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불교기반 문화·예술 장애인 모임 '보리수 아래' 설립

(팝콘뉴스=박윤미 기자)* 울타리[fence]: 모든 사람이 가족과 이웃이 되는 이야기들.

대부분의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부모와 가정, 학교 같은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간혹 울타리 없는, 누구보다 울타리가 필요한, 울타리 밖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스스로 울타리를 걷어찬 이들도 있습니다. 코너 [울타리]는 그런 이웃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독자들의 관심이 그들에게 필요한 울타리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설한 코너입니다. 기사를 읽는 동안만큼은 마음의 울타리를 활짝 열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최명숙 시인. 조계사에 핀 연꽃들 사이에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석가모니는 '보리수 아래'에서 도(道)를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하여 많은 불교 국가들과 전 세계 불자들은 보리수를 매우 신성한 나무로 여긴다.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뇌성마비 불자 최명숙 시인에게도 '보리수 아래'는 깨달음이었을까. 2005년 최명숙 시인은 '보리수 아래'라는 이름의 '불교를 기반으로 하는 장애인 모임' 하나를 만들었다. 벌써 16년 차가 됐다.

'보리수 아래'라는 모임의 이름에서 적당한 감성과 적당한 종교색이 느껴진다. 불교와 문화·예술의 단단한 공존을 바랐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보리수 아래' 회원 모두가 불자인 것은 아니다. '불교'를 주춧돌 삼아 기둥과 들보를 올리고 기와를 쌓은 것은 맞지만 담장도 대문도 없다. 원하는 사람 누구나 아무 때고 입장할 수 있다.

실제 '보리수 아래'에는 기독교, 가톨릭 신자들도 있다. 부처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은 결이 같다. 편견 없이 한자리에 모인 것을 보면 '보리수 아래' 회원들은 그것을 잘 아는 현인들이 분명하다. 사실 이들은 장애라는 공통점으로 서로를 껴안은 처지이기도 하고, 문화예술로 지음(知音)이 된 사이이기도 하다. 그러니 종교의 다름은 특이점도, 논란거리도 될 수 없다.

▲ 기자와 찻집에서 인터뷰 중인 최명숙 시인(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보리수 아래' 회원은 150여 명. 왕성하게 활동하는 회원은 30~40명이다. 반면 네이버 카페 가입자 수는 400여 명이나 된다. 이는 문화·예술에 남다른 관심과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외출이 자유롭지 않거나 용기 내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최명숙 시인은 "모임 초기에는 회원이 한두 명이었다. 아는 사람들이었다.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회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시인, 작가, 화가, 사진작가, 피아니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재능 있는 회원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보리수 아래'는 나름 열정적인 모임이다. 재능이 발각(?)되면 회원 누구든 뭐라도 해야 한다. 시집을 내거나 음악회를 열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이런 열정 덕에 '보리수 아래'는 지난 16년 많은 일을 했다. 최 시인은 우선 회원들이 목말라하는 창작활동과 그것을 세상에 알릴 기회 마련을 위해 8할의 힘을 쏟았다. 회사원 시절 밤이 오면 전시나 출간을 기획하고, 구상이 끝나면 회원들과 최 시인의 재적 사찰인 조계사 등에 도움을 청했다. 모두가 호의를 가지고 힘을 보탰다. 덕분에 기대보다 넓고 환한 곳에서 회원들의 작품을 펼쳤다.

'보리수 아래' 문인 회원들의 자랑인 '보리수 아래 감성 시집'은 여섯 권이나 세상의 빛을 봤다. 이 가운데 제3집 홍승현 시인의 '등대'는 2021년 세종도서 문학부문(구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되기까지 했다. 시집을 낸 회원들은 모두 예술인으로 등록됐다. '장애인'으로 분류되던 삶에서 '예술인'으로의 카테고리가 우선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보리수 아래'는 코로나19 이전에 동양권 여러 나라와 공동으로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에는 코로나 시국임에도 일본의 시인 호리에 나오코 등과 최명숙 시인이 함께 지은 시집 '우리가 바다 건너 만난 것은'을 출간했다. 두 나라 언어로 출간된 시집을 통해 장애라는 벽뿐 아니라 언어의 벽, 국적의 벽까지 뛰어넘은 것이다. 큰 것들을 뛰어넘고 보니 장애는 가장 별것 아닌 것이었다.

▲ 17일 발간된 보리수 아래 감성 수필집 '내 마음속엔 아름다운 나타샤가 있어'(사진=도서출판 도반) © 팝콘뉴스


8월 17일은 '보리수 아래 감성 수필집' 그 첫 번째 '내 마음속엔 아름다운 나타샤가 있어'가 출간되는 날이다. 가톨릭 신자인 회원 윤정열 씨가 지었다. 머지않아 '보리수 아래 감성 소설집' 시리즈가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올 것도 같다.

