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또 하나의 성장 정책" 비판

▲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 세부추진전략 중 하나인 '안전망 강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팝콘뉴스


(팝콘뉴스=배태호 기자)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한 지난 4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달 대비 상용근로자 수는 약 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임시 혹은 일용근로자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플랫폼 노동자 등 기타종사자 수는 약 8% 감소하며 근로 형태에 따라 안정성에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특수고용 또는 플랫폼노동자와 같은 새로운 고용 형태가 지속해서 늘고 있지만, 고용 안전망은 여전히 임금 근로자 중심으로 구축된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우리나라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고용 안정 취약성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디지털화 가속이라는 변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서 노동시장 참여자에게는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디지털 적응력이 요구되는 등 풀어야 할 숙제도 주어졌다.

이같은 상황을 반영해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총 160조 원을 들여 190만 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한국판 뉴딜'을 내놨다.

한국판 뉴딜의 축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고용사회 안전망 강화 등 세 분야로 이뤄졌다. 이와 관련 정부가 20일 세부추진전략 가운데 하나인 '안전망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 고용보험제도 혁신...전국민 대상 고용 안전망 구축

실업자의 1차 고용안전망인 고용보험제도는 지난 1995년 처음 도입됐다. 적용 대상은 1997년 426만 명에서 지난해 1,386만 명으로 꾸준히 확대됐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특수고용직이나 프리랜서 등 새로운 고용 형태 노동자에 대한 보호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되면서,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전국민 대상 고용 안전망 구축을 위한 제도 개선에 팔을 걷었다.

우선 예술인과 특수고용직에 대한 단계적인 고용보험 적용을 추진 중인데, 이미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에 대한 법안은 통과돼 오는 12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특고 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지난 8일 입법 예고해 연내 입법이 추진되는데, 다음 달 규제·법제 심사를 거쳐 9월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예술인과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비자발적 이직이 아닌 소득감소로 인해 이직하는 경우에도 임금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월평균 보수 60% 수준의 실업급여를 최대 9개월간 받을 수 있게 된다.

아울러 내년부터는 예술인과 특수고용직 노동자에게도 출산전후급여를 지급하는 한편 '고용보험 미적용자 출산급여'도 계속 지원한다.

또 재원 마련 방안을 수립한 뒤 특수고용직 노동자부터 단계적으로 육아휴직급여도 확대한다.

정부는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기획단'을 구성해 일하는 국민의 소득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 뒤, 이를 기반으로 연말까지 고용보험 해소 로드맵을 마련, 오는 2025년에는 모든 일하는 국민이 고용보험 보호를 받는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를 연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이달부터 산재보험 특수고용 적용 직종을 기존 9개에서 14개로 확대한 데 이어, 추후 IT 업종 프리랜서와 돌봄 종사자 등으로 적용 직종을 추가할 예정이다.

■ 사회안정망 강화...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사회적 약자가 코로나19나 질병 등 위기 상황으로 인해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기초생활보장, 긴급복지, 상병수당 도입 등 사회안전망 강화도 함께 추진한다.

우선 기초생활제도의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오는 2022년까지 폐지한다. 다음 달 마련할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기준 중위소득 산정방식 개편안을 포함해 보장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또 '한국형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을 내년 진행한 뒤, 이를 바탕으로 2022년에는 저소득층 등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제도 도입 방안을 마련한다.

여기에 갑작스럽게 위기 상황에 부닥친 취약계층을 위한 '긴급복지 지원' 규모도 확대한다.

노인과 장애인 소득보장 강화를 위해 내년부터 월 30만 원의 기초연금 최대지급액 지원 대상을 소득 하위 40%에서 전체 수급자(소득 하위 70%)로 확대한다.

장애인연금 기초급여 최대지급액(월 30만 원) 지원 대상 역시 장애인연금 수급자 중 기초수급자나 차상위계층에서 전체 수급자 (소득 하위 70%)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국민취업지원 제도 시행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정부는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 지원제도'를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

취업 취약계층 대상 맞춤형 취업 지원 프로그램과 함께 저소득층 생계지원을 위한 구직촉진수당을 월 50만 원씩 최대 6개월간 지급한다.

취업 의지가 적은 무직자에게는 NGO나 공공기관 등에서 30일 내외 단기간 직무 경험을 제공해 취업 의욕을 높이는 한편, 취업 의지와 능력은 있으나 희망 직무에 대한 경험 부족 구직자에 대해서는 민간기업을 통한 3개월 안팎의 직무 중심 인턴형 프로그램을 제공해 구직활동을 돕는다.

이와 함께 고용보험 가입률이 낮은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을 위해 창업 및 재기 지원 정책을 시행한다.

신사업 분야 예비창업자에게는 교육과 점포 운영 실습 및 멘토링, 사업화 자금 등을 패키지로 지원하고, 사업 정리나 재창업을 지원하는 '희망리턴패키지' 사업 확대를 통해 영세 소상공인의 폐업 부담을 덜고 재도전도 촉진한다는 방침이다.

