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가 반드시 콤플렉스라는 법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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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뉴스=박윤미 기자)* [고민의 발견]에서는 살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부분을 다룹니다. 때로는 핫이슈를, 때로는 평범한 일상에서 소재를 채택합니다. 마지막 단락에는 고민과 닮은 책의 한 페이지를 소개합니다.

누구나 콤플렉스 한 가지씩은 가지고 산다. 그것이 외모와 관련된 것일 땐 하나 이상일 수도 있다. 완벽한 외모를 가진 연예인들도 콤플렉스를 고백할 때가 있는 걸 보면, 외모 콤플렉스는 생김보다 '자기 만족'에 가까운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궁금해진다. 콤플렉스는 필연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성장하면서 체득하는 것인지. 혹은 타인에게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는지.

필자의 경우 타인으로부터 이식된 콤플렉스가 있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은 또 다른 타인으로 인해 콤플렉스를 치유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미용 일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좋아한다기보다는 '쉽게 마음을 열 수 있는 존재'라는 표현이 적당하겠는데, 이는 미용 일 하는 사람과의 특별한 추억 때문이다.

필자는 중학생 시절 머리카락이 굵고 숱이 많은 것이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미용실에 가면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제가 머리숱이 많아요. 머리카락도 굵은 반곱슬이라 머리 자르기가 힘드실 거예요"라는 말을 꼭 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굉장히 예의 있는 학생으로 보일 테지만, 실은 그 이유 때문이 아니다. 필자는 머리카락에 대해서만큼은 몹시 예민했기에, 머리 만지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입을 통해 콤플렉스가 까발려지는 것을 사전 차단하고자 했던 것뿐이다.

이러한 예절(?)을 갖추기 전에는 실제로 몇몇 미용사들로부터 "반곱슬이라 머리 자르기가 모호하다"라거나 "이렇게 숱 많은 사람은 오랜만에 본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그런 말을 들은 날에는 밤새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슬픈 기분과 함께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고백하건대, 이 콤플렉스의 근원은 필자의 아버지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필자의 아버지는 생전에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어머니를 타박했다. 단골 소재는 '머리카락이 굵은 여자'였는데, 내용은 뻔하다. 머리카락이 두꺼운 여자는 기가 세고, 기 센 여자는 남자의 앞길을 막고 뭐 이런 것들.

어머니와 외적으로 많이 닮은 여중생은 그렇게 자신의 머리카락도 남자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여중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굵고 숱 많은 머리카락에 대한 콤플렉스를 수혈했다.

그랬던 여중생은 세월과 함께 철을 삼켰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소환해 콤플렉스를 따지기에는 많은 나이가 됐다. 특히 아버지와 같은 직업을 갖게 되면서 아버지의 생전 직업적 스트레스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으며, 더불어 그의 과오를 통해 그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으려 의식하며 살아갈 수 있게도 됐다.

콤플렉스를 싹둑 하고 끊어내 준 것은 의외로 공포의 대상이던 '미용사'였다.

여중생은 그날도 마찬가지로 미용실 의자에 앉아 고해성사하듯 "머리카락이 굵고 숱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중생의 이야기가 끝나자 미용사는 물었다. "그래서요?"

여중생은 무슨 용기에선지 자신이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는 거슬러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툼까지 이르렀다.

미용사는 여중생에게 사과했다.

"아줌마가 대신 사과할게요."

같은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여중생에게 미용사는 이런 말도 했다.

"어른들이 그렇게 꼭 쓸데없는 말을 해서 애들한테 콤플렉스를 만들어 줘. 그런데 아버지는 틀렸어. 나는 평생을 머리 만지고 산 사람이라 내 말이 더 정확해. 머리카락은 굵은 게 좋은 거고, 그건 머리카락이 건강하다는 뜻이야. 숱이 많은 건, 지금은 모르겠지. 근데 나이 들면 알 거야 얼마나 큰 복인지. 머리 훌러덩 벗어져서 오는 아줌마들이 얼마나 많은데."

20년도 더 전의 일인데, 그 미용사의 말이 바로 어제 들었던 것처럼 생각나는 것은 그날 미용사의 말에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친 미용사의 얼굴에선 빛이 났고, 그것으로 여중생은 그 자리에서 머리카락과 함께 콤플렉스를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날 그 미용사가 "그러네, 머리숱 엄청 많고 머리카락은 엄청 굵네" 하고 말했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 여중생은 얼마간은 더 자신의 머리 상태를 해명하는 일을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 미용사를 만난 이후 여중생은 아니 필자는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바뀌었다. 콤플렉스에 대한 이해 자체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콤플렉스는 상대의 사랑과 인정을 위해 없애야 할 문제의 것이 아니며, 본질은 콤플렉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콤플렉스를 콤플렉스로 방치하는 것뿐이라고.

가끔 식사 자리에서 만난 후배들로부터 콤플렉스나 우울감 따위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질문 받을 때가 있다. 그러면 필자는 그날 그 미용사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는 대부분 미용사의 어른스러움을 두고 감탄하지만, 잠깐의 정적 후에는 "콤플렉스가 꼭 콤플렉스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로 들뜬다.

말은 콤플렉스를 만들기도, 치유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말에 휘둘려 콤플렉스를 가질 필요도 없지만, 생각하지 않고 내뱉는 무가치한 말로 상대에게 콤플렉스를 만들어 줄 이유도 없다.

인간과 세상을 보는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삶의 태도에도 변화가 왔다. 유아적 환상에 가득 차 있던 내면세계에서 빠져나와 비로소 객관적 실체로서의 외부 현실을 인식하게 된 것 같았다. 타인의 사랑을 구걸하는 대신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고, 타인을 돌보는 것으로 나의 가치를 삼는 이타주의 방어기제를 포기했다. 외부의 인정과 지지를 구하는 대신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훈련을 했다.

남의 말이나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타인의 어떤 말이나 행동은 전적으로 그들 내면에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인간은 타인의 언행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 존엄성을 타고난 존재라 믿게 되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감정과 정서의 여러 층위들을 더 세밀하게 느끼고 수용하면서도 건강한 자기 중심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김형경 작가, '사람풍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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