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질병은 어떻게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는가?

이강우 기자 | 입력 : 2020/03/19 [16:07]

(팝콘뉴스=이강우 기자) 질병과 역사의 물결 사이에는 모종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게르슈테 저, 2020.3월 미래의창     ©팝콘뉴스


14세기 중반 흑사병이라 불리던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유럽 인구 3분의 1이 사망했다.

 

그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경제적 여파에 대해서는 상세한 연구들이 진행된 바 있다.


그런데 그러한 거시적 관점도 중요하지만, 미시적 관점, 즉 역사의 물줄기를 좌지우지할 만큼의 결정권을 지닌 정치가들 개개인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뜻밖에 찾아온 죽음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다루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다룬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가 미래의창에서 출간되었다.

 

저자 로날트 D. 게르슈테는 의사이자 역사학자이다.


특파원으로 워싱턴 D.C.에 머무르면서 저술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학술 전문 기고가로 대중들과 자주 만나고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역사의 전개에 영향을 끼친 의학적인 사건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해 왔다.


그의 기고문은 독일 유명 일간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 '디 차이트'와 역사 전문지 '다말스', 해양학 전문지 '마레' 등에 실리고 있다.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끼친 날씨에 대해서도 연구한 바 있는 저자는 그 연구 결과물을 책으로 냈으며, 한국에서는 '날씨가 만든 그 날의 세계사'(2017)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는 크게 두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하나는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질병이고, 나머지 하나는 각종 질병에 걸린 권력자들이다.

 

질병은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의 흐름을 뒤흔들었다.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에서는 심각한 질병에 걸린 몇몇 유명 인물들이 겪은 고통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동시에, 그 인물들이 만약 그 질병을 앓지 않았다면 역사의 여신 클레이오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 상상해본다.


특히 프리드리히 3세와 메리 여왕은 유럽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두 나라를 통치한 이들이지만, 질병 때문에 두 사람의 재임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개인의 병력과 생애를 결합해 고찰하는 병력전기학에서는 '만약 그때 그랬다면 어땠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곤 한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과거를 뒤돌아볼 때마다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그때 이랬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또한 페스트나 콜레라, 매독 등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를 덮치며 한 시대를 휩쓸어 버린 질병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치명적인 전염병을 숫자로 살펴보고 그로 인한 사회적 변화를 짧게 살펴보자.

 

페스트 : 14세기 영국에서는 인구의 40~50%가 사망하였으며, 중국에서는 인구의 3분의 1 정도인 3,500만 명이 사망했다. 또한 노르망디 지역에서는 인구의 70%가량이 감소했다는 기록이 있다.  페스트로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면서 살아남은 자들은 사회적, 경제적 상황이 호전되는 이점을 누렸다. 모든 분야에서 노동력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서유럽과 북유럽을 비롯해 유럽 내 수많은 지역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했고, 농노를 구하기 힘들어져 노예를 부릴 기회는 더이상 주어지지 않았다. 식량 부족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졌다. 페스트가 번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 대부분 지역은 기근과 빈곤에 시달렸다. 하지만 1352년 이후 인구수가 급감하면서 살아남은 이들은 이제 제한된 자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사회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매독 : 15세기 이후 약 400년간 유럽에서만 약 1,000만 명이 사망했으며,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 인구의 15%가 매독 환자로 알려졌다. 중세는 독실한 신앙과 종교적 규율을 강조하는 사회였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모두 육체적 쾌락을 즐겼다. 하지만 매독이 발발하면서 혼외정사나 혼전 성교 등 자녀를 낳기 위한 목적이 아닌 모든 종류의 성관계에 대한 비난도 대대적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유럽 내 많은 지역에서 금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천연두 : 20세기에만 약 3억 명이, 역사적으로는 5억 명이 천연두로 사망했다고 추정된다. 유럽에서만 18세기 이전까지 매년 40만 명 이상, 18세기에 유럽에서는 천연두로 25년 동안 약 1,500만 명이 사망했다. 특히 아동은 감염될 경우 80%가 사망했다. 16세기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유입되면서, 천연두 바이러스가 아스테카 왕국과 잉카 왕국을 비롯한 신대륙 원주민들에게 퍼졌고, 이에 대한 면역 체계가 없었던 원주민들은 천연두에 걸려 인구의 30%가 사망했다. 그 결과 유럽인들은 매우 손쉽게 신대륙을 차지할 수 있었다.