■ 디지털·그린 뉴딜 인재 양성...AI·SW 인재 10만 명 양성

사회적 안전망 강화와 함께 정부는 디지털 및 그린 뉴딜 정책 추진에 필요한 인재 양성을 위한 투자도 늘린다는 계획이다.

우선 인공지능(AI) 전문가 양성을 위해 AI 대학원 지정을 늘리는 한편, 박사급 인재의 산학협력 연구 확대를 위한 '키우리(KIURI) 연구단'을 추가 선정한다.

또, 실전 역량을 갖춘 인재 육성을 위해 소프트웨어 중심 대학의 관련 교육을 늘리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개발자 양성과 지역 인공지능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이노베이션 스퀘어를 확충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디지털 뉴딜을 선도할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핵심 인재 10만 명을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또, 포스트 코로나 시대 녹색 경제를 선도할 전문가 양성을 위해 생물 소재나 녹색 금융, 포스트 플라스틱 등 관련 분야 특성화 대학원을 운영해 석·박사급 인재를 육성하고, 환경 산업계에 필요한 다양한 실무 인력이 충원될 수 있도록, 환경 분야 특성화 고등학교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2만 명의 녹색 융합기술 인재를 육성한다는 목표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가속화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 전환 과정에서 국민의 디지털 적응력 향상을 위한 신기술 분야 직업 훈련 강화에도 나선다.

혁신훈련기관과 기업·대학이 협력해 신기술 훈련을 제공해 '미래형 핵심 실무인력 18만 명' 양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직업 훈련에 참여하는 모든 구직자, 재직자 등을 대상으로 디지털 융합 초·중급 훈련도 제공 예정인데, 구직자 훈련 시 디지털 융합 훈련을 수강하면 50만 원을 지원하고, 사업주 자체 혹은 위탁 및 컨소시엄 훈련으로 디지털 융합훈련을 실시하면 이를 직무 훈련으로 인정해 훈련비의 50%를 정부가 지원한다.

▲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와 학계 전문가는 20일 오전 '누구를 위한 한국판 뉴딜인가' 설명회를 열고 정부가 내놓은 의 미흡한 부분을 지적했다 (사진=참여연대) © 팝콘뉴스

■ 시민단체 "한국판 뉴딜?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비판

하지만 이 같은 정부 정책에 대해 학계와 시민단체가 보는 눈은 곱지 않다. 특히 20일 정부가 발표한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내용은 기존 제도를 경미하게 확대하는 수준으로 획기적인 방안이라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윤홍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번 한국판 뉴딜에 대해 △한국판 뉴딜이 지향하는 사회상과 목표가 불분명하고 △시장을 다시 사회 통제 아래 두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지지 기반 확장을 위한 대안이 부재하며 △사회보장과 고용 문제도 상당히 미온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윤 위원장은 정부가 내놓은 '한국판 뉴딜'은 개발국가의 산업정책이라는 한국의 오랜 전통에 기초한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한 또 하나의 산업정책·성장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판 뉴딜의 안전망 강화 과제가 고용을 중심으로 한 1차 분배 정책에 집중되어 있으며, 복지국가 맥락에서 주요한 정책 수단인 소득보장이나 사회서비스 정책들은 제한적으로만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기초생활보장 생계 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2022년까지 폐지하기로 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상병수당 도입 시기가 명확하지 않고, 상병수당이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해 병행 도입해야 할 유급병가제도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 정책국장은 코로나19로 인한 화두 중 하나는 보건의료 인프라 구축과 대응 능력 강화로, 그 중심은 공공의료강화와 공공의료컨트럴타워 설립이지만, 이번 '한국형 뉴딜 종합계획'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이 없다는 측면에서 "공공의료 확충이 빠진 코로나19 시대 '한국형 뉴딜'은 기만"이라고 지적했다.

전 국장은 "보건의료 부문에서 그나마 발표한 스마트병원, 원격진료, AI 진단, 디지털 돌봄은 효과가 입증된 바 없는 연구과제나 혁신과제들이고, 일자리를 늘리기는커녕 인력 감축과 관련이 있다"고 비판하고, "지금 필요한 것은 사회서비스와 돌봄서비스가 더욱 많이 제공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술과 장비' 중심 뉴딜이 아닌 '인력' 중심 뉴딜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용석 민주노총 민주노동연구원 원장 역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는 디지털 뉴딜·그린 뉴딜·안전망 강화 분야에 각각의 일자리 창출 목표가 적시되어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자리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에 대한 세부 계획은 반영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이어 "특수고용노동자 적용 확대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취지에 무색한 정책을 제시하였으며, 실업부조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대책은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정부가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용 위기 상황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예방 대책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한국판 뉴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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