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효과 없을 것" vs "직원 관리 유용할 것"... 직장인은 "도대체 왜?"

▲ 카카오의 기업형 IT 플랫폼 자회사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업무용 카카오톡 '카카오워크'를 출시했다 (사진=카카오엔터프라이즈) © 팝콘뉴스


(팝콘뉴스=배태호 기자) 사례 #1) 서울 ○○구에 있는 외국계 회사 한국 지사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진모 씨.

지난해 초 한국인 지사장이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개설한 카카오톡 단체방에 초대받자마자 주저 없이 방을 나갔다.

같은 팀 상사가 진 씨에게 "지사장님께서 단체방을 만들었는데, 그냥 나가면 어떻게 하나?"라며 질책하자, 진 씨는 오히려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는 사내 메신저와 메일이 있는데, 왜 굳이 개인 카카오톡으로 단체방을 만드는가?"라고 반문했다.

한국 지사장이 업무를 위해 카카오톡으로 단체방을 만든 사실은 외국 본사까지 알려졌다. 본사 측은 한국 지사장에게 "회사 업무와 관련된 내용은 회사 메신저와 메일로만 하라"고 지시했다.

지사장은 "직원 소통을 위한 단체방"이라고 본사에 설명했지만, 본사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단체방은 업무용이나 마찬가지"라며, 보안상의 이유로 카카오톡 단체방을 통한 업무 지시 등을 금지했고, 결국 단체방은 '폭파'되고 말았다.

진 씨와 같은 팀 소속 직원 A씨는 "지사장께서 방을 만들면서 모든 직원에게 보낸 첫 메시지는 '이 방은 효율적인 업무 소통을 위한 공간입니다. 꼭 필요한 사항만 이 방을 통해 전달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는데, 이 메시지가 올라오기도 전에 '진○○ 님이 방을 나가셨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떠서 당황했다. 하지만 단체방에 대해 많은 직원들이 불편해했고, 나중이지만, 단체방이 없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한 직장인의 단체 대화방 배경화면 (사진=직장인 B씨 제공) © 팝콘뉴스

사례 #2) 서울 △△구에 있는 한 회사에서 일하는 B씨.

B씨는 지난해부터 회사 단체 대화방 배경을 빨간 글씨로 '여기아님'이라는 글자로 도배했다.

해당 단체방은 주로 부서장 업무 지시 또는 훈계용으로 쓰였는데, 자칫 '말실수라도 하면 어쩌나'라는 걱정 때문에 눈에 '확' 띄는 배경을 택한 것이다.

B씨는 "퇴근 후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도 부서장이 단체방에 메시지를 보낼 때가 있다. 주로 팀원들에 대한 지시 사항과 질책인데 쉬어야 할 시간이지만 마음 놓고 쉴 수가 없다. 특히 주말에 메신저 알람이 울리면 확인하기도 전부터 불안하다."라며, "혹시 잠결이나 술김에 실수로 단톡방에 메세지를 잘못 보낼까 봐 배경을 다르게 설정해놨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업무용 메신저가 된 지 이미 오래됐다.이렇다 보니 카카오톡은 디지털 시대의 '족쇄'라는 오명까지 있다.

■ 직장인 대부분은 "업무용 단체 카톡방 싫어도 어쩔 수 없어..."

앞서 설명했던 사례 #1)은 대한민국에서 매우 드문 사례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시도 때도 없이 카카오톡으로 오는 업무 지시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만, 어쩔 수 없다'라며 체념한 지 오래고, 이렇다 보니 사례 #2)와 같은 직장인도 있다.

실제 지난해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아르바이트 O2O 서비스 알바콜이 성인남녀 835명을 대상으로 단체 카톡방 관련 설문 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은 단체 카톡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했다.

또, 지난 2017년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717명을 대상으로 이른바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의 필요성을 묻는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87.7%는 '필요하다'라고 답했다.

퇴근 후에도 메신저로 업무 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는 직장인이 85.5%에 달했고, 10명 중 6명(62%)은 이러한 지시가 '싫다'라고 응답했다.

