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사회복지사 가까운 '그' 당사자부터 시작해야

▲ 11일 관악 정다운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만난 '도약'과 관악 의료사협 활동가. (왼쪽부터) 김치환 사회복지사, 강자영 사회복지사, 조수호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활동가, 김명철 관악 의료사협 이사©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지난 3월 장애인 거주시설 '도란도란'이 문을 닫았다. 거주민 약 스무 명이 다른 시설로의 전원 없이 탈시설에 성공했고, 이중 열네 명의 장애인 당사자가 관악구에 자리를 잡았다.

도란도란에서 장애인 당사자 탈시설을 함께 한 강자영, 김치환 사회복지사는 그러나 탈시설 '이후'부터 진짜 탈시설이 시작된다고 입을 모은다.

탈시설협동조합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두 사회복지사를 지난 11일 만났다. (이하 강자영 사회복지사는 '강', 김치환 사회복지사는 '김')

■ "도란도란에서 나가도 '단절' 없을 거라고 약속했어"

'도약'은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의 지역사회에서의 안정된 정착 및 인권옹호 활동을 통해 차별없는 지역사회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협동조합이다. 이름은'도란도란의 약속'의 준말. 도란도란 거주 장애인 당사자에게 탈시설을 소개하면서 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목표를 담았다.

강"'아저씨들(도란도란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한테 '도란도란'이 익숙한 단어예요. 인연이 끈끈하게, 가족처럼 연결돼 있어요. 도란도란에서 시설에서 나가도 끝나는 사이가 아니다, 연결되는 거다, 지역사회에 살 때도 언제든 만날 수 있고, 도움 요청하는 이웃이 되는 거다, 더 나은 단계로 올라가는 거다(약속했어요)."

약속처럼, 두 사회복지사는 당사자와 함께 발품을 팔아 대부분 관악구에 집을 구했다. 현재 열네 가구가 관악구에서 서로 이웃해 산다.

심심할 때, 밥 친구가 필요할 때뿐 아니라 도어록이 고장 났을 때 등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서로의 집은 '최소한의 안전망'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안전망'은 지역사회에도 마련되는 중이다.

아저씨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직된 '도약'에는 현재 탈시설 당사자 두 명과 보호자 한 명, 두 사회복지사 등 다섯 명이 함께하고 있다.

여기 관악 정다운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이하 관악 의료사협)이 손을 더한다. 도약 준비위가 관악 의료사협이 조합원으로 활동하며 관계맺고 있는 까닭이다.

김 "(지역사회와) 연결하던 중에, 관악 의료사협에서 두 분 정도 물리치료(몸살림 활동)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먼저 왔어요. 탈시설 시 가장 염려되는 대목이 건강이거든요. 건강관리에 각별하게 신경쓰던 차에 연락이 와서 '건강을 제대로 챙겨보자' 해서 시작한 거예요. 또, 단순히 건강을 챙기는 걸 넘어서 사람을 연결하는 활동이니까요."

다만, 도약 준비위는 '아저씨들'이 단순히 '안전망' 속으로 들어가는 역할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아저씨들'은 관악 의료사협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다. 의료사협에서 받는 물리치료 등 일부는 '아저씨들'이 참여하고 있는 '시간은행' 사업의 일환이다.'시간은행'은 마을 활동을 다른 마을 활동으로 지불하는 지역 공동체 사업이다.

'도약'이 '협동조합'으로 결정된 것 역시 '동등한 위치'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조직을 고민한 결과다.

강"복지관, 공공일자리 사업 등과 연결을 시작했다가, 시간은행 사업을 알게 됐어요. 지역사회에서 서비스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줄 수도 있구나, 생각했고, '아저씨들'이 참여 중이에요. '우리끼리'라는 건 (탈시설에서) 없어요. 그 안에 고립돼서, 벗어나서는 살 수 없으면 그냥 '시설'이라고 생각해요.

