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문화재-<7>순국선열의 자취, 서대문 형무소

자주독립의 뜨거운 염원이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

김효선 기자 | 입력 : 2019/02/26 [14:41]

▲  우리 곁의 문화재 ‘서대문 형무소’     ©팝콘뉴스

 

(팝콘뉴스=김효선 ㆍ이지은기자) 올해 3.1절은 1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곳 서대문 형무소는 1919년 3.1 운동 당시 독립운동 투사들이 체포돼 고문을 받으며, 형장의 이슬로 목숨을 잃는 등 순국선열의 아픔(희생)이 서려 있는 장소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나라에서 최초로 일제의 강점에 맞서 비폭력 항거로 일어난 대규모 민중봉기 3.1 만세운동.

 

우리나라의 민족자결주의 과정을 알아볼 수 있는 현장을 지금 보러 가시죠.

 

3.1절은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민족대표 33인이 탑골공원에 모여 독립선서를 낭독하는 것을 기점으로 전국적인 평화시위 형태로 확대되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국민들이 전 세계에 독립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비폭력 평화주의 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세를 외치던 많은 열사들은 결국 일본군에 의해 형무소로 끌려가게 되었고, 당시 사상자만 2만 3480명이라고 합니다.

 

또 당시 수감자를 보면 무직자 3.1%, 노동자 3.9%, 상공업자 13.8%, 지식인ㆍ청년ㆍ학생 등이 20.8%였고, 농민이 58.4%로 농민들의 참여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많은 열사들은 감옥에 갇혀 모진 고문을 받으며 고통스럽고 힘겨운 나날을 보냅니다.

 

이 작은 방안의 수용인원은 5명이지만 실제 수용된 인원은 7배나 많은 35명이 수감되었는데, 취조를 당하면서 이 비좁은 방에서 지친 몸이 편히 쉴 공간조차 없어 일부는 서 있고, 일부는 누워서 교대로 쉬었다고 합니다.

 

특히 지금 보이는 이 8호방은 유관순 열사의 방입니다.

 

틈만 나면 감옥 안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독방으로 지내다 끝내 꽃다운 18세 나이로, 출소 이틀을 남겨두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 준 3.1운동은 우리나라 열사들의 뜨거웠던 독립의 염원이 시작되던 날입니다.

 

3.1절 100주년을 맞은 오늘에도 일본은 반성하지 않은 채 여전히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우리 순국선열의 단결된 애국심으로 일제의 만행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상 팝콘뉴스의 김효선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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