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테러대책위원회의 인권보호관과 독일의 G-10 위원회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막기 위한 국가의 조처

홍선기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입력 : 2019/02/21 [09:51]

▲ 독일정치경제연구소 홍선기 연구위원(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법학박사)     © 팝콘뉴스

(팝콘뉴스=홍선기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벌이는 미국 CIA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시카리오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에 CIA는 FBI 요원과 멕시코에서 작전을 펼쳐 나간다.

 

하지만 실제 CIA 요원들은 FBI 요원을 배제하고 납치와 암살 및 살인과 같은 불법행위를 저지르면서 최종적으로는 FBI 요원에게 자신들의 행위는 합법의 테두리 내에서 했다는 서명을 강요하면서 영화가 끝이 난다.

 

즉 FBI 요원을 참여시킨 이유가 자신들의 불법행위를 합법으로 둔갑시키기 위한 그런 목적이었던 것이었다.

 

굳이 이렇게 영화 이야기를 초반에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혹시 국정원의 인권보호관이 영화에 나오는 FBI 요원의 역할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국정원 모습은 간첩을 잡기보다는 오히려 만드는데 더 많은 역할을 해 왔다.

 

간첩 조작사건을 일으키고,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하는 등의 국정원 모습은 국민들에게 불신의 대상이었다.

 

이런 국정원에게 테러방지법을 통해 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자 190여 시간의 필리버스터라는 세계 신기록의 경신에도 불구하고 테러방지법은 통과됐다.

 

이 법안은 이렇게 탄생부터 이미 심각한 인권 침해와 정보기관의 과도한 권력 집중화에 대한 우려를 품고 있었다.

 

현재 이러한 상황 속에서 테러방지법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인권 보호장치는 바로 대테러인권보호관이다.

 

테러방지법 제7조에서는 관계기관의 대테러 활동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 방지를 위해 대책위원회 소속으로 대테러인권보호관 1명을 둔다라는 규정이 있다.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방지하려는 조처지만 그동안 국회 정보위원회도 국정원을 통제하지 못했다.

 

정보위원회가 국정원에 관련 자료를 요구할 때마다 국가안보라는 명목 아래 자료 제출을 거부하곤 했기 때문이다.

 

여러 명의 국회의원도 못 한 일을 단 한 명의 인권보호관이 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으며 오히려 한 명의 인권보호관에게 국정원이 마음먹고 영향력을 끼치면 영화 속 FBI 요원처럼 국정원의 권한 남용을 정당화시켜 주는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

 

더구나 현행 테러방지법이 인권침해를 감독하거나 통제할 수 있도록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았고, 오직 대테러인권보호관 제도만을 규정하고 있다는 학계의 지적은 반드시 고민해 봐야 한다.

 

결국 유일한 인권 보호장치인 대테러 인권보호관의 역할은 매우 중대할 수밖에 없으므로 대테러인권보호관이 해당 임무를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권한과 직무 범위의 확정이 필요하며, 인권 보호를 위한 효율적이고 구속력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만 한다. 

 

독일은 정부가 테러 예방을 위해 개인 통신을 감시하면서 자신의 권한을 남용할 경우를 대비해 G-10 위원회(G-10-Kommission)가 정부의 테러 방지 명목으로 남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감독하고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G-10 위원회는 정보기관의 감시활동에 대한 합법성 여부를 평가할 수 있는 기관으로, 베니스위원회에 의해 인정받은 기관이기도 하며 우리 대테러인권보호관의 위상과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현행 테러방지법 제5조 제1항에 의하면 대테러 활동에 관한 정책의 중요사항을 심의ㆍ의결하기 위해 국가테러대책위원회를 둘 수 있고, 제2항에 따라 위원장은 국무총리가 맡게 돼 있다.

 

아울러 제7조 제1항에 따른 인권보호관은 위원장인 국무총리가 위촉하도록 마련돼 있다.

 

현행 테러방지법에 의하면 국정원장의 권한은 상당히 막강해지므로 그것을 인권 측면에서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가 바로 인권보호관이다.

 

그런데 한 명의 인권보호관마저도 정부 소속의 총리가 임명하게 되면, 사실상 친정부 측 사람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렇게 된다면 특정 정권을 위해서 활동해 왔던 기존 국정원의 어두운 역사가 되풀이될 우려를 불식시키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우리나라의 인권보호관이 한 명임에 비해 독일의 G-10 위원회는 세 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고, 특히 행정부로부터 어떠한 지시도 받지 않는 구조이다.

 

무엇보다 우리와는 달리 정부가 아닌 의회에서 세 명의 위원을 임명하고 4년 임기를 보장하고 있어서, 업무에 있어 강한 정부로부터 독립성과 계속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행정부가 아닌 의회에 G-10 위원회가 의존하고 있어서 이 위원회의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되고, 따라서 정부에 대한 감독 권한을 강화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G-10 위원회는 행정부로부터 월례회의 방식으로 정기적으로 테러 감시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제공 받는다.

 

게다가 의회의 정보기관 통제위원회와도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고 정보를 교환한다.

 

우리 대테러인권보호관에게는 관련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누구로부터 받는지 등에 대해 근거 규정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 

 

필리버스터 당시만 해도 바로 재개정 작업에 나서야 할 것처럼 주장했던 당시의 야당이 여당이 되고 나선 테러방지법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제출 당시 국민 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법이라고 선전했던 이 법은 실제로는 정권 유지를 위해 국민을 사찰하는 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 분들의 침묵은 모순이다.

 

제도적으로 인권보호관과 위원회를 3인으로 구성하되 임명권자는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대표들이 협의해 위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러면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질 것이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테러방지법, 국가정보원, 인권, 독일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