▲ 11일 관악 의료사협에서 진행된 시간은행 연계 몸살림 활동 중 조수호 활동가가 채민식 씨의 건강을 확인하고 있다. 주 1회 총 3회 진행되는 활동이다. 이날 채민식 씨와 조수호 활동가 등은 물리치료를 마치고 식사를 위해 함께 나갔다 © 팝콘뉴스

■ "체계 있지만, 작동 안 해"

이같은 '이후'의 연결을 위해 '이전'의 연결이 필수적이라는 데도 입을 모았다.

탈시설이 본격화한 지난해 중반부터 두 사회복지사는 꾸준히 탈시설을 위해 지역사회와 연결해 왔다. 지역사회에 준비된 제도를 살피고, 필요한 서비스를 신청하는 동안 알게 된 것은 '이미 준비된 촘촘한 체계'와 동시에 그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현재 해당 시설 소속 사회복지사가 주민센터에 당사자의 탈시설 소식을 알리면, 활동지원사, 공공임대주택, 주민센터 담당자, 구청 담당자 등이 배정되는 구조다.

서울시의 경우, 서울시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인근 장애인복지관,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탈시설 준비 과정을 위해 구축된 네트워크도 연결할 수 있다. 다만, '조율할 수 있는 단위'가 없어 사각지대투성이라는 설명이다.

강"연결된 주거 코디네이터는 강남구에 위치한 복지관 소속이에요. 관악구가 아니라요. 서울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서는 3개월이나 6개월에 한 번씩 모니터링을 나와요. 탈시설 준비하고 실행하는 일 년 반 동안 담당 주무관은 세 번 바뀌었어요. 그럼, 우리는 또 똑같은 걸 설명하고요."

지원주택사업자 충현복지관의 역할 역시, 아직 충분치 않다는 설명이다.

김 "탈시설 당사자 자립지원을 위한 지원주택사업자는 특별히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해요. 그간의 격리, 수용, 통제, 사생활 침해의 시간을 회복하는 과정이 자립지원의 핵심이니까요. 그런데, 지금까지 충현복지관 지원주택사업을 지켜보면, 아직 당사자들 가까이에 거점공간 마련도 안 되고 있고, 실무자에게 차량도 지원되고 있지 않거든요. 공휴일에는 지원체계가 작동하지 않고요. 지원서비스가 당사자 중심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답답합니다."

이 같은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도란도란 시설 폐지 전, 사업전환을 통해 공간을 거점 공간으로 사용하고, 지원주택 코디네이터 등으로의 고용승계 필요를 주장했지만, 모두 실현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단순 고용승계 역시, 도란도란의 운영법인인 대한성공회 사회복지재단이 '대부분이 고용승계를 원하지 않는다'며 지자체에 고용승계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을 지자체가 그대로 수용하면서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냈지만, 현재까지는 두 사회복지사의 실업급여로 활동비가 충당되고 있다.

강 "(지자체가)법인이 사업전환을 안 한다고 하니까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 거예요. 법인이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해야 하는데 (그런게 없었고)"

지난 8월 당국이 발표한 '탈시설 중장기 로드맵'에서도 '시설전환' 여부는 시설의 요청에 달려있다. 고용승계 역시, '코디네이터로 전환' 등을 별도로 명기하지 않고, '직업훈련' 등만 적고 있다.

■ "'경증', '중증'이 아니라 '그 사람'에서 시작해야"

무엇보다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이 가장 큰 '구멍'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도란도란 탈시설 당사자 대부분은 복지부로부터 120시간의 활동지원 시간을 받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탈시설 당사자에게 120시간을 추가로 제공하지만, 탈시설 후 2년간에 그친다. 한 달 120시간이면 하루에 4시간 가량이다.

김치환 사회복지사는 한 달에 반드시 240시간이 보장돼야 한다고 짚었다. 하루 여덟 시간, 공휴일 근무를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하루 여섯 시간, "하루 두 끼"를 위한 시간이다.

그나마 120시간 역시, 사실상 시민단체 등 전문가의 조력 없이는 지원받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활동 시간을 정하는 '종합심사표'가 '행위를 아예 할 수 없으면'을 기준으로 정하고 있는 까닭이다.

