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시도 거듭될수록 반대 조직화...시민사회 "인권 사회적 합의 사안 아냐"

▲ 지난 8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개최한 긴급토론회 현장. 왼쪽은 추지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사진=차제연)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지난해 6월 장혜영 의원 대표발의로 차별금지법이 발의됐다. 지난 2007년 관련 법안의 첫 등장 이후 여덟 번째 제정 시도로, 인종, 나이, 장애, 성별, 성적지향 등 23개 항목에 대한 생활영역 전반에서의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법안에 따르면, 차별행위의 피해자는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으며, 차별행위자가 인권위 시정권고를 이행하지 않으면 3,000만 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행위 자체에 관한 처벌조항은 담고 있지 않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9월 소관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상정된 이후 단 한 차례도 법사위에 상정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심사, 논의 등도 침묵 속에 잠겨있다.

시민사회는 '사회적 합의' 과정에 대한 부담으로 논의 시도 자체를 미루는 모양새라고 상황을 짚는다.

지난 2007년 입법 예고를 통한 공론장 마련 시도가 정부의 중재 포기로 폐기 절차를 밟고, 이후 입법 시도에서 발의 의원 개개인에게 비난이 이어진 사례 등을 거치며 관련 사안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론장 마련' 책임 미룬 10여 년... 반대 세력 키웠다


차별금지법은 지난 2007년 당시 참여정부의 정부안으로 먼저 등장했다. 2007년 10월 법무부가 발표한 입법 예고안은 성별, 장애, 성적지향 등 21개 조건에 대한 생활영역 전반에서의 차별을 금지한다고 정하고 있다.

해당 입법 예고안은 그해 10월 2일부터 10월 22일까지 입법의견을 접수했고, 이후 31일 7개의 차별 사유를 삭제한 법안이 최종안으로 발표됐다. 삭제된 차별 사유는 성적지향, 병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언어, 출신국가, 범죄 및 보호처분이었다.

시민사회는 "사실상 어떤 차별은 용인된다는 '차별조장법안'"이라며 반발했고, 법안은 17대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18대, 19대 국회에서 여섯 차례 법안이 상정됐다. 2011년 권영길 전 국회의원 대표발의안, 2013년 김한길 전 국회의원 안이 대표적이다.

모든 법안은 임기 만료폐기 혹은 자진 철회됐다. 비난이 생활의 영역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권영길 전 국회의원은 대안언론 닷페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입법 당시) 수 없는 항의전화, 편지, 방문이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다른 국회의원들이 지레 적극적 의사표시를 안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한길 전 국회의원 역시 "사는 집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시위하더라. 각 교회가 일요일마다 (시위를 하고), 동조한 국회의원들은 절대 다시 국회에 보내면 안 된다고 하니까 각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겁을 먹었다. 한 명씩 와서 '저는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하다 보니 무너진 것"이라고 전했다.

두 개 안은 각각 임기 만료폐기, 자진 철회됐다.

하지만, 여전히 국회 바깥에서는 '공론장 마련'의 책임을 국회로 미루는 모양새다.

지난 9월 법사위를 통해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차별금지법에 대해 "있어야 하는 법안"이라면서도 "구체적 내용 중에는 의견 수렴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것이고 국회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물러섰다.

지난 12월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인권위원장과의 회담 자리에서 "국회에서 활발하게 논의하고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를 넓혀가길 기대한다"고 책임을 국회로 돌렸다.

요컨대, 차별금지법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고, 사회적 합의를 모으는 데 대한 책임은 국회에 있다고 짚은 셈이다.

와중 보수 개신교계는 조직을 불리는 모양새다.보수 개신교계 위주의 '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진평연)은 캠페인, 포럼, 시위, 뉴스픽 등 활동을 조직화하고 있다.


이미 대다수 차별금지법 '지지'... '인권'은 사회적 합의 사안도 아니야


일각에서는 "지레 겁을 먹은" 것을 '사회적 합의 부족'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별금지법이 이미 인권위 권고(지난해 7월), 유엔 보고관 권고(2014년) 등을 거치며 공적 기관에서 필요성이 여러 차례 제기됐으며, 민간에서 역시 이미 '합의'에 이른 정황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에 응답자 88%가 동의했다.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응답 역시 73.6%에서 나왔다.

2019년 인권위 '혐오차별 국민인식조사'에서도 응답자 72.9%는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에 찬성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미 사회적 합의는 충분히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애초 '인권'이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하는 사안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스럽다는 지적이다. 시민사회는 양측의 발언권의 무게가 동등하게 인정될 때는 사회적 합의, 사회적 갈등이 가능하지만, 아니라면 소수자 배척 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한상원 충북대 철학과 교수는 참여연대 기고를 통해 차별금지법 반대 진영에서 전개하는 '표현의 자유' 논쟁은 차별이나 혐오의 '가해자'에만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상원 교수는 "반복적인 차별과 혐오에 시달리는 피해자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만큼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냐"고 물으면서 "(차별금지법이) 소수자가 그러한(자신의) 권리를 실현해나가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 주체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고 짚었다.

한편, 차별금지법안은 이번 21대 국회에 장혜영 의원안 외에 이상민 민주당 의원 역시 대표 발의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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