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식품' 나눔 사업에서 '생필품 지원 마트'로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에코백 두어 개를 팔목에 걸고 매대 앞에 선 남성이 세제를 꼼꼼히 살핀다. 계산대 앞에는 식용유며 비누를 장바구니에서 끄집어 올리는 여성이 보인다. 영락 없는 동네 마트의 풍경인데, 하나가 낯설다. 물품이 진열된 매대 아래 '가격'이 아니라 '개수'가 쓰여있다.

베이킹 소다 아래에는 '1개 1품목', 물티슈는 '2개 1품목', 속이 보이는 냉동고 위에는 '생닭 1개'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베이킹 소다는 한 종류 한 개를, 물티슈는 한 종류 두 개를 한 묶음으로 가져가라는 뜻이다.

해당 매장의 이름은 '푸드뱅크마켓',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 산하 서울광역푸드뱅크가 운영하는 취약계층 대상 회원제 매장이다.

▲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마포행복나눔푸드뱅크마켓 1호점. 설탕이며 밀가루가 건너다보인다 © 팝콘뉴스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식자재가 남으면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멀쩡한 식자재를 필요한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하는건 어떨까?'

지역내 결식아동, 홀몸어르신 등 저소득 주민에게 지역 잉여 식품을 전해준다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1998년 시작한 '푸드뱅크' 시범사업은 곧 실물 마트인 '서울푸드뱅크마켓'으로, 2009년 푸드뱅크 물류센터 '서울광역푸드뱅크센터'로 번졌다.

지원사업이 확장한 데는마음을 함께하는 시민들이 늘어난 덕이 컸다. 식당을 운영하는 지역 소상공인이 기부를 위한 식품을 따로 마련하기 시작했고, 시민들의 기부도 줄이었다.

푸드뱅크에 떡을 기부하고 있는 김정화 장수떡방 사장은 4일 2020 서울시 푸드뱅크·마켓 감사의 밤 시상식을 통해 "먼저 떡집을 운영하던 가족들이 기부를 시작하는 것을 보고 좋은 일 같아 동참하게 됐다"며 "조금이나마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데 큰 만족과 보람을 느낀다"고 기부를 지속하는 이유를 전했다.

여기에 유통 기업이 손을 보태면서 '생필품'으로 유통 품목이 확대됐다. 2018년과 2019년, 서울푸드뱅크에 모인 후원물품의 규모는 약 554억 원, 538억 원 수준이다.

이동취약계층을 위해 '이동하는 마켓'도 운영한다.

서울시와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와 이마트가 손잡고 진행하는 '희망마차'는 자치구의 푸드뱅크마트에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이동 취약계층을 위해 취약지역 거점 기관에 따로 간이 매장을 설치해 운영하는 이동형 마켓이다.

운영 방법은 기존 마켓과 같으나, 거점 기관 방문조차 어려운 이들을 위해 가정배달을 병행한다. 직접 배달이 어려운 경우 지역 사회복지 시설과의 연계를 통해 전달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방역 조처가 강화하면서 이동이 더욱 어려워진 이동 취약계층을 위해 서울푸드뱅크는 이같은 '이동 마켓'을 확대하고 있다.

4일 시상식에 참여한 김선순 서울특별시 복지정책실장에 따르면, 올해 약 30만 세대의 취약계층에게 생필품이 제공됐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로 마켓 이용이 어려워진 대상자들에게 생필품 꾸러미인 '희망 꾸러미' 3,000여 개가 직접 전달됐다.

다만, 이같은 노력에도 코로나19로 지역 경제가 얼어붙으면서 개인 및 기업의 기부 총량은 지난해보다 줄었다.

올해 초 서울푸드뱅크가 수립한 기부후원 목표금액은 565억 원 수준으로, 12월 현재까지 기록된 후원 규모는 약 79% 수준인 450억 원 상당이다.

이날 시상식에 수상자로 참여한 김민정 플라잉스콘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대표는 "기부, 후원이라는 것이 거창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한번 해보면 정말 보람 있고 가슴 뿌듯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기부 참여를 독려했다.

또, 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2020 기부 나눔단체 초청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숙 여사와 함께 참여해 푸드뱅크 성금함에 성금을 기부하고 시민들의 따뜻한 손길이 이어질 수 있도록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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