 

콜레라 : 19세기 콜레라로 인도에서만 1,50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19세기 유럽의 경우, 독일의 대도시에서는 주민의 1% 정도가 사망했고, 프랑스에서는 약 1만 8,000명이, 영국에서는 2만여 명이 희생되었다. 1854년 존 스노우가 질병 지도를 통해 콜레라가 수인성 질병임을 밝혀내면서 깨끗한 물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많은 도시에서 공중위생 환경이 개선되었다. 운하를 정비하고, 깨끗한 식수 공급을 위해 노력했으며, 식수와 하수를 철저히 구분한 것이었다.​​

 

독감 : 1918~1920 발생한 독감으로 전 세계 약 5억 명이 감염되었고 적게는 2,500만에서 많게는 1억 명까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당시 세계 인구의 약 5%에 해당하는 수치다. 스페인 독감의 유행으로 예방접종과 의료기관 종사자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스페인 독감 확산 초기에 의료종사자가 많이 감염되면서 병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희생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

 

에이즈 : 1980년대 말까지 10만 명이 발병하였고 그 중 대부분이 면역 결핍증으로 사망했다. 현재까지 약 3,900만 명이 에이즈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공식적으로 최근 100년간 유행한 전염병 중 가장 많은 사망자 수다. 2017년 한 해 동안 에이즈와 관련된 질병(폐렴을 비롯한 감염성 질환들)으로 사망한 이는 94만 명에 달한다. 초기 에이즈 환자들 대부분이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당시 사회에서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로 동성애자 같은 성소수자에 대한 반감이 거세졌다. 이 같은 오해로 성소수자들은 오히려 자신들끼리 연대 의식을 갖게 되었고,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사회운동에 나서게 된다. 이에 여러 인권단체에서 이들에게 동조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성소수자 권리 확대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다.​

 

결핵 : 결핵은 지금도 세계 많은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 인구 중 3분의 1이 결핵균에 감염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매년 800만 명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하며, 연간 1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킨다고 한다. 19세기에 유럽에서 유행했던 결핵은 젊은 희생자들을 양산하여, 젊은이들의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작가나 화가, 음악가 등 예술가들이 결핵에 걸려 사망하면서 결핵이 재능 있는 사람이 걸리는 질병으로 미화되기도 했다. 결핵을 소재로 한 많은 예술 작품들이 나왔는데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는 '아픈 아이'라는 작품을 통해 결핵으로 죽은 누이를 애도했고,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이 쓴 '마의 산'은 스위스 다보스에 위치한 결핵 요양원이 작품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당시 맑은 공기를 마시면 병이 낫는다고 믿은 많은 사람들이 스위스를 찾았고, 오늘날 세계 경제포럼으로 유명한 다보스는 결핵 요양원으로 경제적 부를 쌓은 도시였다.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코로나19를 포함하여 페스트, 콜레라, 유행성 독감(인플루엔자) 같은 범유행성 질병은 그 시작과 진행 과정이 상당히 유사하게 진행된다.


최초의 발병자가 있고, 이후 교통수단을 통해 점점 더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간다.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교통수단 또한 발전하면서 전염병의 전파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치명적인 범유행병이 퍼지면 각국은 국경을 봉쇄하여 유행병의 감염을 막으려 노력하지만, 질병은 어떻게든 바리케이드를 뚫고 들어와 1차 감염자를 만들고, 백신과 치료약이 만들어질 때까지 인류를 괴롭히며 역사를 바꾸어 나간다.


'코로나19' 방역이 뚫리는 현실을 역사가 다시 한번 보여 주고 있다.


독자들은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를 통해 비약이 있기는 하지만 역사의 진실에 근거해 현재 처한 '코로나19'가 전 세계 경제와 사회상을 어떻게 바꿀지 상상해 보고 나름의 대책을 세워보면 좋을 것 같다.


또한 국가별 지도자나 조직의 리더들이 '코로나19'에 대한 방역 대책이나 위기관리 능력을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의 내용과 비교해 지켜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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