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달항아리

(팝콘뉴스=정영주 기자)*[문화유산, 그리Go]는 우리 문화유산에서 유의미한 가치를 발굴하여 현재 우리 삶에 들여오는 과정을 그려보려 합니다. 일상의 틈새 낯설게 보기를 통해 문화유산의 새로운 시각을 전합니다.

▲ 국립중앙박물관의 '분청사기·백자실' 달항아리 공간(사진=국립중앙박물관) © 팝콘뉴스


각색된 달항아리의 부활


1935년 한국을 방문한 영국 도예가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가 달항아리를 가져가며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라고 했다. 그 달항아리는 현재 브리티시 박물관의 한국관에 전시되었다. 영국 배우 주디 덴치(Judi Dench)는 '온종일 보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아름답다. 보고 있으면 세상의 근심·걱정이 사라진다'며 브리티시 박물관에서 달항아리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도예가 권대섭은 "단순하고 소박하다는 얘기로는 달항아리를 설명할 수 없다"며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보름달처럼 넉넉하면서 소박하고 은근한 아름다움을 주는데, 전승과 전통의 힘이 현대 미학의 한 맥락과 어울려 큰 멋을 낸다"고 말했다. 신철은 도예가는 "달항아리는 감상자의 마음을 풀어주는 어머니의 지극한 성품이 서려 있다"고 했다.

김환기 화백은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 해서 다 같지 않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싸늘한 사기지만 살결에는 따사로운 온도가 있다. …내가 아름다움에 눈뜬 것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되었다"라며 "목화처럼 다사로운 백자, 두부살같이 보드라운 백자, 쑥떡 같은 구수한 백자"라고 했다. 희고 둥근 항아리 그림을 수도 없이 그렸고 술이 한잔 들어가면 품에 꽉 차는 백자 항아리를 껴안고 "달이 뜬다, 달이 떠"라고 흥얼거리며 춤을 추었다는 일화도 전했다.

최순우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백자 달항아리' 편에서 "폭넓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는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썼다. 달항아리는 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걸까.


백자대호(白磁大壺)에서 '우리말 이름' 달항아리로


달항아리의 이름이 바뀐 지는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 개관 특별전에서부터다. 백자대호가 공식 명칭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원호(圓壺)라고도 불렸다. 당시 '백자 달항아리' 전시회의 도록에는 달항아리에 대한 재해석된 아름다움과 멋을 두고 '세계 도자사상 이처럼 거대한 둥근 항아리가 제작된 예는 조선백자 달항아리 이외에 찾아보기 힘들다'고 예찬했다.

2011년에서야 문화재청은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백자대호 7점의 명칭을 '백자 달항아리'로 바꿨다. 문화재의 한자식 이름을 순우리말 한글로 개선하는 작업을 했던 시기다. 달항아리는 지름이 40cm 이상의 백자 도자기 중에 윗부분과 바닥이 좁고 배가 불룩해 둥근 달 모양과 같다. 전통 방식의 달항아리는 크기가 커서 한 번에 제작하지 못한다. 위·아래 각각 빚어서는 반건조 상태에서 붙인다. 깎아 형태를 완성하면 좌우 비대칭이 생긴다.

그래서 달항아리의 이지러진 모양 그 자체를 아름다움으로 본다. 불완전함을 멋스러움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의 세계를 달항아리가 열어 준 것일 테다. 게다가 백자대호보다 달항아리의 바뀐 이름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한층 더한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1725~1751년 사이 경기도 광주 금사리 가마에서 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구체적인 용도는 명확하지 않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까지 달항아리의 전성기로 본다. 이 시기 백자는 푸른 흰색보다는 유백(乳白)색, 설백(雪白)색을 띠며 둥근 원형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고 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든 숙종~영·정조 대의 자신감과 여유가 느껴진다고 어느 박물관 학예사는 의견을 덧붙였다. 19세기에 이르면 목이 더욱 높이 세워지고 몸체가 길어지고 청백색을 띠게 된다. 고려청자와는 달리 조선 자기는 실용성과 내구성이 중요한 기준이었다. 고려청자의 장식과 기교가 사라진다. 점점 무늬 없고 담박한 백자 항아리는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많이 만들어졌다.


