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다섯해누리 이기수 신부 인터뷰

▲ 지난 7일 장애인 거주 시설 둘다섯해누리를 찾아 이기수 신부와 시설폐지를 위해 먼저 지역사회에 마련돼야 할 조건을 물었다. 사진은 둘다섯해누리 연수 보고서 및 관련 기사를 스크랩한 것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시설 바깥에서 거주하는 것)'을 두고 지역사회의 준비가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탈시설을 수행하면서 지역사회 준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맞부딪치고 있다.

지난 7일 장애인 거주 시설 둘다섯해누리를 운영하는 이기수 신부를 찾았다.

둘다섯해누리는 지난 2012년부터 2019년 직원 연수를 통해 영국, 독일, 스위스 등 해외 현지에서 장애인 거주 상황을 살피고 매해 보고서를 발간해 왔으며, '탈시설'이 아니라 '탈수용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이기수 신부에게 '아직 지역사회에 마련되지 않은 조건'을 묻고 후속 취재를 통해 내용을 보강했다.


시설폐쇄가 '거주인 전원'으로 이어지는 현실 여전... 10년 내 바뀌려면


현재, 서울의 경우, 시설이 폐쇄 또는 폐지되면 '서울특별시 지원주택 공급 및 운영에 관한 조례'에 따라 서울시 운영 장애인지원주택으로 우선 배정되도록 정하고 있다.

'지원주택'은 시설 거주 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설거지, 분리수거 등 일상생활지원부터 금전관리, 심리정서 지원 등을 담당하는코디네이터 및 활동지원사 등 상시 지원 인력이 제공되는 서비스로, 현재 서울시가 운영하는 지원주택은 116곳이다. 1주택 1인 거주가 원칙이며, 최장 20년 거주가 가능하다. 보증금, 임대료, 관리비, 생활비 등은 본인 부담이다.

부산 역시 지난해 '발달장애인 자립전환주택 사업'을 본격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1주택 2~3인, 최장 3년 거주 조건의 지원주택 네 곳을 공개한 바 있다.

지난 4월에는 정의당의 심상정, 장혜영 의원이 각각 '지원주택 마련'을 국가 및 지자체 수준의 '의무'로 규정하는 '장애인·고령자 등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및 '주거약자 주거유지 지원 서비스법'을 각각 대표발의하며, 모든 지자체가 지원주택 설립에 나설 수 있는 근거 법률 만들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다만, 아직은 일부 지자체에서만 관련 조례 제정 등에 나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 지난 6월 10일 오산시에서 전달한 공문. 장애인 거주시설인 '성심재활원' 폐쇄조처에 따라 일부 인원을 타 시설로 전원조치하니 협조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기수 신부는 "(서울이 아니라면) 당장 시설 폐쇄시 이용인들이 갈 곳이 없다"며 상황을 전했다 © 팝콘뉴스

지난해 최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이 정한 시설의 단계적 폐지 시한 '10년 내' 충분한 시설 및 인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이기수 신부는 시설폐쇄 후 지원주택이 모두에게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차선책'으로 지목될 수 있는 '그룹홈' 조차 현재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그룹홈은 비교적 경증의 장애인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한 공동주거시설로 현행은 한 명의 활동지원사가 4명의 장애인을 담당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기수 신부는 "당장 시설을 폐쇄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대체제는 '그룹홈' 정도인데, (활동지원) 선생님은 한 명 당 네 명의 이용인을 담당하도록 정해져 있다"며 "이용인이 보호자가 없거나 고령이거나, 장애인 특성에 따라 교대인력, 추가인력을 배치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어도, '왜 그룹홈이 24시간 운영돼야 하냐'는 반문이 날아오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만일 인력과 인력에 대한 대우가 부족해 지원주택이 지금의 그룹홈 같은 형태의 인력 지원을 하게 된다면, 거주지가 바뀌어도, 탈시설의 목표인 '자립'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기수 신부는 "시설 폐쇄 후 한 명의 선생님이 네 명의 이용인을 '데리고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선생님의 책임 부담이 크다"며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이 보장해줄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되겠나. 그건 자립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선택할 자유' 돕는 '후견제도' 보편화 필요성도


'성년후견' 제도의 미비 역시 우려점으로 짚었다.

