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는 예비 사회적기업

(팝콘뉴스=편슬기 기자)봄이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들꽃 '민들레'.

금이 간 콘크리트의 균열이나 보도블록을 비집고 꽃을 피워내고야 마는 민들레는 강인한 생명력과 변치 않는 일편단심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그뿐인가? 민들레는 약재 및 식용으로도 사용된다. 뿌리는 해열과 이뇨 효능이 있으며 염증과 소화불량, 변비의 치료제로 사용된다. 간 기능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 민들레의 잎은 쌈 채소, 나물로 무쳐 먹고 뿌리는 튀겨서 먹기도 한다.

꽃이 지고 나면 촘촘한 씨앗이 하얀 솜털을 달고 자라, 바람이 불면 새롭게 정착할 곳을 찾아 세상으로 먼 여행을 떠난다. 이때 민들레 홀씨는 '희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약재와 식용으로 사용되며 동시에 희망의 상징이기도 한 민들레. 이런 민들레를 닮은, 앞으로도 계속 닮아갈 기업 '플립(FLIP)'을 소개한다.


플립, "행복과 희망을 정기 구독하세요"


▲ 플립은 꽃 정기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예비 사회적기업이다(사진=플립). ©팝콘뉴스

플립(FLIP)은 꽃 정기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예비 사회적 기업이다. 소비자가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2주에 한 번 혹은 4주에 한 번 플로리스트가 직접 디자인‧배치한 꽃 패키지를 집까지 안전하게 배송받을 수 있다.

플립에서 제공하는 꽃 정기구독 서비스는 단순히 꽃만을 배송하는데 그치지 않고 꽃의 이름과 꽃말이 적힌 카드를 함께 제공한다. 내가 산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끔 돕는다.

현재 플립에서 정기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전국적으로 약 3,000여 명에 달한다.

이 과정에 있어 조금 더 눈여겨볼 점이 있다면 플립에서 근무하는 플로리스트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점이다.

박경돈 대표는 군 복무 시절 잠시 청력에 이상을 겪은 적이 있다. 원래도 귀가 약한 편이었으나 사격장에서 1주일간의 교육 기간을 거치며 청력에 이상이 발생했다. 없었던 이명이 생겼고 종종 귀가 들리지 않게 되면서 '청력 상실'에 대한 불편함을 몸소 느끼게 됐다.

박경돈 대표는 "당시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계획을 세워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청력에 이상이 생기면서 '모든 계획과 진로를 포기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 경험을 겪고 나니 다른 청각장애인들은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군 복무 시절 우연히 겪었던 불편함이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고 되돌아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었다.

▲ 플립의 박경돈 대표(사진=플립). © 팝콘뉴스

이는 플립의 시발(始發)점으로도 작용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16년부터 청각장애인들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전용 직업훈련센터의 문을 열고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제공되는 직업훈련은 대부분 이공계열 제조업 쪽에 집중돼 있어 비장애인보다 직업 선택권의 폭이 좁은 것이 사실이다.

박경돈 대표는 청각장애인들의 직업훈련 현장에서 제조업 특성상 훈련 수료자들 대부분이 남성이었으며 여성은 더더욱 취업 관문이 좁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여성 청각장애인을 위한 직업 모델 구상에 나섰다.

박 대표는 직업군을 조사하던 중 플로리스트의 직업 만족도가 항상 상위권에 있다는 것,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이 단순 제조가 아닌 창의성과 섬세함을 요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1.5배 시야가 넓고 시각 정보 습득이 빠른 점을 미뤄볼 때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이 여성 청각장애인을 위한 직업 훈련 모델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플립은 플로리스트 양성 및 채용과 함께 꽃 정기구독 서비스 등을 선보이며 행복과 희망을 세상에 뿌려 나가고 있다.


청각장애인들의 더욱 폭넓은 '직업 선택권' 위해


▲ 꽃 정기구독 상품을 제작 중인 플립 직원들(사진=플립). © 팝콘뉴스

2019년에 설립된 플립은 지금은 카페 사업팀과 플라워 사업팀으로 운영 중이다.

플립에서 근무하는 구성원들은 박경돈 대표를 포함해 김하영 씨(마케터 겸 웹디자이너)와 독일에서 플로리스트 공인 과정을 수료한 고운지 씨(기획 및 교육), 그리고 플로리스트 백지혜 씨 외 2명이 근무 중이다.

정기구독 서비스는 작년 7월 베타 서비스를 시작으로 현재 정식으로 론칭해 플립의 주요 사업 중 하나다. 이외에도 플라워레슨과 플라워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고양에 위치한 플라워 카페에서는 일반 카페로 운영되면서 보호종료아동과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하고 있다.

플라워레슨은 정기, 비정기가 있는데 ▲베이직 ▲스탠다드 ▲프로페셔널 세 가지와 ▲자격증 반까지 총 네 가지 클래스가 운영된다. 비정기의 경우 기업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요청에 따른 기획 레슨을 진행 중이다.

플립에서 플로리스트로 근무 중인 백지혜 씨는 자신이 만든 꽃다발을 가족과 친구들, 지인들이 받을 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플로리스트는 어릴 적부터 관심이 있던 직업이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이 배울 수 있는 직업의 선택 폭이 좁아 기회를 잡는 것이 어려웠는데 그러던 중 플립을 알게 됐다"며 "이곳에서 플로리스트로 열심히 일해서 편견을 깨고 많은 청각장애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경돈 대표는 한창 근무를 하던 중 모르는 분이 갑작스럽게 사무실을 찾아왔던 일화를 소개했다.

다짜고짜 사무실을 방문해 처음에는 이상한 분인 줄 알았다던 한 남성은 알고 보니 청각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고 있는 아버지였다.

아이가 나중에 어른이 돼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항상 고민하는데 플립과 같은 기업이 앞으로 잘 돼서 많아진다면 걱정이 없을 것 같다며 응원의 말을 전하고 갔다는 분의 뒷모습이 유달리 기억에 남았다는 박 대표.

그는 "플로리스트 직업 외에도 다양한 직업 모델을 발굴해 청각장애인들의 직업 선택 폭이 더욱 넓어지기를 바란다"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꽃('F'lower)과 잎('L'eaf)을 합쳐 생산해내는 꽃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멀리멀리 퍼지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뒤집길(Flip) 바라며 지어진 이름인 플립(FLIP).

부디 박경돈 대표가 사(社)명에 담은 뜻이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을 타고 더욱더 넓게, 우리가 사는 사회와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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