'어떤 관점으로 어떤 가치로 볼 것인가' 담박하고도 매혹적인


달항아리는 주목받고 있다. 애호가들은 소장하기 위해 치르는 높은 가격으로 달항아리의 가치를 대변한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대는 거대 달항아리였다.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계기였다. 올림픽 정신의 가치인 성화(聖火)를 담는 우리 전통 문화재 달항아리에는 시대정신의 재해석된 의미가 부여되었다. 몸체가 커서 한 번에 작업할 수 없어 상·하를 따로 작업해 붙인다는 어쩌면 불편 한 단점을 '화합의 상징'으로 부여했다.

모 블로거는 대형백자처럼 큰 도자기는 만들기 쉬워 대충 만든다고 한다. 다른 도자기는 매우 섬세하게 만들었지만 달항아리만은 매우 거칠고 조악한 제품이라며 평가했다. 그에 반론의 댓글들을 눈여겨볼 만하다.

어느 네티즌은 "뭘 이리 어렵게 보는지. 미니멀리즘, 빈티지 off-white, 무심한 듯 비대칭,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한 멋), 거기다 무광, 전통의 재해석. 요즘 사람들이 열광하는 요소들은 죄다 가진 게 달항아리. 이 정도면 뜨는 게 필연이지 언론이 띄운다고 떠지나? 도자기로만 보지 말고 대중정서와 예술 트렌드 전반적으로 보시길. 사람들은 그걸 도자기로 보는 게 아니라 오브제로 좋으면 그만인 거요. 예를 들자면 아프리카 토템 마스크 진열해 놓은 거와 비슷한 거요, 나무판 무심한 듯 삐뚤빼뚤 조각돼야지 그라인더로 반들반들 완벽한 대칭이면 맛이 사나?"며 그야말로 반박하기 힘든 반론을 제기했다.

또한 모 도예가는 "(항아리)도자기가 만들면 쉬울 거 같지만 큰 도자기일수록 무척 힘들고 노하우가 없으면 만들 수 없습니다. 아무리 (달항아리를) 모방한다 해도 작가마다 모양, 선 형태나 색감 전부 다르지요"라며 "보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와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이 달항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달항아리는 쓰이는 용도가 무엇인지 표현하는 방법과 설명도 다 작가마다 다르다며 스스로 만족하고 자신에게 와 닿는 가치와 의미를 다시 붙여 소중하게 바라보고 느낀다면 달항아리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문화유산의 가치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이 이전과 사뭇 달라졌다는 걸 엿볼 수 있다.

주디 덴치의 말처럼 달항아리는 어쩐지 온종일 보고 있어도 좋다. 백자대호에서 달항아리로 바뀐 이름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문화유산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이냐. 하나의 의견으로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모 도예가의 말처럼 자신에게 와닿는 특별한 의미와 공감이면 충분하다.

2019년에는 글로벌 아이돌 그룹 멤버가 달항아리를 구매해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게재했다. 이후 달항아리는 더 유명세를 치렀다. 홈쇼핑에 판매한 달항아리는 가정의 평화를 바라는 '또 다른 의미의 달마도'가 되어 불티나게 판매됐다.

대중에게 우리의 전통 문화유산이 스며든다. 달항아리의 자체 고유한 아름다움과 미적 가치가 상업성이나 기복(奇福)의 상징물로 왜곡되었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대중에게 어떤 의미로든 곁에, 삶과 함께하는 전통 문화재라면 그 '문화유산'의 의미를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문화유산의 생명력의 의미를 알고 싶거든, 달항아리를 보라. 그렇게 현재 우리 삶에 달항아리는 '달멍'의 시간을 낳았다. 그러니까 달항아리다.

참조.

국립박물관 홈페이지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절제미의 승화, 순백의 조선백자 달항아리'

'RM도 홀딱 반한 달항아리...조선백자실에 ‘달멍’하러 갑니다', 강혜란, 중앙일보, 2021.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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