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법 개정·토지거래 사전신고제·부동산 백지신탁제 등 대안 떠올라


(팝콘뉴스=정찬혁 기자)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땅 투기 의혹에 휩싸이며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LH가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됐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라 국민의 분노는 더욱 컸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전수조사를 지시한 만큼 강도 높은 조사와 처벌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추락한 신뢰도는 정부의 부동산 공급대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LH는 이미 3기 신도시와 관련해 개발도면을 유출한 직원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바 있어 내부 통제시스템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공기업 부정부패가 반복해서 발생하자 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대안들이 관련 기관, 정치권 등에서 나오고 있다.


LH, 반복되는 논란...솜방망이 처벌이 문제인가


4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온라인으로 대국민 긴급 브리핑을 열고 "광명 시흥 신도시 발표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제기됐고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변 장관은 "정책의 신뢰성·투명성을 바탕으로 공공개발 사업을 집행해야 하는 기관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점에 대해 주무부처 장관이자 직전에 해당 기관을 경영했던 기관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앞서 지난 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LH 직원과 배우자 지인 등 10여 명이 광명·시흥 지구 지정 발표 전에 약 100억 원에 달하는 사전 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부 주택 공급정책의 핵심인 LH 직원들이 토지를 매입하고 지분을 나누고, 묘목까지 심는 등 치밀하게 계획한 정황이 드러나 국민의 분노가 들끓었다.

이전에도 3기 신도시 관련해 내부 정부가 LH에서 유출된 사건이 있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은혜 의원(국민의힘)이 4일 확보한 '2020년 12월 LH 감사 결과 처분보고서 및 관련자료'에 따르면 2018년 경기 고양 창릉 신도시 선정 과정에서 내부 개발도면을 유출한 직원 3명은 경고 및 주의 처분을 받았다.

유출 관계자들은 해당 도면이 시중에 돌고 있다는 민원을 접수했지만 약 4개월 동안 유출 사실을 숨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과천 신규 공공주택지구 사업 후보지 자료 유출에 관여한 LH 직원 3명도 주의 처분에 그쳤다. 이 중 1명은 변창흠 장관의 LH 사장 재임 시절인 지난해 1월 승진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9년 국정감사에서는 LH 직원이 LH가 분양하는 전국 아파트 15채를 본인과 가족 명의로 분양받은 사실이 드러나는 등 각종 비위가 적발됐다.

또 다른 직원은 투자 조언과 자문 제공 등의 명목으로 지인·직무관련자로부터 네 차례에 걸쳐 1억 3150만 원을 받았다. 이들 직원은 모두 파면 처분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부산울산지역본부 직원이 합숙소 관리비를 납부한 것처럼 청구서를 위·변조한 뒤 공사에 합숙소 관리비를 청구하는 방식으로 사익을 편취한 사실이 드러나 해임 처분을 받았다.

이외에 출장비, 업무추진비 등을 부당하게 수령한 사례가 다수 적발됐으며 대부분 견책 처분을 받았다.

최근에는 서울지역본부 의정부사업단에 근무하는 40대 직원이 부동산 투자에 대해 강의하는 한 유료 사이트를 통해 토지 경·공매 강의를 해 지난 1월 말부터 감사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5일 LH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직원은 현재 직위 해제 처분을 마쳤다

▲ LH 2019년 연간 감사보고서(사진=한국토지주택공사) © 팝콘뉴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올라온 LH의 2019년 연간감사보고서를 보면 2019년 총 22회의 감사를 시행해 총 812건을 처분했다. 약 527억 원의 원가 및 비용 절감을 유도하고 징계 51명 포함 총 612명의 신분상 조치가 이뤄졌다.

2018년과 비교해 처분 건수는 약 7.5%(57건), 처분 인원 수는 약 40%(176명) 증가했다.

LH 내규를 보면 직원들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업무와 관련된 정보를 이용해 공사가 공급하는 주택, 토지 및 상가 등을 부당하게 공급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공개 내부정부를 통해 토지 매입이나 보상을 받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규정이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확인하거나 제한할 장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최고 수위 징계는 해임·파면이며, 규정에 따르면 뇌물·문서 위조 등으로 부당 이득을 취득한 경우 회수 조치를 하는 정도다.