▲ 직장인 10명 중 8명은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통해 퇴근 후 업무 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잡코리아) © 팝콘뉴스

이렇다 보니 한 기업에서는 SNS 메신저를 통해 팀원에게 시도 때도 없이 업무 지시와 함께 훈계를 한 팀장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제정 뒤 '단체방을 모두 탈퇴하라'고 지시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해당 회사에서 일했던 C 씨는 "당시 팀장이 방을 탈퇴하라고 하자 팀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대화 화면을 캡처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혹시 몰라서' 대화방 화면을 캡처했다"라고 말했다.

■ 카카오, '아예' 업무용 카카오톡 만들다

이런 가운데 카카오의 기업형 IT 플랫폼 전문 자회사인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카카오워크'를 출시한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일은 카카오워크에서, 일상은 카카오톡에서'라는 원칙으로 카카오톡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활용해 누구나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업무용 플랫폼을 내놓았다.

대부분의 기업이 자체 메신저나 업무용 그룹웨어를 마련하고서도 실제 업무 현장에서는 카카오톡 등 개인용 메신저가 활용되는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실제 카카오 한 임원 역시 "카카오는 사내 업무를 직원 모두가 소통할 수 있는 메신저를 통해 처리하고 있다"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카오에서도 카카오톡을 업무용으로 쓰기도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일과 일상을 구분하기 위해 업무용 플랫폼 '카카오워크'를 출시했다 (사진=카카오엔터프라이즈) © 팝콘뉴스



백상엽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대표는 "누구나 외부 메신저를 이용해 일하면서 사생활과 업무 분리가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카카오워크' 출시 배경을 설명했다.

카카오워크 핵심 기능은 특정 메시지를 읽은 멤버와 읽지 않은 멤버가 누구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카카오톡의 경우 단체방에서 남긴 메시지를 몇 명이 읽었는지는 알 수 있지만, '누가' 읽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는데, 이를 개선한 것이다.

또 대화 중 특정 메시지를 선택해 '할 일'로 등록해 중요 업무 지시에 대한 체크도 가능하다.

여기에 비대면 재택근무가 증가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화상회의' 기능도 갖췄고, 전자결재와 근태관리도 카카오워크를 통해 할 수 있다.

카카오워크는 카카오 본사와 카카오엔터프라이즈를 시작으로 우선 카카오 모든 계열사에 도입한다.

이후 공공과 금융 시장용 버전 등을 추가로 내놔 기업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 업무용 카톡 과연?

'일과 생활의 분리'를 원칙으로 카카오워크가 출시됐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기업이 이를 활용할지는 미지수다.

우선 이미 상당수 기업이 자체 메신저와 그룹웨어 등 자체적인 온라인 업무 처리 시스템을 갖춘 상황에서 그동안 무료로 이용했던 카카오톡 대신 '유료'인 카카오워크를 쓸지 의문이라는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 D씨는 "화상회의 시스템을 제외하고는 근태관리나 출퇴근관리 등은 이미 기존 업무용 메신저를 통해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미 카카오톡을 통한 업무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카카오워크가 널리 사용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한 중소기업 관계자 E씨는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근태 시스템 등이 잘 갖춰져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은 곳도 많은데, 그런 회사들에는 직원 관리 측면에서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회사에서도 카카오워크 도입을 검토할 예정이다"라며 긍정적인 입장을 전했다.

한편, 업무용 카카오톡인 '카카오워크'가 공식적으로 선보이면서 직장인 F씨는 "그냥 일과 업무의 분리 대신 사내 메신저 외에는 일 이야기는 안 할 수 없는 것인가요?"라며 "카카오워크 역시 또 하나의 족쇄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G씨는 "카카오톡으로 하든 카카오워크로 하든 어차피 업무 지시에 대해서는 '넵 확인했습니다!'라는 영혼 없는 대답만 남기는 일상이 계속될 뿐 크게 상관없다. 메신저를 통한 업무 지시가 소통이라고 관리자들이 착각할 수 있도록 '하는 척'만 하면 된다"라는 무심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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