도란도란 역시 장애와인권발바닥 등과 머리를 맞댄 다음에야 '120시간'을 받아낼 수 있었다.

강"(배정 시간을 정하는 '종합심사표'가)숟가락을 들 수 있냐, 씹을 수 있냐를 묻거든요. 이분들은 숟가락을 들 수 있어도 밥 먹기를 거부한다든지 해서 서비스가 필요한 건데요. 당사자 앞에서 '도전행동(파괴행동 등의 조력이 필요한 행동)'에 대해서 말해야 하기도 하고요. 활동지원은 당연히 나오고, 이게 얼마나 필요한지 봐야 하는데, 항목 자체가 '어떻게 하면 이 사람에게 시간을 적게 줄까'하는 식이에요."

김"공단 담당자 한 사람이 평가하다 보니까 나오는 분들에 따라 천차만별 결과가 바뀌기도 하고요."

이 같은 탈시설 전후의 단절, 서비스 간 단절, 활동지원서비스 시간 부족 등의 문제는 '출발점'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도약 준비위는 다시 입을 모은다.

'당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짚어낼 수 있는 질문을 연구할 때라는 지적이다.

김 "매년 탈시설 욕구조사를 하고 있는데, '탈시설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는 것으로 바꿔야죠. (활동지원서비스 시간도) 종합심사표 자체를 없애고 '필요한 서비스'를 묻는 것으로 바꿔야 하고요. 활동지원 서비스 목표는 '당사자의 완전한 사회참여'니까요.

'최중증장애인'은 아직 지역사회에 나서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중증일수록 탈시설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고 선을 그었다.

김 "최중증일수록, 자기 의사 표현을 언어적으로 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수록 우선해서 '지역사회 자립기반 욕구조사(지역사회에 살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지 당사자에게 질문하는 것)'에 나서야 합니다. 출발 자체를 전환해야, 시간도 줄고 예산도 집중될 거예요. 최중증 장애인에게 지역사회 지원이 적합해진다면, 경증 장애인분들은 되려 언제든 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되겠죠."

강"'최중증이 아니라 가능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도 하세요. 그런데 우리는 '아저씨들'에게 맞춰서 (탈시설을 준비)한 거예요. 와상인 분들이 있었다면, 더 많은 연결이나 활동, 다른 활동을 꾸렸을 거예요. '그' 당사자 입장에서 (가까운) 누구든 '같이 지역사회에 나가서 사는 법'을 고민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잘 풀어낼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한편, '도약'은 오는 11월까지 협동조합을 꾸리고, 시간을 두고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을 준비할 예정이다. 오는 10월부터는 코로나19로 미뤄뒀던 '도란도란 건강 수다회'를 다시 한다.

'아저씨들'의 요구로 개인별 한 달에 한 번 꼴로 진행 중인 여행은 이달에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아저씨' 담당 활동지원사와 장애인 인권, 인식 개선 교육도 진행할 예정이다. 담당자와 커리큘럼을 논의 중이다.

강"불편도 겪어봐야 (해소 방법을) 아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어려워하셨는데, 이제 할 수 있는 게 점점 늘어나요. 마스크 쓰는 것도 처음에는 어려워하시다가 지금은 하시고요. 시설 안에서는 아무도 날짜를 기억하지 않는데, 이제 '토요일 열 시에 여기서 봬요' 하면 오세요. 도란도란에 살 때는 사는 곳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이제 '신림에 살아' 하시고요.

김"'금연 장소'도 어려워하셨는데, 한 번 과태료 10만 원을 물고 나서는, 금연 구역 표지가 보이면 '안 돼, 돈 나가' 하시고 절대 안 피세요."

강"활동을 계속하다 보니, 당사자들에게 사례 발표를 부탁한다든지, 도약에 탈시설에 뭐가 필요한지 묻는다든지 하는 경우도 생기고요. 당사자들도 '알리고 싶다'고 흔쾌히 참여하시고요.

김"'실례(실제 예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탈시설을 해보지 않고, 어떻게 탈시설을 이야기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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