최명숙 시인은 모임 외에도 도서출판 도반에서 편집주간으로 일하며 틈틈이 언론사에 칼럼까지 연재하는 등 멀티플레이어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도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시인으로서의 창작활동이다. 최근 발간된 시집 '인연 밖에서 보다'를 보면 그가 자신의 업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등단 후 최 시인은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져버린 꽃들이 가득했던 적이 있다', '풀잎 뒤에 맺힌 이슬', '마음이 마음에게' 등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최 시인은 "어릴 때 친구와 함께 여행 갔다가 친구는 돌아가고 혼자 봉하 청량사에 간 적이 있다. 그때 만난 지현 스님이 '다시 한번 꼭 놀러오라'고 하신 덕에 한 달에 한 번씩 그렇게 5년이나 청량사에 다녔다. 그때부터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한 날은 당시 주지 스님이셨던 지현 스님이 '장애인 불자들을 위해 모임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그 말씀이 오늘의 '보리수 아래'의 태동이었던 것 같다"며 "다섯 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지만, 장애가 있던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는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전부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교내 백일장 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문학에 관한 관심이 더 커진 것 같다. 지난 시간을 전부 펼쳐 놓고 보니 오늘날 '보리수 아래'는 아홉 달 만에 엄마 뱃속에서 급히 나왔던 제 손에 쥐어져 있던 운명이었나 보다"고 말했다.

이어 "1970년대에 강원도 춘천에 특수학교가 있었겠나. 일반 초등학교 다니면서 내가 다른 친구들과 다른 것을 알았다. 장애에 대한 동정도 편견도 없으셨던 어머니께서 '너 스스로 걸어가라' 하신 덕에 용기 내 학교에 다녔다"며 "'누나에게 물어보라', '누나는 뭐라고 하더냐' 하며 동생들 앞에서 위신도 세워주시어 부모님 돌아가신 후에도 동생들과 잘 지내고 있다. 사실 어머니가 학교 가는 제 뒷모습을 숨어서 며칠이나 보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어린 나이였지만 어머니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 앞만 보고 열심히 걸어 학교에 갔었다"고 말했다.

장애는 가졌으나 제한된 삶에서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몰입하며 살았던 그녀의 지난 시간은 현재의 그녀에게 뜻밖의 선물이 될 때가 종종 있다. 1992년 '시와 비평'에서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던 날과 이후 구상솟대문학상 대상, 대한민국장애인 문화예술상(문학부분), 대한불교조계종포교대상 등을 수상한 것 등은 1970년대 어린 최명숙의 상상의 범주에 없던 것들이다. 그러니 선물이다. 이뿐인가, 최 시인은 2003년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어린 시절 동생들 앞에서 위신 세워주시던 어머니의 현명함 덕에 그녀는 대통령 표창으로 계속해서 맏이 위상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최 시인은 "고등학교 졸업 후 덕성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시와 소설을 공부하고, 후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도 공부했다. 이러한 과정들을 밟았기에 봉사활동으로 인연이 된 한 뇌성마비복지관에서 공채로 직원이 될 수 있었고, 한국뇌성마비복지회에서 홍보팀장까지 맡아 일했다"며 "비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사회생활은 저와 같은 장애인들이 주도하는 모임을 만들고자 하는 꿈으로 이어졌고, 결국 그것을 실현할 수 있게 한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보리수 아래'는 최명숙 시인의 초년, 중년의 소리 없는 열정이자 그 기록이었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된 그녀 노후의 벗이자 휴식이 될 것이 분명하다.

▲ 조계사에 핀 연꽃(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보리수 아래'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 코로나19로 대면 활동이 중단되면서 온라인으로 모임을 하거나 회의를 하고 스님을 초청해 법문을 듣고 있지만, 코로나 이후 스케줄을 계획하는 일에 손 놓지 않고 있다. 자그마한 사무실도 하나 마련해야 하고, 지금은 고유번호만 가진 정도지만 언젠가는 장애인들의 문화·예술 분야 취업을 알선하는 '허브'로서의 역할을 위해 나름의 준비 작업도 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많은 것이 중단된 이때에도 보리수 아래 회원들이 생산해 내는 창작물들은 사회 곳곳으로 알아서 뿌리를 내리고, 꽃잎을 펼쳐 향을 내고 있다는 것. 조계사 일주문 뒤로 화려하게 핀 연꽃들처럼.

최명숙 시인은 말했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과 달리 책을 내기도, 사진전과 음악회를 열기도 어렵다. 때문에 '보리수 아래'에서 회원들이 책을 내고 사진전이나 음악회를 여는 것은 보물을 얻는 일과 같다. 나는 우리 회원들의 재능과 실력을 세상이 알아줬으면 하고 바란다. 또 '보리수 아래' 회원뿐 아니라 예술적 감각을 가진 많은 장애인이 편견 없는 세상에서 마음껏 작품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무들도 나무끼리 가지싸움을 하면서 크고

풀꽃들도 풀꽃끼리 키 재기를 하면서 더불어 살고

나무와 풀꽃도 아닌 듯하면서도 서로를 보듬으며

더불어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숲길의 그들과 진정으로 더불어 걸었다

- 최명숙 詩 '나무와 풀꽃'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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