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적당히 손뗄 수 있는 용기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한경화 편집위원·천안동성중학교 수석교사) 오랜만에 후배를 만났다. 직장에 다니며 초등학생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삶이 녹록지 않은지 후배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대면 모임에서도 만날 때면 많이 피곤한 모습이었고, 이야기 도중 아이들 키우기는 일이 쉽지 않다고 푸념하곤 했다.

후배는 작은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육아휴직을 하고 오롯이 아이들 뒷바라지에 힘썼다. 아침이면 큰아이와 처음 학교에 입학해서 낯설고 힘들어하는 작은아이를 양손에 잡고 함께 등교했다. 하교 시간이면 아이들이 방과 후 수업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다 가방을 받아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엄마와 함께 생활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돌아온 뒤 엄마들끼리 모여 차를 한잔 마시며 수다를 떨고는 하는 다른 엄마들과는 달리, 후배는 집으로 돌아와 아침 설거지며 청소나 빨래 등을 끝내고 매일 두 아이를 위한 간식을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할 일들을 준비하며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결혼 후 직장을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던 후배는 늘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겼기 때문에 여느 가정주부처럼 아이들을 위해 간식을 만들거나 맛있는 요리를 여유 있게 만들지 못했다. 보통은 밀키트나 포장 음식으로 요리를 하거나, 몹시 피곤하거나 아픈 날에는 외식하며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늘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육아휴직을 하기로 결심한 날, 휴직 기간은 아이들에게 매일 간식과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 쿠키, 빵, 샌드위치, 토스트, 닭강정 등도 직접 만들고, 영양과 건강을 고려한 좋은 식재료를 구매해 다양한 요리를 하며 가족들을 위한 시간으로만 몇 달을 보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면 아이들과 학교 숙제며 학습지 등을 함께 하고, 가방에 준비물을 챙겨주고 책도 같이 읽었다. 아이들과 깔깔대며 애니메이션도 함께 보고 게임도 같이했다. 후배가 들려준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단 한 번의 육아휴직 없이 두 아이를 키우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탓에 나는 후배 가족의 이상적이고 행복한 일상이 참 부러웠다.

'육아휴직 하기를 정말 잘했다. 가족이, 특히 아이들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너(후배)도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라며 후배의 일상 소개 이야기에 박수를 보내며 흥분했다. 그런데 후배는 '결코 좋지만은 않다'라는 말로 나의 부러움과 흥분된 기분에 찬물을 부어 식혔다.

그러고 보니 후배의 얼굴이 어둡고 많이 지쳐 보였다. 황금 같은 휴직 기간일 텐데 왜냐고 묻는 내게 후배가 들려준 여러 이야기 중 가장 마음이 아팠던 말은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갈등과 대립,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꾸중과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속 화가 점점 늘어나더라는 말이었다.

처음엔 아이들도 엄마와 함께 등교하고 하교하는 안정된 시간을 너무 좋아했다. 하교 후 엄마가 만들어주는 간식이며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엄마와 함께 보내는 여유로운 저녁 시간도 좋아했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자 아이들이 엄마가 만들어 준 간식 대신 밖에서 파는 간식을 먹고 싶다고 했다. 좋은 식재료로 만들어주는 엄마표 음식 대신 예전에 먹던 밀키트나 외식이 더 맛있다고 했다.

엄마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고 여과 없이 툭툭 내뱉는 아이들의 말에 엄마는 상처받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엄마가 해주는 간식이나 음식이 다양하지 않고 설탕이나 조미료로 맛을 내지 않다 보니 엄마표 음식도 얼마간 먹으니 물렸을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간간이 간식을 사서 먹이기도 했고, 음식 또한 밀키트나 외식을 섞어가며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과제와 공부를 시키며 아이들과 사소한 실랑이를 벌이던 중 '엄마 잔소리 듣기 싫어. 엄마 다시 학교 나가'라고 외친 아이들의 짜증 섞인 폭탄 발언을 듣게 되었다. 후배는 정신이 아뜩해지고 아찔했던 그 순간을 '고개를 수없이 갸우뚱했다'고 기억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게 했을까를 돌아보았다.

후배는 육아휴직과 자신이 선택한 삶의 모습에 대해 후회했다. 아이들을 위해서 한 큰 결심의 육아휴직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오롯이 보내는 시간 속에서 엄마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아이들이 생활해 줄 것을 은연중에 강요했고, 아이들끼리 다투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즉시 개입해 판단하고 중재하려고 했다. 엄마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아이들의 언행이 따라주지 않을 때는 끊임없이 훈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후배는 아이들과의 관계가 점점 더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 엄마와 아이들에게 함께하는 시간은 점점 더 힘들다고 느껴졌고, 아이들에게 엄마는 잔소리쟁이에 억압하고 강요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자기 일과 삶을 잠시 내려놓고 야심 차게 준비했던 육아휴직의 시간은 더는 즐겁고 신나지 않았고, 아이들과의 사이가 더 멀어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두 아이를 키운 경험으로 볼 때, 아이들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기가 가장 힘들고 손이 많이 갔던 것 같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아이들의 자아 인식이 강해지고 자신만의 굳건한 세계를 구축하려 하면서 생기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감정 간격이 커지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완전한 애착을 형성하고 의존하며 살다가, 성장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살아갈 개인이 되는 과정(이 과정을 '개별화'라고 한다)을 거치게 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반항하는 것은 독립된 개체로 성장하기 위한 개별화의 한 현상이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아이의 자생력과 독립심이 달라진다.

부모는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적당한 때 손을 떼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는 항상 불안해하며 과잉보호하려 한다. 아이가 실수하거나 실패를 경험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부모는 아이를 대신해서 많은 것을 해결해주려 한다. 그래서 자녀에게 끝까지 손을 떼지 않고 끊임없이 잔소리하게 된다.

지혜로운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현명하고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내 자녀가 개별화의 시기를 맞이했다면 아이에게서 조금씩 손을 떼는 연습을 해보자. 높아져 가는 가을하늘 만큼이나 '육아휴직에 지혜가 필요한 이유'에 관해 깊이 사유하는 육아휴직 중인 모든 부모님을 응원한다.

키워드

#한경화 칼럼
저작권자 © 팝콘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