으려고 했다.

거기서 희망이 드러나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생기고.

저널리즘적으로 접근하는 다큐는 아니었고, 중요한 건 김련희 씨가 가진 '마음의 풍경'이었다.

■ "'서명' 아니라 '당사자가 정말 어떻게 살고 있는지' 봐야"

Q. 영화 제작이 끝난 것이 2019년이다. 2년이 지났다. 바뀐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세 달 전에 간암 진단받았다. 수술한 지는 두 달이 됐다. 마음이 더 급해진다. 어머니는 내가 남한에 온 지 8년이 지나서 실명했다. 3년 전이다. '이제 돌아간다고 해도 어머니가 내 얼굴을 볼 수 없겠구나' 생각하면 정말 슬픈 마음이다.

여기에 목소리도 못 듣게 한다면 죄인으로 살 거다. 지금은 건강을 돌보고 이런 것보다 이 땅에 묻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크다. 죽어도 가족 옆에만 가고 싶다.

Q. 여전히 당국은 김련희 씨를 북송할 수 없다는 목소리를 견지하고 있다.

김북한에 가는 걸 이해할 수는 없어도 '가고 싶은데 가야지' 생각은 왜 못해볼까 싶다. 정부는 "반국가단체에 '우리국민'을 보낼 수 없다"고 "너는 가면 죽을 거니까 안 보내주겠다"고 하는데, 나는 가족 옆에 가고 싶은 거다. 그게 내 선택이다. 지금이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니까.

이정부의 반응은 두 가지다. 통일부 대변인이 하는 '전향서'에 본인이 서명을 했다는 이야기, 다른 하나는 김련희 씨를 돌려보내고 나서 다른 탈북자들이 돌아가려고 하면 어쩔 거냐는 이야기다.

'전향서'는 반강제적으로 작성됐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있다. 하지만, 여전히 '서명을 했으니 못 돌려보낸다'는 이야기가 반복되고, 누구도 이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있다.

서명이나 논쟁이 아니라, 그 이면에 '당사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지를, 직접 들어가서 봐야 하는데, 형식적으로 '국민이 됐으니까 못 보내'만 반복하는 상황이다.

Q. 누가 영화를 봤으면 하는지, 또 영화로부터 어떤 논의들이 시작됐으면 하는지 궁금하다.

김 정부와 통일부가 이 영화를 봤으면 한다. 탈북자 보호법이 지금 북한이 남한에 오면 못 돌아가게 돼 있다. 하지만, 나는 국정원 조사단계에서부터 '아니다', '잘못왔다'고 말하지 않았나.

남한으로 건너올 의도가 아니라고 밝혔다면 첫 단계에서 가려줘야 한다. 이런 분들이 탈북자 중에서 또 있으면 희생자가 또 발생하는 거다.이런 상황을 첫 단추부터 만들어 놓고도, 누구도 책임을 안 지고 있다.

또, '빨갱이' 등의 악플을 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상 내려놓고 '한 인간이구나', '한 엄마구나' 한 번만 해줬으면 한다.

이젊은 세대가 많이 봤으면 한다.20~30대, 10대도 좋다.

젊은 세대가 영화를 보고 '비슷한데' 생각하고, 그들끼리 의논하고 토론하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

10대 때 반공교육 등 전쟁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받은 아버지, 어머니 세대는 '우리 국력을 생각해야지' 등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수 있을 텐데, 이건 사실 '다른 영역'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서로를 인정할 수 있을까', '가까워질 수 있을까'를 젊은 세대들끼리 이야기하면 신선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아, 김련희 씨의 '국정원 단체관람' 제안도 함께 전하고 싶다.많이 변했으니까. 과거에 대한 사과도 하고 있고. 단체관람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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