지난 2013년부터 국내에는 발달장애인 대상 '공공후견지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공공후견은 지적능력이나 의사소통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이 보호자가 없는 경우나 보호자 사후에도 권리를 침해받지 않고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별도의 후견인을 지정, 재산관리나 신상 관련 사항 등을 돕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다만, 장애계 매체 '비마이너'가 한국장애인개발원 정보청구를 통해 받은 발달장애인 공공후견인 청구 현황을 보면, 2017년부터 2021년 3월까지 발달장애인 공공후견인이 신청된 건수는 2325건으로, 이 중 426명은 신청 수용까지 대기 중이다. 탈시설 관련 대기 건수는 280건이라고 비마이너는 밝혔다.

성년후견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19년 '후견 등 의사결정지원에 관한 기본법안'이 원혜영 의원 대표발의로 제안됐으나 임기만료 폐기된 바 있다.


해외 '캠프힐' 등으로 시설 잔존... '시설'의 '공동체화'도 살펴야


지역사회의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 역시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기수 신부는 "'자립'에 나설 수 있는 이용인은 생활이 가능한, 조건이 괜찮은 이들이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자칫 나쁜 심부름에 연루되거나 스스로 잘못을 할 수도 있다. 그걸 지금 우리가 '실수'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에 따른 지원 범위를 우리 사회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이기수 신부는 "만일, 발달장애인이 결혼해 아이를 낳기 원한다면, 국가는 그의 책임을 어떻게 도울 것이냐"며 "가까이 있는 불도 끄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역사회 통합 방법에 대해 어느 정도 (논의를) 끌어가야 하는데, 이런 것이 없는 상황에서 (탈시설이 논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립'을 위해서는 단순히 거주 지원뿐 아니라 '활동지원' 역시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활동지원에서 역시 인력 부족, 프로그램 부족, 프로그램 운영 시설 부족, 프로그램 선택에서 '장애인 선택권 존중' 부족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시설의 공동체화' 등 해외 사례를 살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 둘다섯해누리가 운영 중인 그룹홈. 한 세대 당 네 개의 방이 제공되며, 1인 1실이 원칙이다. 활동지원인이 세대 당 한 명 상주한다. 건물과 건물사이는 띄우지 않고 데크, 잔디밭 등으로 연결해 소통할 수 있게끔 했다 © 팝콘뉴스

현재 '탈시설'을 천명한 독일, 영국, 폴란드 등은 일종의 장애인 대안 공동체인 '캠프힐(Camphill)'을 운영하고 있다.

2018년 김용득 성공회대학교 교수의 보건사회연구 기고에 따르면, 하나의 마을에 90명의 발달장애인이 살고, 200명의 직원과 봉사자가 함께 생활하며, 40~50채의 집에 장애인과 비장애인 6~7명이 가구를 이뤄 공동생활을 하는 식이다.

캠프힐은 공동체 내 커뮤니티 공간, 공동생산 작업장을 따로 마련해 프로그램, 회의, 근로 등을 진행,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하고, 다른 지역사회와도 교류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경기도 양평에 '캠프힐 코리아'가 설립돼 공동체 마련에 나서고 있다.

둘다섯해누리 역시 시설 부지에 캠프힐 모델의 '그룹홈'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이기수 신부는 "해외 사례에서도 시설이 있는데, 없는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 이를 다 공유하고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다양한 프로그램, 선택지를 제시해 살 권리를 찾아줄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전했다.

한편, 오는 8월 정부는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울시 등 지자체 수준에서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을 설립하고 추진한 일은 있으나 국가 수준에서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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