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는 시간만큼 그 맛이 깊어지는 건어물들의 정류장 '부흥상회'

▲ 부흥상회 한정필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처음 한 번 왔다가 물건을 사가고 나서 맛을 보면 내 편이 되어야 해. 정직하게 하다 보면 누가 내 편이 안 되겠어. 실속 있는 제품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지."

인천 내 유통되는 건어물은 모두 부흥상회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부흥상회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건어물을 한 차 가득 실어 와서 도매하고, 납품하는 일을 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러나 도매에서 소매로, 전통시장에서 대형마트로 세월이 바뀌면서 과거의 영광은 조금은 빛이 바랬다.

그러나 안타까운 눈길로 부흥상회를 바라보는 한정필 대표와 달리 아들 한승호 씨는 기대되는 눈빛으로 부흥상회를 꿈꾼다. 과거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정직과 신뢰는 유지하되, 다른 것들은 시대에 맞춰 변하면 한 번 더 부흥할 수 있다는 꿈 덕분이다. 부흥상회의 부흥기는 벌써 그 시작을 알렸다.


부흥상회, 인천 건어물을 책임지다


부평 진흥종합시장은 당시에는 드물다는 등록시장이었다. 과거 시장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미리 허가를 받고 지은 시장을 등록시장이라고 했다. 이 외에는 장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나중에서야 인정을 받은 인정시장이었으니, 등록시장은 인정시장과 비교하자면 더 큰 시장, 제대로 된 시장이었다.

그렇다 보니 인천 내 물동량은 이 시장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야채 경매장이 바로 앞에 있었던 부흥상회 역시 인천 내 건어물을 살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건어물 가게였다. 한정필 대표는 부흥상회를 인수한 이후로 쭉 인천 내 건어물을 책임져 왔다.

전국 각지에 있는 건어물이란 건어물은 모두 부흥상회로 몰려들었다. 종류도 종류지만 그 양도 굉장했다. 모두 도매로 판매하던 물량이라서 한 묶음이 지금과는 그 양이 달랐다. 이 많은 건어물을 모두 사 와서 배송하고, 진열하는 일을 한정필 대표가 맡았다. 그러니 눈을 붙일 틈도 거의 없었다.

"새벽 한 시 반에 일어나서 중부시장이나 가락시장에 가. 그때는 주로 중부시장을 더 많이 갔어. 건어물은 다 중부시장으로 직결되니깐. 그렇게 시장에서 물건을 한 차 가득 실어 와서 가게 문 열고 팔다 보면 아침 8시, 9시면 물건이 다 떨어지거든. 그럼 또 가서 한 차 가득 다시 실어오는 거지."

부흥상회만 바라보고 있는 소매상이며, 음식점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쉴 틈이 없을 때였다. 구멍가게며, 슈퍼에서는 가진 돈이 없어도 부흥상회를 찾아와 물건을 받아갔다.

"일단 물건을 주지. 팔아서 가져오라고 하고. 그렇게 거래가 되는 거야. 뭘 믿고 물건을 주냐고? 믿으니까 그렇게 주는 거예요. 그때 당시에는 물건을 팔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깐 외상을 가져가는 거지. 그때는 나쁜 마음을 먹는 사람들이 없었어. 돈이 없어서 그렇지 다 착한 사람들이었다고. 어차피 나쁜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해도 떼어먹게 되어 있어."

늘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서 장사를 하곤 했지만, 한정필 대표는 '서로 고마운 거지'라고 답하곤 했다.

"나도 고맙잖아. 어찌 되었든 순서가 바뀌었다고 해도 내 물건 팔아줘서 나는 먹고사니까 고마운 거지. 그게 상생이지 다른 게 상생이야? 요즘엔 정이 메마르니 상생이라는 말이 더 많이 나오는 것뿐이지."

지금은 어딜 가나 찾아볼 수 있는 김밥천국 역시 부흥상회의 단골 중 하나였다. 인천에서 김밥천국이 생겼을 때만 해도 자본이 부족해 여러 번 부흥상회에 김을 받아갔다. 이후 김밥천국 대표 가족들이 프랜차이즈를 하나씩 열면서 김밥천국이 퍼져나갔고, 각 프랜차이즈에 들어가는 김을 부흥상회에서 모두 도맡아 납품했다. 김만 한 차 가득 실어 지점마다 내려주곤 했다.

"IMF 때 여기서 파는 천 원짜리 김밥이 히트를 쳤지. 먹거리가 마땅치 않은데, 김밥은 어찌 되었든 한 끼 식사가 되잖아."

▲ (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정직과 신뢰로 40여 년 동안의 영광을 지켜오다


이렇게 단골의 성공은 부흥상회의 성공과도 같았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거래 역시 부흥상회의 인기 비결 중 하나였지만, 도매 장사는 그것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결국 장사는 품질과 가격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일이다.

