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이후 프랑스 문학의 최고 걸작

▲ '어느 인생' 모파상 저, 백선희 옮김 2019년 10월(주)새움출판사 ©팝콘뉴스

(팝콘뉴스=이강우 기자)'르 피가로 리테레르'지가 프랑스 고전 작가들의 판매 부수를 집계한 적이 있다.


장르에 상관없이 가장 많이 팔린 작가는 누구였을까? 많은 독자들이 생텍쥐페리를 예상했지만, 의외로 1위는 기 드 모파상이었다.

자료 조사 기간 8년 동안 무려 380만 부가 팔렸다.


그 가운데서도 세계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 바로 '여자의 일생'이었다.


그런데 이 위대한 고전의 제목이 원래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면 어찌 해야 할까?

작가인 기 드 모파상이 이 책에 붙인 제목은 'Une vie', 즉 '어느 인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지금까지 '여자의 일생'으로 잘못 번역돼 읽혀 온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Une vie'가 우리나라에 처음 출간된 판본은 김기진 번역의 '녀자의 한평생'(박문서관, 1926년.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소장.)이다.


김기진은 일본어판 '女の一生'(히로쓰 가즈오 역, 1916년.)을 중역한 것으로 추정되고, 영문학을 공부한 히로쓰 가즈오는 당시의 영어 번역본 제목인 'A woman’s life'를 중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기진 번역본 이후 우리말 번역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1954년 박영준 판(문성당 간)으로 보이는데, 그 역시 제목이 '여자의 일생'이었다.


그 영향 때문이었는지 이후 쏟아진 수많은 번역본이 모두 '여자의 일생'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되었는데, 모파상의 작품을 제대로 읽기 위해 오랜 기간 화석처럼 굳어버린 제목 '여자의 일생'을 (주)새움출판사에서 '어느 인생'으로 제목을 바로 잡아 새롭게 번역 출간했다.

저자 모파상은 1850년 프랑스 노르망디 미로메닐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의 소설가.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명석한 문체와 훌륭한 인물ㆍ풍경ㆍ심리묘사 등으로 천재라는 평을 듣는다.


모파상은 불과 10년간의 짧은 문단 생활에서 단편소설 약 300편, 기행문 3권, 시집 1권, 희곡 5편, 그리고 '벨아미', '피에르와 장', 등의 장편소설을 썼다.


그중 1883년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 '어느 인생'은 프랑스 문학이 낳은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1892년 니스에서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했고, 1년 뒤 파리 교외의 정신병원에 수용됐다가 43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모파상의 첫 장편소설 '어느 인생'에 덧붙은 부제는 '초라한 진실'이다.

모파상은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인생 전반에 대한 그만의 통찰을, 삶의 '초라한 진실'을 보여주려 한 것으로 읽힌다.


그러니까 흔히들 말하듯이, 이 작품에서 19세기에 한 여성이 혹은 여성 전체가 산 불행한 삶을 읽을 수도 있겠으나, 저자의 시각은 그보다 더 본질적 차원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이 특정 시대 여성의 사회적 조건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의 삶 자체를 통찰하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이 작품을 통해 모파상이 말하려는 건 '보라, 이 여자의 일생을'이라기보다는 '보라, 이것이 인생이다'인 셈이다.


모파상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 속 인물들을 가만히 응시한다.


섣불리 비난하지도 않고 성급히 연민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세세하게 인물 심리를 보여주고 있어서, 모파상을 읽는 것은 인간의 낮과 밤을 관찰하는 것과도 같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다면 모파상을, 인생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어느 인생'을 읽는 게 좋겠다.


'여자의 일생'이 아니라 '어느 인생'을 읽는다면, 단지 한 여자의 불행한 삶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생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가난한 귀족 출신의 바람둥이 남편 쥘리앵, 불순하다며 분만 중인 어미 개를 죽이는 신부, 그런 신부를 비난하며 자연법칙을 예찬하는 아버지, 가엾은 엄마가 남겨 놓은 비밀스러운 편지, 온 가족의 과한 사랑을 받으며 엇나가는 아들, 살아 있는 가구처럼 존재감이 없는 이모, 낮에는 내내 졸다가 밤이면 배회하는 늙은 개…….


주인공 잔느의 인생에는 여러 삶이 겹친다.


무엇보다 잔느와 함께 젖을 먹고 자라 여동생이나 다름없었지만 쫓겨난 하녀 로잘리를 빼놓을 수 없다.


불운과 불행을 겪으며 혼자 남게 된 잔느를 찾아오는 로잘리, 그녀의 늙고 투박한 손이 절망에 빠진 잔느의 손을 잡아주고, 두 사람이 함께하며 서로의 삶을 얘기하는 모습은 다정하고 눈물겹다.


"보시다시피 인생은 우리가 믿는 것처럼 결코 그리 좋지도 그리 나쁘지도 않답니다"라는 본문 속 내용처럼, 악착스럽게 자신을 따라다니는 운명을 탓하면서도 어떤 날에는 삶의 행복이 마음속에 파고들어 다시 희망하고 기대하기도 한다.


운명이 제아무리 가혹해도 화창한 날에는 희망을 품어 볼 수 있다는 모파상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언어, 오늘의 언어이자 내일의 언어'로 담아낸 인간의 고독과 인생의 쓸쓸함이 많은 독자들에게 생생히 전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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