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우리는 안전하다' 상상적...'다른 우리' 논의할 자리 필요해

▲ 지난 30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포럼에 참석한 권김현영 집행위원이 발언하고 있다(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유튜브)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지난해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여성 A씨가 커밍아웃 후 학내의 반대에 부딪혀 입학을 포기했다.

지난 2018년 예멘 난민 약 400여 명에 대해 한국 당국이 인도적 체류 허가 및 난민 인정에 대한 심사에 나서자, 난민 반대 측에서는 반대의 근거로 예멘 남성들에 의한 '성범죄 공포'를 들었다.

이때 입학 거부 운동, 난민 반대 주장의 배경에서는 '안전한 우리'를 위해 생물학적 남성, '외부자'를 배제하겠다는 시각을 찾아볼 수 있다. 스스로를 '랟펨', 'TERF' 등 '래디컬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이들의 목소리다.

동시에,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시위, 혜화역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 낙태죄 폐지 시위 등 최근 굵직한 여성운동 현장의 주요 기획자, 스피커로 나서는 이들 역시 자신을 '래디컬 페미니스트'로 소개한다.

그렇다면, 래디컬 페미니스트는 '배제적 페미니즘'을 지향하면서 현장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들의 집합일까. 지난 30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 포럼에 모인 이들은 국내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해 "내부에서도 동일한 정의가 없고, 정의를 내기 위한 토론도 다소 부진한 상태"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30일 페미니즘 안에서 '래디컬 페미니즘'을 다시 읽는 자리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 포럼 '래디컬을 다시 질문한다'를 통해 마련됐다.

이날 포럼에는 권김현형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 이가현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전의령 전북대 인류학과 교수, 루인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활동가 등이 참가해 발제 및 토론을 진행했다.

■ "'생물학적 여성'도 '한국 여성'도 경험은 하나 아냐"

이날 포럼에서는 래디컬 페미니즘 일각의 '동일한 우리 안에서의 안전확보'가 '상상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루인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활동가는 "('여성 공동체' 안에서도)내적 구성원은 매우 다양한 경험 축과 생애 축을 가진 사람들"이라며"(배제적 래디컬 페미니즘이)'여성으로 태어난 여성'이라는 매우 상상적인 가치 속에서 내부의 목소리를 균질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숙명여대 입학거부 운동 이후, 한 트랜스젠더 남성 숙명여대 구성원은 SNS를 통해 A씨에 대한 미안함과 학교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담은 게시물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이화여대의 성소수자 인권모임의 레즈비언 문화제 벽보는 종종 훼손됐다.

성범죄 우려를 이유로 한 난민 반대 주장에서도 문제를 외부화해, 내부의 문제를 가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의령 전북대학교 교수는 "지금 우리에게 있는 당면한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문제로 '인종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서구의 무슬림과의 관계에서 작동하는 인종주의, 교육주의 측면을 비판 없이 바로 차용하고 있다"며 "'공정질서'를 (원칙으로) 두고 이를 어지럽히는 미꾸라지, 기생충, 가해자가 있다는 것인데, 이 같은 피해자 정치로 신자유주의를 재생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동일하지 않더라도 결집하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루인 활동가는 "퀴어계가 장애계와 화장실 이슈에서 손을 잡았던 것은 정체성이 동일해서가 아니라, 중첩하는 의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페미니즘 안에서 '다른 우리' 나누는 소통 필요해

'여성은 누구인가', '여성은 동일한가'에 대한 질문 없이 '생물학적 여성'을 '우리'로 좁히는 태도는 페미니즘 안에서의 소통 역시 막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주희 덕성여자대학교 교수는 "'선생님 같은 교차페미니스트'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라고 답변한다"며 "의견이 같다는 것을 전제하고 토론 없이 공간만 마련해 '그랬구나, 그것이 문제구나' 하는 것은 이미 조건이 정해진 대화를 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서로 정보값이 달라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부문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가현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역시 "불꽃페미액션은 내부에서 계속 서로 평등하고 안전하게 대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안전한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 계속 논의한다. 생물학적 여성으로 구성된 모임에서는 이 같은 반성이나 성찰의 지점이 부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토론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가현 활동가는 "운동이나 학계에 있지 않은 여성들은 '래디컬'로 스스로 정체화하는 것 같고, 이들은 보통 트위터에 몰려있다. (학계) 선생님들은 다 페이스북에 계시고. 저 같은 사람들은 둘 사이에서 통역자의 역할을 맡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한계가 있다"며 "(이번 기회로) 선생님들과 손잡고 트위터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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