한국토지주택공사법 제26조, 제28조에 따르면 공사의 임원 또는 직원이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거나 도용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이를 이용해 공사가 공급하는 주택이나 토지를 공급받는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공공주택 특별법 제57조에 따르면 업무 처리 중 알게 된 정보를 목적 외로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부당하게 취득하는 수익에 비해 처벌 수위가 약하고, 부동산 관련 계획은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방지하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LH 관계자는 "내부정보 유출에 관한 건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 대외비 시건, 보안 유지 각서 등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라며 "다만 토지 매입은 별개로 직원들이 토지를 매입하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현재 토지거래 사전신고제 도입을 논의 중이다"라고 답했다.


"정보 유출·투기 관련 규제 미흡...강력한 사전·사후 대책 있어야"


LH 투기 의혹 논란이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자, 정치권은 앞다퉈 'LH 방지법'을 내놓고 있다.

LH는 모든 직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한 토지거래 사전신고제를 도입하고 신규사업 추진 시 관련 부서 직원과 가족의 토지 소유 여부를 전수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문진석 민주당 의원 등 11명은 4일 '공공주택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국토부 등 기관에 종사하는 사람이 업무 처리 중 알게 된 정보를 목적 외에 사용하거나 누설하는 경우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이익액의 3~5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 등 15명은 5일 '한국토지주택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제안 내용을 살펴보면 공사의 직원 및 임원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자신이나 제3자의 토지 및 주택을 거래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모니터링이 이뤄지지 않아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개정 발의안에는 LH 사장이 연간 1회 전체 소속 직원 및 임원의 주택이나 토지거래 전반에 대해 정기 조사를 실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공개해 국가의 미공개 개발정보 등을 악용한 사익적 행위를 예방하고 매도인 등이 재산상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한다는 의도다.


부동산 정책결정과 관계있는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 등에 대해서 필수 부동산(주거용 1주택 등)을 제외한 부동산 소유를 모두 금지하는 제도인 부동산 백지신탁제도 투기 차단 방안으로 거론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전부터 주장했던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3일 이 지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더는 공직자의 자발적 청렴이나 선의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법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주택시장 정상화 첫 단추로 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부터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4일 이 지사는 경기도에서 LH 토지 투기와 유사한 사례 발생 시 전원 직위해제 및 형사처벌 등 중징계하겠다고 밝혔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개발 정보 유출을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실효적 수단이 마련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이번 사태에 관해 "토지를 환수하는 건 사유재산을 뺏는 행위라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다만 원상회복이나 개발 이익 환수 정도는 가능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이어 권 교수는 "공사에서 투기가 성행하는 이유 중 하나가 비밀을 지키겠다는 각서를 쓰는데 외부인은 이를 어기면 형사처벌을 받지만, LH 직원은 내부 규정에 따라 면직이 된다"라며 "퇴직을 앞둔 사람 중에 투자 여력이 있으면 그냥 면직 처분을 받고 투자금을 몇억씩 챙기는 사태가 벌어지는 거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 거다"라고 관련 규제의 미흡함을 지적했다.

토지거래 사전신고제에 관해서는 "모든 직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한다는 데 계획부터 막는 게 중요하다"라며 "신고받고 허가해주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본인이 아니라 관계가 먼 사람을 이용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한편, LH 직원들의 광명 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과 관련해 정부는 합동조사단을 꾸려 사태 진화에 나섰다. 합동조사단에는 국무조정실·국토교통부·행정안전부·경찰청·경기도·인천시 등이 참여했다.

국토교통부는 5일 이와 관련해 "국토부 본부와 지방청 공무원 4000명, LH는 약 1만 명이 조사 대상이며 지자체(유관부서), 지방 주택도시공사 직원과 배우자, 직계존비속까지 포함하면 정확한 추산은 어려우나 수만 명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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