"소비자들이 와서 물건을 사보면 알지. 신선도나 맛이 좋고, 다른 곳보다 저렴해야 해. 예를 들어 김이라도 좀 맛있는 김이 있고, 맛이 떨어지는 김이 있단 말이야. 그런데 맛있는 김을 골라낼 수 있어야 해. 그게 노하우지. 그렇게 좋은 상품을 사 와서 좋은 가격에 팔아. 건실하고 정확하고, 친절하게. 그것만 지켜주면 특별한 비결도 필요 없어. 노력한 사람들은 다 돈을 벌게 되어 있어."

이렇게 좋은 물건을 남보다 더 저렴하게 팔 수 있으려면 성실해야 했다. 잠을 제시간에 잘 수 없으니 늘 피곤했는데도 16~20시간을 일하곤 했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돈을 번다고도 할 수 없었다.

"힘든 건 이루 말을 못 하지. 그런데 그때 시장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그런 식으로 장사했어. 새벽 네 시 반이면 열고, 저녁 여섯 시에 문 닫으면서. 그 당시에는 돈이 남고, 안 남고를 떠나서 바쁘게 보내다 보니 세월이 금방 갔어."

건실하게 한 길만을 파온 데에는 분주한 일상의 덕이 컸다. 시간이 나면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했고, 잡념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런데 세상이 점차 바뀌었다. 복숭아밭이었던 소사, 포도밭이었던 중동은 아파트단지가 되었고, 논바닥이었던 부천과 상동에도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부평에만 시장이 8개가 생겨났고, 대형마트도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다 도시가 되어버렸지. 바로 앞에 있던 야채 경매장도 아파트로 바뀌었고. 물론 인구도 많아졌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시장에 잘 오지 않잖아. 주로 우리가 납품하던 구멍가게도 다 없어졌는데, 뭘."

부평 진흥종합시장도 시대가 바뀌면서 도매만을 고집할 수 없게 됐다. 부랴부랴 소매로 판매하기 위해 소분화를 시켰지만, 그래도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엔 어려웠다. 소매 고객에게는 가격만큼이나 말솜씨가 중요해졌으나, 도매만을 하던 상인들에게는 이러한 판매방식이 익숙지 않기도 했다.

"도매상은 가격과 품질이 좋은 게 제일 중요한데, 소매 손님은 말솜씨도 좋아야 해. 특히 이 제품이 어떻게 좋은지 잘 설명해줘야 하는데, 그런 걸 잘하지 못하니까."

도매하던 곳은 불친절하다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며 판매하고, 전통시장 지원사업을 통해 상점 간판 등을 정리하고, 주차장을 마련하며 상인 교육에도 매달렸지만, 전통시장을 찾는 이들은 점차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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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최고, 최대의 건어물 전문점을 향한 준비를 시작하다


과거보다도 앞으로의 날들이 문제다. 특히 부흥상회처럼 2세가 대를 이을 예정인 가게는 더욱 전통시장의 몰락이 뼈아프다.

"젊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가지고 투자하는 것도 아니고, 엄마, 아빠가 하던 가게를 물려받는 건데, 지출은 많고, 수입이 줄고 있으니 걱정이지."

그걸 잘 알기에 한정필 대표는 아들인 한승호 씨에게 가게를 물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장사라는 것이 자신에게는 너무도 힘든 일이었고, 그에 비해서는 특히 요즘은 돈벌이가 안 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리고 말리다가 기어코 가게를 물려받겠다는 아들과 함께 부흥상회를 이끌어간 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부흥상회는 아버지에게는 애틋하지만, 미래가 걱정된다.

그러나 아들에게 부흥상회는 아직도 부흥기를 기다리고 있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가게다.

"제가 마트에서 오래 일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앞으로 바뀌면 더 좋아질 부분들이 눈에 보여요. 일은 정말 고되지만, 성공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들은 부흥상회로 들어오자마자 수많은 건어물 종류를 파악했다. 그 이후에는 기존 포장을 소포장으로 바꾸고, 로고를 만들고, 바코드를 넣었다. 도매로 납품을 하든, 소매로 판매를 하든 바코드를 통해 관리해야만 파는 입장에서도 품목 관리를 할 수 있고, 사는 입장에서도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넷 판매를 위해 사이트를 만들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등 전산화에도 나섰다. 현재 인터넷 판매는 잠시 멈춘 상태지만, 앞으로는 인터넷 판매량을 더욱 늘려 전국 각지로 발송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건어물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큰 가게가 부평에는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 부흥상회를 키워서 건어물전문점으로 판매하고 싶어요. 건어물 가게도 구색을 다 갖추고 대규모로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부흥(復興). 쇠퇴하였던 것이 다시 성하게 일어나는 시기라는 의미다. 쇠퇴하던 전통시장을 다시 흥성흥성하게 되돌려놓을 꿈, 오랜 단골들만 드나들던 가게를 다시 북적거리도록 이끌고 싶은 꿈, 부흥상회는 이러한 꿈을 꾸며 오늘도 조용히 시장 한편에서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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